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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장인수 기자

불타는 방화문

불타는 방화문
입력 2015-11-09 11:16 | 수정 2015-11-09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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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에는 세대마다 방화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불이 났을 때 방화문을 닫고 그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모든 방화문은 화재 발생 시 1시간 동안 화염과 연기를 차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성능 기준을 충족하는지 2580이 실험해본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단 몇 분도 버티지 못하고 타버린 것입니다.

    또 다른 전문 업체가 30개 아파트 단지의 방화문을 실험해본 결과 30군데 한 곳도 예외 없이 기준 미달로 나타났고 전국 50여 개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건설사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불타는 방화문, 나와 내 가족을 지켜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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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10일.

    경기도 의정부의 한 아파트가 화염과 연기에 휩싸였습니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민들이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저 위에 또 사람 있네. 사람 있어, 저 위에! 저 위에 또."

    구조하러 들어갔던 경찰관마저 고립돼 구조를 받아야 하는 상황.

    소방헬기가 접근해 보지만 연기 때문에 쉽게 다가가지 못 합니다.

    결국 주민 5명이 숨지고 129명이 다쳤습니다.

    [김석원/의정부 소방서장]
    "막대한 연기가 상층부로 올라갔기 때문에 주민이 대피할 수 있는 통로가 막혔고 인명을 구조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경찰과 소방당국 조사에서 이 아파트의 계단 입구에 설치된 방화문이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검찰은 지난달 방화문 등 화재 관련 시설을 부실시공한 책임이 있다며 불을 낸 김 모 씨는 물론이고 건축주와 시공자.

    설계, 감리자까지 모두 기소했습니다.

    방화문은 불이 났을 때 화염과 연기를 차단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한마디로 생명과 직결되는 시설입니다.

    그런데 의정부 아파트 화재에선 방화문은 무용지물이었고 불은 삽시간에 아파트 전체로 번져 나갔습니다.

    다른 아파트 방화문은 괜찮은지, 궁금해졌습니다.

    정부는 지난 2004년 건축법 시행령을 개정해 방화문의 성능 기준을 강화했습니다.

    적어도 1시간은 연기와 화염을 차단해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아파트는, 세대 현관문과 공용 계단 문, 그리고 집 안에 마련된 화재 대피공간에 각각 방화문을 설치하도록 했습니다.

    불이 났을 때 당황해 밖으로 뛰어내리는 대신 소방관이 도착해 구조해줄 때까지 실내에서 버틸 수 있게 최대한 시간을 벌어주라는 것입니다.

    [김근영/구조기술사]
    "화염이라든가 불꽃이라든가 실제 연기가 이런 걸 막아줌으로 인해서 그 시간에 대피할 수 있고 외부에 구출을 요구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그래서 건설 기술 연구원이나 방재시험센터 등 정부가 공인한 기관에서 성능 시험을 통해 합격을 받은 방화문만 사용하도록 법으로 엄격히 정해놓고 있습니다.

    [여인환 박사/건설 기술 연구원 화재안전 센터]
    "세대 현관문, 그다음에 계단실 출입문에 대해서는 건축법령에 의해서 강제 규정으로 방화문을 설치하게 돼 있습니다. 세대 현관문이나 계단실 출입문 전부 다 60분의 성능 기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대건설과 롯데건설이 지난 2007년에 지은 인천의 한 아파트.

    8900세대로 국내 최대 규모의 단지입니다.

    현관문 등 모두 2만 7천여 개의 방화문이 설치돼 있습니다.

    건설사가 의뢰한 성능시험에서 모두 합격한 제품들입니다.

    그런데 입주 3년 만인 지난 2010년 지하 주차장에 설치된 방화문에서 철판 하나가 툭 떨어졌습니다.

    [OO 아파트 입주민]
    "어느 날 갑자기 문 한쪽이 떨어진 거예요. (이게요?) 네. 그래서 이게 떨어지면 다른 문도 방화문 하자가 있지 않을까.."

    별다른 충격도 없었는데 철판이 떨어져 나간 방화문.

    입주민들은 방화문 성능을 의심했고 직접 시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2011년 입주민들의 의뢰로 건설 기술 연구원에서 진행한 시험 동영상입니다.

    먼저 세대 현관문.

    방화문 뒤편 화로에서 열을 가하자 5분 만에 연기가 나기 시작합니다.

    8분이 지나자 문에서 화염이 치솟습니다.

    두 개 모두 불합격해 20분 만에 시험이 종료됐습니다.

    이번엔 계단실 문.

    10분 만에 연기가 나기 시작하더니 20분이 지나자 연구실이 온통 연기로 뒤덮여 앞이 보이질 않습니다.

    25분 뒤엔 불길까지 올라옵니다.

