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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20회 Full] 강제징용 피해배상판결 왜 지연?

[스트레이트 20회 Full] 강제징용 피해배상판결 왜 지연?
입력 2018-09-10 11:09 | 수정 2018-09-1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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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세웅 / salto@mbc.co.kr
    김정인 / tigerji@mbc.co.kr

    ◀스튜디오1 ▶
    김의성 안녕하십니까. 스트레이트 김의성입니다.
    주진우 안녕하세요. 주진우입니다.

    김의성 네. 오늘 저희 스트레이트가 전해드릴 내용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고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바로 일제강점기 때 참혹한 노역에 시달렸던 징용 피해자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진우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의 탄광이나 공장으로 끌려가서 노예 같은 환경에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5년 전에 피해배상판결을 통해서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아주 조금이나마 보상받게 됐었어요. 그런데 박근혜 정부와 법원이 이것을 뒤집고 지연하려는 음모가 밝혀졌습니다.

    김의성 그, 강제징용이라고 하면 저는 군함도라는 영화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요.

    주진우 네네

    김의성 좁은 갱도에서 배고픔과 학대를 견디면서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그런 모습들. 영화를 보면서 참 가슴이 먹먹하고 참혹스러웠습니다.

    나세웅 말씀하신 영화 군함도로 유명한 이 하시마 섬은 일제 대표적인 강제징용 장소 중 하나입니다. 이것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일본 전범 기업들은 전쟁 물자를 대기 위해서 이 조선 반도에 소년, 소녀들까지 끌고 가서 노동력을 착취했습니다.

    주진우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90년대 들어서야 일본 정부에게 사과도 요구하고 배상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재판이 잘 되지 않았어요. 20년 긴, 긴 그 소송전 끝에 의미 있는 판결이 없었던 거는 아닙니다.

    나세웅 맞습니다. 일본과 한국 법원에서 줄줄이 소송이 기각 당했었습니다.

    주진우 주로 졌죠.

    나세웅 네. 2012년도 대법원에서 대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 대법원이 처음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인정한 겁니다.

    김의성 아, 그렇습니까.

    김정인 네, 이듬해인 2013년 7월에는 일본 전범기업이 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 배상하라는 판결까지 나오기도 했습니다. 강제징용자들에게는 긴 어둠의 터널이 끝나고 한 줄기 빛이 보이는 듯도 했던 겁니다.

    김의성 그럼 해결이 잘 된 거 아닙니까?

    나세웅 아, 불행히도 아닙니다. 2012년도 이 전범기업이 배상해야 된다는 판결 이후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우리 대법원이 석연치 않은 핑계를 대면서 5년 넘게 최종 판단을 미루고 있는 겁니다.



    ◀ 1. ‘강제 징용’ 피해자 또 별세...소송 하다 숨진다 ▶

    지난 2013년 7월,
    법원을 나서는 여운택 할아버지의 얼굴이
    상기돼 있습니다.

    일본 전범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 배상해야 한다는 최초의 판결.

    지옥 같은 강제징용 현장으로 끌려간 지
    70년 만입니다.

    여운택 / 강제징용 피해자, 2013년 7월 10일
    "잡혀가지고 일본에 종으로써 2년간 매도 많이 맞고 죽을 뻔도 여러 번 당했습니다. 다만 말씀드리기는 울음 밖에 드릴 게 없습니다.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비록 일본 전범기업으로부터
    직접 사죄는 받아내지 못했지만,
    조국 대한민국 법원이
    오랜 한을 풀어준겁니다.

    아흔의 여할아버지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여운택 / 강제징용 피해자, 2013년 7월 10일
    소득 없는 일에 염려와 힘을 써주신 여러분께 백번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1943년부터 2년 동안,
    일제 전범기업인 일본제철의 오사카 제철소에서 노예처럼 일했습니다.

    용광로에 무릎이 불타는 부상을 당했지만
    치료조차 받지 못했고, 준다던 월급도 말 뿐이었습니다.

    이춘식, 신천수, 김규수 할아버지도
    일본제철에서 참혹한 노역에 시달렸습니다.

