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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최 훈 기자

헛도는 '1억 짜리' 쓰레기통

헛도는 '1억 짜리' 쓰레기통
입력 2016-05-23 09:59 | 수정 2016-05-2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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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물과 일반 쓰레기를 통에 넣으면 땅속을 통과하는 관에서 자동으로 분리돼 아파트 단지 밖의 집하 시설로 이동하는 첨단 집하 시스템, 이 시설은 음식물 쓰레기를 단지 안에 방치하지 않아 악취도 해결하고 친환경이라는 이유로 지난 10년 넘게 신도시와 대형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속속 들어섰습니다.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설치 비용이 600억 원, 세대당 300~400만 원의 적지 않은 돈을 부담해 설치한 시스템인데, 어찌 된 일인지 설치된 동네마다 분리 수거가 안 된다고 아우성입니다.

    쓰레기와 음식물이 한데 뒤섞여 재활용도 못하고 그냥 소각해 버리는 곳이 태반. 어떤 곳은 이런 문제를 이미 알고 몇 년째 사용도 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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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파주의 한 신도시.

    곳곳에서 상가를 짓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신축 건물마다 독특하게 생긴 쓰레기통이 설치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어마어마합니다.

    [상가건물 현장 소장]
    "(이게 얼마예요?) 1억 6천 주고 했습니다.(이게 1억 6천이에요?) 네.(쓰레기통이 몇 개예요?) 쓰레기통은 여섯 개에 환기구 하나."

    또 다른 건물에도 이 쓰레기통이 설치될 예정입니다.

    [상가건물 시공사 관계자]
    "(여기는 쓰레기통 얼마예요?)한 1억 2천 정돈데. (1억 2천만 원 쓰레기통이말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말이 안 되죠."

    이 비싼 쓰레기통을 왜 설치하고 있는 걸까.

    이걸 설치하지 않으면 시청이 건물 준공 승인을 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OO/건물주]
    "무조건 해야 됩니다. 준공 승인이 안 납니다. 분양도 할 수 없고 임대도 할 수 없고요. 그러니까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실제 파주시의 신도시 개발 계획에는 모든 신축건물은 이 쓰레기통을 설치해야 한다는 강제규정이 들어 있습니다.

    [OO시 관계자]
    "(이 쓰레기통 설치하지 않으면 준공 승인 안 나는 게 맞아요?) 그렇죠. 신도시 자체는 신도시는 어디는 하고 어디 안 하게 할 수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1억 원이 넘는 쓰레기통.

    황당하게 들리지만 이런 쓰레기통은 전국 신도시 곳곳에 설치돼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설치 비용만 1조 5천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 쓰레기통은 도대체 뭐길래 이런 막대한 돈을 들여 설치하고 있는 걸까요?

    김포 한강신도시의 한 아파트.

    쓰레기통에 칩을 갖다대면 문이 열리고, 쓰레기를 버리면 문이 닫힙니다.

    음식물 쓰레기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일반쓰레기는 일반쓰레기 통에 따로 버립니다.

    [김봉순]
    "여름철에 쓰레기 모이면 파리들도 꼬이고 그러는데 그런 게 없어서 좋고 24시간 버릴 수 있고요."

    이렇게 버린 쓰레기는 땅속으로 들어갑니다.

    지하에 지름 60cm짜리 관이 설치돼 있는데, 여기에서 시속 90km 속도로 공기를 빨아들여 쓰레기를 수거합니다.

    이렇게 수거한 쓰레기는 몇 킬로미터를 관을 타고 이동해 집하장으로 모입니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사람도, 차로 실어나를 필요도 없는 이른바 자동집하시설.

    대규모 아파트단지의 경우 전체 시설을 갖추는데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모인 쓰레기 가운데 일반쓰레기는 지역난방에 사용할 연료로, 음식물쓰레기는 비료나 사료로 만들어 재활용한다는 게 당초 목적이었습니다.

    과연 잘 되고 있을까? 쓰레기 집하장의 내부를 촬영한 화면입니다.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가 한데 뒤섞여 범벅이 돼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는 시커멓게 죽처럼 돼 버렸습니다.

    [김OO/주민]
    "이거는 음식물이다 쓰레기다 그렇게 구분이 안 가고. 그냥 쉽게 설명해서 완전히 죽이라고 보면 되죠. 그냥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죽.(실제로 보신 거죠?) 네. 네"

    원인은 간단합니다.

    집하장으로 가는 지하배관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쓰레기통은 일반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 두 개로 나눠져 있지만, 지하 배관으로 내려가면 결국 합쳐지기 때문에 서로 섞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김선홍]
    "너무 황당한 거죠. 위에는 두 개가 있는데 어떻게 관로가 하나. 밑에 들어가서 하나로 돼 가지고 그걸 청소기 식으로 빨아들여가지고 한다. 그게 이치적으로 안 맞는 겁니다."