    역시 두 개다 불합격입니다.

    이런 식으로 모두 98개를 시험했는데 84%인 83개가 성능시험에 불합격했습니다.

    [조현중/ OO 아파트 주민]
    "하자라는 부분을 눈으로 보다 보니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황당했습니다."

    [천상현 변호사/인천 OO아파트 방화문 소송]
    "지금 방화문을 납품한 자도 KS 방화문 인증업자가 아니고 KS 표시도 없고 (제대로 된) 성능 시험도 안 하고 이 모든 게 X 판인데.."

    법원 감정 결과, 2만 7천 개의 방화문을 재시공할 경우 270억 원이 드는 것으로 계산됐습니다.

    2년간의 법정 공방을 거쳐 지난 2013년 1심 법정은 건설사가 입주민들에게 87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입주민들은 방화문을 재시공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며 항소했습니다.

    [천상현 변호사/인천 OO아파트 방화문 소송]
    "피고(건설사)들은 (법을) 따르는 척했지만 이걸 전혀 형식적으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한 겁니다. 이게 드러났는데 그럼 거기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철거 및 재시공으로 책임을 물어서 준엄하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하고.."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최근 많은 아파트 단지에서 지난 4일 경기도 화성의 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센터.

    주민들이 의뢰한 방화문 시험을 2580이 참관했습니다.

    대상은 현대건설이 지은 서울의 한 아파트와 롯데건설이 시공한 경기도 평택의 한 아파트.

    화로에 열을 가한지 7분 만에 현대건설의 방화문은 문이 심하게 뒤틀리면서 틈이 벌어져 불합격했습니다.

    이로부터 4분 뒤엔 롯데건설 방화문도 역시 틈이 벌어져 불합격했습니다.

    불타던 손잡이는 30분 만에 떨어져 버립니다.

    이런 식으로 이미 전국 50여 개의 아파트 단지가 성능시험을 실시해 부실을 확인했고, 이를 근거로 건설사와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2580이 입수한 방화문 성능 시험 결과입니다.

    모두 31개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방화문 173개를 시험한 자료입니다.

    그 결과 82%인 141개가 불합격 판정을 받았습니다.

    10분도 못 버티고 불합격 판정을 받은 방화문도 32%나 됐습니다.

    [윤옥연/OO 아파트 주민]
    "죽는 거죠. 그렇지 않나요? 그래도 (내화 성능이) 한 시간은 돼야만 소방차가 오는 시간도 있고 구조가 될 텐데 그렇게 빠른 시간에 (방화문이) 탄다고 그러면 결국은 생명을 잃게 되는 거잖아요."

    이 31개 단지엔 삼성 래미안, GS 자이, 대우 푸르지오, 현대 아이파크, 롯데 캐슬, 대림 e 편한 세상 등 이른바 명품 아파트를 표방하는 건설사들이 시공한 아파트가 모두 포함돼 있습니다.

    건설사와 방화문 업체가 이곳에서 성능 시험을 했을 때는 모두 한 시간을 버텨 합격했던 방화문들입니다.

    그런데 입주민들이 의뢰한 실험에서는 5분, 10분 만에 불합격 판정을 받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수도권의 한 아파트.

    준공 도면에서 방화문 시방서를 확인해봤습니다.

    철판 두께는 1mm, 문 속의 충전 재는 불에 타지 않는 유리섬유라고 돼 있습니다.

    방화문을 뜯어 철판 두께를 재 봤습니다.

    0.7mm입니다.

    도면보다 얇은 철판을 사용한 겁니다.

    내시경으로 문 속을 들여다봤습니다.

    유리 섬유가 아니라 종이로 채워져 있습니다.

    손으로 잡아당겼더니 쉽게 찢어지고, 라이터를 갖다 댔더니, 단 1초 만에 불이 옮겨붙습니다.

    [김종복/ OO아파트 주민]
    "건설사에서 규격대로 안 했다는 얘기 아니에요. 그럼 건설사가 잘못됐다는 얘기지. 규격품을 안 썼다는 얘기지."

    부실은 이곳저곳에서 쉽게 확인됩니다.

    철판으로 만든 문인데도 쉽게 뒤틀리고 닫아도 틈이 벌어집니다.

    잠겨있는 문을 밀었더니 쉽게 열립니다.

    앞서 본 인천의 아파트도 마찬가지.

    아파트 지하 창고엔 성능시험을 한 방화문 수십 개가 쌓여있습니다.

    문 내부는 종이로 채워졌고 심지어 스티로폼까지 사용했습니다.

    [최준배 소방기술사]
    "시공의 편의성을 위해 가지고 스티로폼을 섞었어요. 이 스티로폼은 150도 또는 200도만 올라가면 상당한 가연성 가스가 나오게 되고.."