    만 열다섯, 열일곱, 열아홉 살이었습니다.

    김규수 법정 진술서(음성 대독)
    "어린 나이에 낯선 외국에 강제 동원되어 고된 일을 하다 보니 밤낮으로 울며 지냈습니다. 친구와 함께 도주하다가 붙들려 7일 동안을 고문과 굶주림으로 더욱더 두려움 속에서 지냈고 목숨만 살아 돌아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을 했습니다."

    미군의 일본 본토 공습이 시작된 전쟁 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식민지에서 착취한 노동력에 불과했습니다.

    굶주림은 일상이었고
    삶은 요행이었습니다.

    신천수 법정 진술서 (음성 대독)
    "공습으로 오사카 전체가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촛불 빛 아래서 마취도 없이 톱으로 오른쪽 발을 절단했고 저는 울부짖는 그의 옆에서 돌봐주었지만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간신히 살아 돌아왔지만,
    박정희, 전두환 등 군부정권 치하에선
    가슴에 맺힌 억울함을 호소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 90년대부터 우리 정부에 호소하고
    한국과 일본 법원의 문을 두드리길 20여 년,

    2012년, 한국 대법원의 김능환 대법관 등
    4명의 대법관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제 전범 기업의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합니다.

    “만세, 만세, 만세!”

    이에 따라, 서울고등법원이
    피해 할아버지들에게 1인당 1억 원 씩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놨고,

    전범 기업은 한국 최대 법률사무소
    김앤장을 내세워 대법원에 다시 상고했지만, 곧 재판이 끝날 거란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그러나 재판이 이유 없이 늦어지면서 여운택 할아버지는 지난 2013년 말,
    결국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나는 요즘 여운택 어르신 많이 그리워"

    두 명의 생존 원고 중 한 명으로 알려진
    김규수 할아버지도 석 달 전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최 모 씨 / 유가족
    "당신 소원 풀어드린다고 여러 분들이 오셨는데... 조금만 더 살다 가지...“

    대법원이 전범기업의 책임을 인정해
    열다섯 살의 나이에 끌려갔던 한을 푸는 게
    마지막 소원이었습니다.

    최 모 씨 / 유가족
    "해결이 돼야 할 텐데. 우리 생전에 해야 될 텐데. 그게 자기들은 입버릇처럼 하는 말. 우리가 이걸 해결해야 되고"

    ◀ END ▶

    ◀ 스튜디오2 ▶

    김의성 네. 법원이 최종판결을 미루는 사이에 정작 피해자들은 사과 한 마디 듣지 못하고 결국 한두 분씩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왜 법원은 이렇게 일정을 늦췄던 걸까요?

    나세웅 법원의 공식적인 입장은 이렇습니다. 강제징용과 관련한 소송이 여러 건이다 보니까 서로 통일되고 모순되지 않게 처리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또 법리 검토도 오래 걸렸다는 게 법원의 해명입니다.

    주진우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는 납득이 안 됩니다. 제가 재판을 많이 받아봐서 이 부분은 제가 좀 압니다. 책도 썼거든요. 그런데 대법원에서 판결이 난 사항에 대해서는 다시 판단을 받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보통 수개월, 길어도 1년이면 나와야 되는데 5년 간 끌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이례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데요. 정치적 고려, 또 다른 판단이 개입됐다는 겁니다.

    김정인 실제로 이미 대법원이 한 번 판단을 내린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상대가 상고를 한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추가 변수가 없는 한에는 대법원의 기존 판결 그대로 최종 확정이 나는 게 대부분입니다.

    김의성 네. 그렇다면 최종판결이 이렇게까지 지연 되는 데에는 뭔가 다른 내막이 있을 것 같은데요.

    나세웅 내막을 보려면 일단 12년도 이 판결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일본 전범기업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이 판결은 당시 국내외 법조계로부터 아주 전향적이고 기념비적이다. 이런 평가를 받았었습니다.

    김의성 아, 어떤 의미죠.