    시속 90km의 빠른 속도로 공기를 빨아들이다 보니 음식물 쓰레기봉투와 일반 쓰레기봉투가 배관에 부딪혀 터지면서 내용물이 뒤섞입니다.

    이 때문에 일반 쓰레기를 먼저 수거하고, 일반 쓰레기 수거가 끝나면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는 이른바 '시간차 수거'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분리수거가 안 되는 문제는 여전합니다.

    애초에 물기가 많은 우리나라 음식물 특성상 배관 벽에 음식물이 들러붙기 때문입니다.

    [조병완 교수/한양대학교 건설환경공학과]
    "파이프엔 벽면에 마찰률이란 게 분명히 존재하는 거고. 근데 음식물 쓰레기라고 했을 때는 지방이라든지 유지 성분이라든가 기름성분이 있을 때 걔들이 벽면에 마찰률 0으로 깨끗이 흘러나갈 것이냐. 음식물 쓰레기를 송출했을 경우에 반드시 표면에 부착이 될 겁니다."

    직접 실험을 해본 감사원도 똑같은 진단을 내놨습니다.

    제조업체가 말하는 시속 90km보다 훨씬 강한 시속 120km 속도로 빨아들였는데도 음식물 쓰레기는 23%만 회수됐습니다.

    물기 많은 음식물을 관으로 이송하는 방식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또 다른 보고서들도 많습니다.

    [조병완 교수/한양대학교 건설환경공학과]
    "음식물 쓰레기는 보낸 다음에 반드시 물로 세척 내지는 앞서 관을 청소하고 나서야 한다면 그 방법은 이해하겠다. 그렇지 않고 지금 하는 방법으로서는 문제점을 안고 가야 되지 않나."

    지자체들이 이 음식물쓰레기를 비료의 원료로 활용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렇게 수거된 음식물 쓰레기엔 일반 쓰레기가 섞여 있기 때문에 비료나 사료로 사용해선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정승헌 교수/건국대학교 농축대학원 축산자원생산학과]
    "가축의 생명에도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질병을 야기시킨다든지. 가축의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유해요소가 될 수 있다. 따라 그러한 음식물 폐기물로는 사료를 만들어선 안 된다."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린 값비싼 쓰레기처리시설.

    지자체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전국 최초로 이 시설을 설치한 경기도 용인 수지2지구에선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그냥 한 통에 버립니다.

    [박OO/주민]
    "네, 넣는 통은 똑같아요. 근데 봉투 자체는 따로 있어요. 슈퍼에서 따로 팔아요.(봉투 다르고 넣는 곳은 똑같고) 네."

    성남시와 용인시는 아예 조례를 통해 쓰레기 자동 집하 시설의 경우 예외적으로 식물과 일반 쓰레기를 함께 소각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분리배출을 하지 않으면 10~20만 원의 과태료를 물지만, 결국은 한꺼번에 소각되는 겁니다.

    모든 쓰레기는 자원화해야 한다는 정부 기본 정책방향에도 어긋나지만 환경부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합니다.

    [김영우 과장/환경부 폐자원관리과]
    "저희가 지자체한테 그렇게 하지 말라고 계도를 할 수 있겠지만 나름대로 생활 폐기물 처리 원칙과 주체와 책임은 지자체장이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다 보니 설치만 해놓고 아예 사용하지 않는 곳도 많습니다.

    인천 남동구의 46층짜리 고층 아파트.

    자동집하시설이 설치돼 있어서 층마다 음식물 쓰레기 전용 투입구가 있지만, 주민들은 건물 바깥까지 내려와서 쓰레기봉투를 버리고 있습니다.

    [최춘자]
    "불편한 정도가 아니고 이거는 자체가 안 되는 거죠. 여름 같은 때는 따뜻해서 괜찮아요. 내려올 수도 있고 한데, 겨울 같은 때는 춥거든요."

    결국, 시설 설치비용은 비용대로 쓰고 직접 수거 비용까지 이중으로 드는 겁니다.

    고장이 잦은 것도 주민들의 불만입니다. 쓰레기통에 칩을 갖다 대도 작동하지 않거나.

    "(어머니 이거 고장 난 지 얼마나 됐어요?)굉장히 오래됐는데. 겨울부터 그랬어요.(작년 겨울부터?) 네."

    아예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쓰레기통도 많습니다.

    [안시영]
    "되다가 한 달을 못 버티고 가동이 안 되고 고장이 났었다니까요.(그럼 고장이 몇 번 난 거예요?) 셀 수 없죠. 셀 수가 없죠."