    그런데 이런 방화문을 가지고 건설사들이 어떻게 성능시험을 통과했던 걸까?

    2580은 방화문 제작 업체를 찾아가 봤습니다.

    [OO 방화문 업체 관계자]
    "성적서는 따로 제품을.. 따로 받죠. 실제 납품한 거하고 어쨌든 간에 성적서 하고는 (제품이) 좀 다르죠."

    다른 방화문 업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OO 방화문 업체 관계자]
    "방화 시험을 볼 적에나 실질적으로 제작을 해서 시제품으로 나가는 부분에 대한 거는 똑같이 생산을 해야 되는데 그거를 못한다는 얘기죠. (시제품은) 합격률이 20~30%도 잘 나오는 걸 거예요."

    성능 시험용 방화문은 제대로 만들고 실제 시공하는 문은 값싼 자재로 만든단 얘기.

    이같은 일은 건설사의 지시로 이뤄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OO방화문 업체 관계자]
    "방화문 업체에서 배짱 좋게 그렇게 (부실 제작)하는 업체는 없습니다. 그거는 이미 건설사하고 얘기가 진행이 돼서 '오케이. 해라' 라고 해서 하는 거지. 임의대로 (부실하게) 방화문 (제작)해서 그걸로 (사업) 말아먹을 일 있어요?"

    건설사는 보통 창호업체에 하청을 줘서 방화문을 만듭니다.

    그러면 창호업체는 다시 방화문 업체에 재하청을 줍니다.

    입주민이 방화문 값으로 충분한 돈을 지불해도 건설사와 창호업체가 중간에서 이익을 챙기기 때문에 실제 제작 업체는 적은 비용으로 방화문을 만들고 있다는 게 업계의 얘깁니다.

    아파트 세대 현관문을 기준으로, 30만 원이면 제대로 된 내화 성능을 갖춘 방화문을 만들 수 있지만 방화문 업체들이 받는 비용은 20만 원에 불과합니다.

    [OO방화문 업체 관계자]
    "(우리는) 욕먹어도 싸고요. 구조 자체는 저가 수주한 거기 때문에 이런 구조가 생기는 거지 아니 종합건설에서 (방화문 값을) 제대로 주고 제대로 일 시켜봐요. 그런 일 생기나."

    [OO 방화문 업체 관계자]
    "저희도 납품을 하고 시공을 하지만 왜 이러는지 참 안타까워요. 돈 몇만 원에 진짜 사람 안전 문제가 (왔다 갔다 하는데..)"

    하지만 건설사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보규/ OO 아파트 주민 대표]
    "(건설사가) 하자나 이런 부분을 인정했으면 저희들도 사실 협상으로 들어갔었을 거예요. 근데 화가 나죠. 방화문 관련해서 이미 다른 부분에 소송 진행 중이니까 자기네들은 상관없다. 쉽게 얘기하면 (건설사 측에선) '너네 마음대로 해라 우리도 전문 변호사 있고..'"

    법정에선 더욱 무책임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반포 자이를 지은 GS건설은 창호의 하자 보증 기간이 2년인데 입주한 지 이미 2년이 지났기 때문에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다른 건설사들도 입주한 지 시간이 지나서 방화문 성능이 떨어진 것일 뿐 처음엔 제대로 된 제품을 시공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OO 아파트 입주민]
    "그러면 우리는 입주하고 1년만 살고 다른 (새) 아파트로 이사 가야하고, 1년 살고 다른 (새) 아파트로 이사 가야 하고.. 정말 안전하게 살려면 그렇게 해야 되지 않나요? 건설사 말대로 한다면.."

    전문가들은 방화문과 관련한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최영동 변호사/서울 OO 아파트 방화문 소송]
    "하자 담보책임기간이 언제냐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법원에서 이거를 넉넉하게 잡아준다면 예를 들어서 10년으로 잡아준다라고 하면 그 기간 안에 방화문에 문제가 있어서 화재가 난다라고 한다면 확실히 손해배상 책임도 물을 수 있고 형사책임도 가능합니다."

    2580은 국내 대형 건설사 6곳에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거부했습니다.

    [OO 건설사 관계자]
    "인터뷰는 안 했으면 하거든요."

    [OO 건설사 관계자]
    "(담당 부서에) 인터뷰를 부탁드린다고 계속 얘기했는데 그쪽에서는 조금 어렵다는 답변을 계속 지금 하고 있어요."

    방화문은 불이 났을 때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성능 기준을 법으로 엄격히 정해놓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건설사들은 부실을 알고도 쉬쉬했고, 드러난 이후에도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불타는 방화문,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도 함께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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