    나세웅 기존 일본 판결은 이 한국에 대한, 그러니까 조선반도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이라는 전제 하에 식민지 국민을 당시 법에 따라 강제로 징용한 것 자체도 합법이다.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법원은 우리의 헌법정신 상 한국 지배는 명백한 불법이고 따라서 불법 지배하에 행해진 우리 국민의 강제징용 역시 불법이라는 해석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주진우 그래서 대법원의 판단이 뒤집어지기 어려운 거예요. 만약에 이걸 뒤집으려면 일본에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이었다. 이렇게 말해야 되거든요.

    김의성 그렇다면 더더욱 이 판결을 서둘러서 최종 선고를 빨리 내리고, 국가의 자존과 존엄을 높이고 고령의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도 원활하게 이루어내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세웅 네.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이 판결을 뒤집으려는 치밀한 공작이 청와대와 대법원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습니다.

    ◀ END ▶


    ◀2. ‘재판 미루고 뒤집자’
    1, 2차 비밀회동 ▶

    지난 2013년 12월 1일 오전 10시.

    일요일 아침부터 서울 삼청동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에
    박근혜 정부의 고위 인사들,
    그리고 대법관 1명이 은밀하게 모입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
    황교안 법무부 장관,
    그리고 대법원을 대표해
    당시 법원행정처장인 차한성 대법관이 참석합니다.

    청와대와 달리
    출입기록이 남지 않는 비서실장 공관에서
    비밀 회의가 열린 겁니다.

    이들이 비밀리에 논의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검찰에 따르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 자리에서
    전범 기업이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2012년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며 배상에 따른 외교적 파장과 향후 대책 등을 언급합니다.

    김기춘 실장은 한술 더 떠,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최대한 미루거나
    아예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판결을 뒤집어 달라"며 노골적으로
    재판 지연과 개입을 요구했다는 겁니다.

    이 자리에서 차한성 대법관은,
    일본의 전범기업들에게 소송 서류를 보내는 절차, 즉 국외송달이 오래 걸린다는 핑계를 대고 소송을 끌 수 있다는 꼼수를 제시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입니다.

    대법관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퇴임 뒤
    국내 굴지의 법무법인에 몸을 담고 있는
    차 전 대법관을 찾아갔습니다.

    차한성 전 대법관 지인 /
    "내가 알기로는 혹시 무슨 일이 뭐 오해 살까봐 일절 누구랑도 내가 알기로는 인터뷰 안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저희가 온 걸 알고 지금 아예 차를 돌려보냈어요. 회사에서 제공하는 차를 “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차 전 대법관을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은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뒤늦게 차 전 법원행정처장 측은
    "비서실장 공관 회동에 참석한 것은 맞다"면서도 "검찰 수사를 앞두고 언론 인터뷰에
    응하기 어렵다"는 입장만 내놨습니다.

    1차 비밀 회동 이듬해인 2014년 10월.

    김기춘 비서실장 공관에서
    다시 2차 비밀 회의가 열렸습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신임 법원행정처장인 박병대 대법관은 물론,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 황교안 법무부 장관, 정종섭 행정안전부 장관 등
    박근혜 정권의 주요 인물들이 참석했습니다.

    검찰은 1차 비밀 회의 때 나온 재판 지연 및
    뒤집기 전략을
    중간 점검하기 위한 자리로 보고 있습니다.

    대법관 전원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회부해 판결을 바꾸자는
    협의를 했다는 겁니다.

    판결을 뒤집기 위한 명분으로
    외교부가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이후 실제 외교부는
    "대외적 신인도가 떨어진다"
    "한일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부정적인 내용의 의견서를
    대법원에 공식 제출합니다.

    결과적으로 일본 전범 기업을
    돕게 되는 일을 하기로 뜻을 모은 겁니다.

    이날 회동에서
    특히 주목되는 인물은 박병대 대법관.

    12년도 대법원 판결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할아버지들의
    손을 들어준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박 대법관은 무엇을 위해
    자신의 판결을 스스로 뒤집으려는
    박근혜 정권의 공작에 가담했던 것일까.

    박 전 대법관을 찾아갔지만
    여전히 종적을 감춘 채였습니다.