    고장이 나서, 또는 고장이 날까 봐 시설을 사용하지 못하다 보니, 이 시설이 뭔지도 모르는 주민도 많습니다.

    [아파트 주민]
    "(이게 쓰레기통인지도 모르셨어요?) 네, 여기 뒤쪽으로 자주 오긴 하는데 그냥 쓰레기통인지 몰랐어요."

    관할 지자체는 계속해서 시설을 사용하라고 지시하지만, 아파트 관리소장이 거부하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이미 문제가 되고 있는 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가동했다 고장 나면 주민들이 비용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상규/아파트 관리소장]
    "기존 단지들 보면 고장이 나면 입주민 비용 부담으로 수리를 해야 되고. 그게 이제 입주민들 관리비라든지 이런 비용으로 부담이 돼야 하는 문제가 있고."

    [이문재/아파트 주민]
    "어느 지역에서는 이게 막혀가지고 그거를 뚫으려고 해보니까 그게 비용이 10~20억 들어간다는 얘기를 할 정도로 문제가 되니까 그거를 지자체에서 부담을 할 거냐. 아파트 문제니까 아파트에서 분담하라고 옥신각신 굉장히 오랫동안 싸웠어요."

    쓰레기 자동집하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관련 기관과 지자체들은 이 시설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OO시 관계자]
    "음식물은 깨지고 관을 통해서 오다 보니 자꾸 섞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재활용은 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담당 공무원들은 이런 내용을 다 알고 계신가요?) 다 인지를 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도 어떻게 이 시설은 계속 설치될 수 있었을까?

    한 대학 교수팀과 한 민간 평가업체가 2009년부터 작성해온 성능성적서.

    이 성적서엔 분리수거가 가능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8~90%가량 회수 가능하다고 돼 있습니다.

    이 성적서들은 2~30군데 지자체에 제출됐고 지자체들은 이를 근거로 시설을 도입했습니다.

    성적서를 작성한 교수에게 연락해봤습니다.

    성능 성적서에 문제는 없지만 배관 상태에 따라서는 실험 결과와 실제 상황이 다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ooo교수/성능 성적서 작성]
    "(청소가 안 되기 때문에 분리수거가 안 되는 일들이 발생한다. 이렇게 정리하면 돼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럴 수도 있죠. 여러 가지 그거는 조사를 해봐야 하지만 그런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죠."

    쓰레기 자동집하 시설은 스웨덴계 업체가 1999년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왔고, 이후 LH와 각 지자체들이 앞다퉈 도입해, 지금은 인천 청라와 송도, 서울 은평뉴타운과 세종시 등 전국 40개 지역에 설치돼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곳은 없습니다.

    이 시설을 들여온 스웨덴 업체는 자신들은 지자체가 요구해서 납품했을 뿐이며, 성능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LH 토지주택공사는 주민들을 탓합니다.

    [LH 한국토지주택공사 관계자]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긴 있어요. 음식물 쓰레기봉투, 터지도록 꽉 채워서 빵빵하게 해서 이렇게 넣으시는 분도 계시고 그다음에 이불도 넣으시는 분도 계시고..."

    일부 지자체들은 큰 문제가 없다면서도 선뜻 해명하지도 못합니다.

    [파주시 관계자]
    "저희는 분리를 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퇴비화하고 있고요. (아 그래요. 잘되고 있으면 저희가 촬영할 수 있을까요?) 저희가 근데 그게 지금 촬영은 조금 힘들 것 같아요."

    환경부는 지자체 소관이라 개입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김영우 과장/환경부 폐자원관리과]
    "시장 군수가 인허가 사항에 대해서 지켜라.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말씀드린 대로 시설 폐쇄한다거나 중지한다든가 이런 것들은 더 큰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주민 편의를 위하고, 쓰레기 재활용을 위해 만들었다는 자동집하 시설.

    주민들이 먼저 요구한 적도 없는 시설이지만 비용은 모두 주민들이 냈습니다.

    가구당 3~400만 원씩 설치비가 분양가에 포함된 겁니다.

    [김선홍/시민단체 글로벌에코넷]
    "가구당 3백만 원인 것은 토지. 그 조성대금에 포함돼 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모르는 겁니다. (김포 신도시만) 7만 세대에 한 2천억 원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한 시민단체는 이 시설 때문에 주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며 제조업체와 LH 토지주택공사, 12개 건설회사를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장현철 위원장/전국쓰레기자동집하시설 피해방지 대책위원장]
    "정체불명의 시설을 가지고 신도시 전역의 지하를 전부 이렇게 환경오염 시설을 설치해 놓고 환경 재앙을 만들고 있습니다."

    효과도 없고, 천문학적인 돈만 들고, 심지어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도 짓고 있는 시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하나하나 철저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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