    "박병대 처장님 안에 계십니까.
    박병대 처장님, 저 여쭤볼 것이 있어서 왔는데요."

    지난 달 출소한 김기춘 실장을 만났습니다.

    일제 전범기업을 위해
    대법원 판결을 뒤집으려 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김기춘 / 전 청와대 비서실장
    “강제 징용 판결, 이 판결을 뒤집자
    처음 아이디어를 누가 낸 겁니까? "
    "......"
    "대법관들까지 불러가지고 재판 거래, 공관에서 하신 이유가 뭡니까?"
    "......"
    "강제징용 피해자들보다 피해자들 배상해주는 것 보다 한일관계가 더 중요했습니까?"
    재판 거래까지 하신 이유가 무엇이죠?"
    "......"

    굳게 입을 다물었습니다.

    하지만 김기춘 실장은 검찰 조사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시킨 일이라고 실토했습니다.

    1차 비밀 회동 직전인 2013년 11월 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김 실장에게
    "법원에 얘기해 일제 강제징용 재판을 해결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따라 비밀 회동을 추진했다는 겁니다.


    ◀스튜디오3▶
    김의성 야, 정말 청와대와 법원이 똘똘 뭉쳤군요. 이거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청법유착입니까?

    주진우 청와대, 법원뿐만 아니라 외교부까지 가세한 삼각유착입니다. 특별히 1,2차 비밀회의에 참석한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을 주목해야 합니다.

    김의성 아, 뭔가요.

    주진우 외교부 장관에 오르기 직전까지 윤병세 전 장관은 김앤장에서 고문으로 근무했습니다. 그런데 법무법인 김앤장은 신일본제철, 미쯔비시 중공업 등 전범 기업의 네, 법률회사였어요. 그래서 변호를 맡고 있는데 당시에 윤 전 장관이 강제징용 소송 대책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니까 김앤장에서 전범기업을 위해서 활동하던 분이 바로 외교부 장관으로 옷을 갈아입고 청와대에서 대응전략회의를 했던 것이죠.

    김의성 애초에 잘못된 인물이 장관 자리에 앉은 건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은.

    주진우 그렇습니다.

    김정인 이쯤 되면 윤병세 장관의 외교부가 과연 대한민국의 외교부인지. 아니면 일본 전범기업의 대리부서인지. 참 헷갈릴 지경입니다.

    나세웅 그리고 또 여기서 한 사람, 법원에서 눈여겨 볼 사람이 있습니다. 이 박병대 전 법원 행정처장입니다.

    김의성 아, 박병대. 그 이름은 우리가 지난번에 사법농단 다룰 때 핵심 인물로 지목했던 바로 그 사람 아닙니까?

    주진우 그렇습니다. 잊지 말자. 박카리. 박 카리스마. 기억하고 계시죠. 박병대 대법관은 2012년 판결 당시에 김능환 대법관과 함께 강제징용을 일본 전범기업에서 배상하라고 판결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내린 판결을 뒤집거
    나 미루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죠.

    김의성 자신의 판결을 뒤집는다. 이거 정말 이상한 일인데요. 물론 대법원 입장에서도 결심 판결을 다시 뒤집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일 거고요.

    나세웅 그래서 법원 행정처가 내부적으로 검토한 문건을 보면 이 지연전략. 늦추는 게 더 현실적으로 가장 안전하다. 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배상판결을 지연시키려는 법원은 갖은 꼼수를 동원했습니다.
    ◀ END ▶

    ◀3. 번역에 3달? 지연하는 사이
    생존 원고 1명으로 줄어 ▶

    강제징용사건 판결을 늦추자는
    박근혜 청와대와 양승태 대법원의 공작은
    어떻게 실행됐을까.

    국내가 아닌 일본 전범 기업에게
    소송 서류를 보내면서 시간을 끌자는
    꼼수를 대법원은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법원은 일본에 있는 전범 기업에게
    소송 통지서를 발송하는 데만 석 달이
    걸렸습니다.

    번역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 게 이유입니다.

    과연 그럴까.

    스트레이트가 입수한 소송 통지서.

    이 가운데 번역해야 할 분량은 단 한 장입니다.

    소송 기록이 접수됐다는 것과
    유의사항을 알려주는 내용이 전부입니다.

    번역과 공증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혜영 대표/ 번역 공증업체
    "일반적인 서류라고 할 수 있어요. 상단 부분의 인적 사항이나 뭐 이렇게 간단한 게 나와 있고요.
    하단에는 이제 법원의 안내문이 나와 있는 거기 때문에 이건 무슨 계약서나 뭐 그런 복잡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이틀이면 충분하게 (번역을) 끝낼 수 있는 서류입니다. “

    이렇게 서류 발송에 석 달,
    다시 도착하는데 여섯 달이 걸렸습니다.

    그사이
    강제징용 피해자 여운택 할아버지는
    2013년 말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법원은 이듬해에야 법리 검토를 시작했고 2016년 11월부터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할지, 말지를 논의하는 데만 2년 가까이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강제동원 피해자 신천수 할아버지도 노환으로 숨졌고, 김규수 할아버지도 최근 세상을 등졌습니다.

    양승태 대법원과 청와대의 의도대로
    재판이 하염없이 늦어지면서 강제징용 피해 소송 당사자 4명 가운데 3명이 사망한 겁니다.

    작은 태극기가 내걸린 이춘식 할아버지의 집

    이제 배상 소송에 참여한 유일한 생존자입니다.

    이춘식 / 강제징용 피해자
    “아 내가 또박또박 다 기억을 잊어버렸네”

    올해 98살.

    백 살에 가까운 나이지만
    종일 석탄을 퍼올려야 했던 강제 노역의 기억은 또렷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춘식 / 강제징용 피해자
    “(석탄이) 한 차에서 땅바닥에 쏟아지면 그러면 쇠망치로 이만큼 또 깨.

    그럼 땀 찍찍 흘리고 깨지. 깨서 그러고 해놓으면 또 이제 차가 와서 차에서 또 실어가지.
    뭐 어린 아이들이지. 어린 피노력이지."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과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재판을 시작한 지 13년.

    이 할아버지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습니다.

    이춘식 / 강제징용 피해자
    "내가 (배상받을) 희망이 있어? 난 희망이 없다고 보네 내 자신이.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내 개인으로서 도저히 해나가질 못하겠어. 힘이 없어 이제 늙어서. 어디 왕래를 못하겠고. 가만히 앉아서 그냥..."

    "(결과를 기다린 게 진짜 오래되셨잖아요) 그니까 오래됐는데 어째서 이렇게 오래된 이유가 어쩐지 내가 그걸 제대로 모르겠어.“

    이춘식 할아버지처럼
    일본 본토와 만주 등 각지로
    끌려간 피해자들은 7백8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대법원이 청와대와 짜고 강제징용 판결을
    미루는 사이에도 차례차례 세상을 뜨고 있고,

    피해자들이 낸 다른 소송 16건도
    재판의 잣대가 될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며
    멈춰 서 있습니다.

    //

    ◀ 스튜디오4 ▶

    김의성 네, 대법원에서 이렇게 시간을 끄는 동안 이 고령의 피해자들은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국 손해배상소송을 냈던 강제징용 피해자 어르신들 중에서는 이춘식 어르신, 한 분만 생존해 있게 됐습니다.

    주진우 정말 눈 감으신 징용 피해자 어르신들도 하늘나라에서 눈을 감기 어려우실 것 같아요. 최종판결을 이렇게 고의적으로 미루고 있는 법관들. 이 사람들한테 따져 묻고 싶습니다. 법비와 뭐가 다르냐고요.

    김의성 그런데 이렇게 고의적으로 재판을 지연시키는 것은 단지 재판 지연뿐 아니라 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이런 얘기죠.

    주진우 어떻게 보면 판결 지연은 법원 절차상 있을 수 있는 일로 보이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강제징용 소송의 경우 피해자들이 사라지는 것이 가장 편한 작전입니다. 그래서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사실 생전에 일본의 사과를 듣겠다고 하신 일입니다. 돌아가신 후에 보상을 받으면 뭐 합니까. 사과를 받으면 뭐 합니까.

    나세웅 그리고 판결을 늦추는 거, 판결 지연은 이 한 소송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강제징용소송 결과를 보고 추후에 후속 소송들이 많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이 되는데요. 그래서 후속소송을 진행할 사람들도 그 의지가 꺾이게 된 셈입니다.

    김정인 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는 사이에 강제징용을 일삼은 일본의 전범기업들은 세계 굴지의 대기업으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이 전범기업을 청와대와 외교부, 그리고 양승태 대법원이 합심해서 결과적으로 도와주고 있었던 셈입니다.

    ◀ 4. 전범기업의 편에 선 대법원? ▶

    태평양 전쟁 당시 일제 항공대의 주력 전투기 '제로센'.

    가미카제 특공대의 자살 공격용으로도 쓰였습니다.

    '제로센'을 생산했던 전범기업 미쓰비시는 2차 대전을 거쳐 재벌로 급성장했습니다.

    미쓰비시를 비롯한 일제 전범 기업들은 열 살 갓 넘은 조선의 소녀들을 전투기 공장 등으로 끌고 갔습니다.

    당시 13살이던 김정주 할머니는 하루 종일 강제 노역을 해야만 했습니다.

    김정주 / 강제징용 피해자
    “13살, 14살 모두 다 15살, 16살이니까. 한 아이가 저기를 쳐다보고 저기가 우리 고향이다 하면 다 거기를 쳐다보고 울어요. 한 방에서, 숙소에서.

    배가 고파서 기숙사에 있는 풀을 막 무조건 뜯어서 밥으로 먹는 거예요. 그러니까 머리가 빠지고 병에 걸리고 그랬죠.“

    살아남은 소녀들은 일제가 패망한 뒤에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양금덕 / 강제징용 피해자
    “해방이 되어서부터 우리 어머니는, (제가) 10월 25일 날 도착했는데 8월 15일부터 하루에 세 번씩을 (역에 마중을) 다녔어요. 이 차에 나올까, 저 차에 나올까. 고무신 한 켤레가 다 찢어지고.”

    고향으로 월급을 보낸다고 했던 일제 전범 기업들은 10대 소녀가 아흔의 할머니가 될 때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60여년이 지나서야 강제노역의 대가로 후생연금이라며 달랑 99엔,
    우리 돈 1,082원을 보냈습니다.

    양금덕 / 미쓰비시 한국 본사 앞 (2010.1.28)
    "문 열어라 이놈들아! 문 열어라 이놈들아. 아이고 억울해 죽겠네."

    양금덕 / 99엔 시위현장 (2011.10.18)
    "자 보세요. 나 13살 때 갔던 그 2년간 노력한 대가가 내 목숨 값이 이것이요. 이렇게 줘야겠어요? 내 66년 만에. 우리 한국 사람이 이렇게 모독을 당해도 되겠습니까?

    조선 청년들을 일본 각지의 제철소로 끌고 가 강제노역을 시켰던 일본제철은 전후에 일본 최대, 세계 최고의 철강 기업 중 하나가 됐습니다.

    이런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일제 전범기업의 책임을 묻는 소송은 1990년대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시작됐습니다.

    최종심에서 전범기업의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은
    강제징용 70년 만인 지난 2012년 한국에서 나옵니다.

    일제 전범 기업들은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의 한일 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배상이 이미 끝났다고 주장해왔지만,

    한국 대법원은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피해자가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겁니다.

    이에 따라 한국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이 줄줄이 배상 판결을 내리자 전범 기업들은 결국 배상 준비에 나섰습니다.

    (뉴스데스크 2013.8.18)
    “신일본제철은 강제 징용됐던 여운택 씨 등 4명에게 각각 1억 원씩을 배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습니다.”

    우리 대법원 판결 이후 일제 전범기업들은 미국 사람들에게는 고개를 조아리며 사죄했습니다.

    기무라 히카루 / 미쓰비시 머티리얼 상무(2015.8.11)
    "미쓰비시 광업의 탄광에서 일했던 모든 미국인, 전쟁 포로 분들, 그리고 가족들, 유족들에게 사죄드립니다.

    제임스 머피 / 미쓰비시 강제노역 피해자 (2015.8.11)
    "지난 70년 동안 오늘을 기다렸습니다."

    우리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일제 전범기업들은 중국의 강제노동 피해자들에게도
    1인 당 10만 위안, 우리 돈 1천8백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중국 캉졘 변호사 [음성대독]
    "중국 매체에서도 (한국의 대법원 판결) 소식을 보도했고... (중략) 해당 판결은 한국 피해자들이가해자를 상대로 청구권을 가진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청와대, 외교부는 이런 전범기업들의 편에 서서
    우리 대법원의 역사적인 판결을 뒤집기 위한 비밀회동까지 열어 가며 공작을 벌였습니다.

    양금덕 / 강제징용 피해자 (2015.8.11 기자회견)
    “(일본기업이) 미국 가서 (피해자들에게) 다 사죄하고 중국 (피해자들에게)도 각각 사죄했는데 왜 늘 우리 한국에만 사죄 한 마디도 안 하는 원인이 도대체.”

    김정주 / 강제징용 피해자
    "어디 이럴 수가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우리를 도와줘야지. 어째 일본나라 편들려고."

    ◀ 스튜디오 5▶

    김의성 네. 똑같은 강제징용을 당했는데 미 국인은 사과를 받고, 중국인은 배상을 받고, 우리 한국인은 아무 것도 받지 못했군요.

    주진우 중국 강제징용 노동자들에게는 한 사람당 1,800만원의 배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강제징용 노동자들은 1,080원. 1,080원을 주었습니다. 이거는 돈이 아니라 모욕입니다. 모욕.

    김의성 그런데 사실 중국이 강제징용자들의 손해배상에 뛰어들게 된 것도 우리나라에서 있었 던 2012년 판결에 영향을 받은 것 아닙니까?

    나세웅 맞습니다. 우리나라 강제징용자들이 이 피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으면서 중국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혜택을 본 셈입니다.

    주진우 더 안타까운 사실은 강제징용 피해자들 가운데 조선의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김정인 네. 1940년대 중반, 국제노동기구 조항에 따르면 14세 미만 아동은 노동을 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그 조항을 일본인에게만 적용을 시키고 조선에는 적용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11살, 12살 아이들이 남녀 따지지 않고 강제로 끌려가서 혹독한 노동을 한 겁니다.

    김의성 11살, 12살짜리 아이들도 끌고 갔다고요?

    김정인 네. 그렇습니다. 10살, 12살 아이의 사망기록까지 나와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강제 동원을 집행했던 한 일본인조차 그 어린 조선 아이들을 끌고 가면서 손을 이렇게 잡고 만져 봤다고 해요. 왜냐면 손이 너무 작아서, 이렇게 손도 어려서 손이 작은 아이를 끌고 가서 무슨 일을 시키겠냐. 이런 말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김의성 일본인조차 이렇게 증언할 정도로 우리 국민이 이런 끔찍한 전쟁, 범죄 피해를 당한 것인데 박근혜 정부와 사법부는 이런 피해를 적극적으로 밝혀내기는커녕, 가해국인 일본의 입장에 서서,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주진우 도대체 우리 정부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요.

    김정인 네. 그래서 짚어봤습니다. 양승태 대법원과 청와대가 왜 그렇게 배상판결을 뒤집으려고 몰두했는지, 그리고 거기에 충성한 양승태 대법원은 과연 대가로 무엇을 얻으려고 했었는지 아마 아시면 어이가 없을 겁니다.

    ◀ 5. 양승태 대법원은 도대체 왜?▶

    2013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제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 문제를 해결하라고 김기춘 실장에게 지시했습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5년 체결한 한일 청구권 협정,

    그러니까 일본에서 미화 5억 달러를 받고는 더 이상 일제 36년 동안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의식했기 때문이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진에 ‘일본 전범기업의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면 나라 망신’이라며 강하게 얘기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이와 같은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한 양승태 대법원은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던 2012년 대법원 판결을 스스로 뒤집기 위해 공작을 시작합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전범기업의 소송 대리인인 김앤장까지 동원하기로 기획한 문건을 확보했습니다.

    문건엔 김앤장이 2012년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의견서를 외교부에 요청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그리고 이 요청을 받은 외교부는 2016년 11월,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묻는 대법원 판결이 한일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등의 의견을 내놓게 됩니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법원행정처가 2012년 대법원 판결을 전범기업에 유리하게 다시 뒤집는 시나리오를 세웠던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이트 취재 결과 검찰은,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 등이 외교부에 의견서를 빨리 달라고 재촉하면서 이 문제를 "양승태 원장의 임기 내에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고, 심지어 외교부의 의견서를 직접 법원행정처가 감수까지 했던 정황을 확인했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은 왜 이런 짓까지 해야 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았더라면 양승태 후임 차기 대법원장은 박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박병대, 차한성 대법관 등이 유력한 차기 대법원장 후보로 꼽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김기춘 실장 주도의 2차례 비밀 회동에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의 뜻에 따라 전범기업에 유리하게 대법원 판결을 지연시키거나 2012년 판결을 아예 뒤집으려는 공작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유력한 대법원장 후보들이 임명권을 가진 박근혜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일제 전범기업의 편에서, 재판을 거래한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이 됐고 박병대, 차한성 두 대법관은 대법원장 자리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인물들에게 충성했던 법원 판사들이 전범 기업 측에 협조하고 얻은 것은 무엇일까.

    양승태 대법원은 외교부와 재판을 협의하며 해외 공관에 파견되는 판사의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외교부에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모두 없어졌던 해외 공관 파견 판사 자리 5개가 2013년부터 실제로 다시 생겼습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부활한 해외 파견 판사는 1년 짜리 단기 해외연수와 달리 해외 공관에서 별다른 업무를 하지 않으면서도 외교관 신분으로 2~3년을 해외에 머물 수 있는 특혜성 보직입니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해외파견 법관 자리가 10년 차 가량의 젊은 판사들을 길들이기 위한 당근으로 사용됐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A 변호사 / 판사 출신 [음성대독]
    "가장 중요한 게 이제 근무평정과 법원장 추천이 중요한데 법원장으로서는 그게 있으면 판사들을 통제하기가 쉬워지죠."

    청와대의 뜻에 따라 일본 전범 기업에게 협조하는 대가로 양승태 대법원은 겨우,
    해외파견 법관 자리를 몇 개 더 얻은 셈입니다.

    황당한 일은 또 있었습니다.

    박근혜 청와대의 뜻에 따라 2013년 9월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강제징용 재판 지연 전략 문건. 당시 법원행정처의 엘리트 법관인 박찬익 판사가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박찬익 판사는 지난 2월 돌연 법원을 떠나 김앤장 변호사가 됐습니다.

    법원의 엘리트 판사가 결과적으로 일제 전범 기업을 비호하게 되는 재판 개입 전략 문건을 만들었고, 이후엔 아예 전범 기업의 변호인 측인 김앤장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왜 이런 문건을 만들었는지, 전범 기업을 대리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기 위해 박찬익 변호사를 찾아갔지만, 만날 수도 없었고,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김앤장 사무실
    (박찬익 변호사님 뵈러 왔습니다) 자리에 계신지 한 번 확인해보고 안내해 드릴게요.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며”

    ◀ 스튜디오 6 ▶

    김의성 네. 큰 고통을 겪은 우리 국민의 한을 풀어주는 일은 방해하고 일본의 전범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이런 큰 죄를 저지르고서 결국 얻어냈다고 하는 것이 판사 몇 명의 외국 일자리라니. 참 기가 막힙니다.

    주진우 일제 때 친일파들의 행각과 너무 비슷합니다. 그런데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의 대가가 고작 이 정도라니. 그것이 화납니다.

    김의성 정말 너무 작은 걸 얻기 위해서 큰 대의를 저버린 것 아닙니까? 땅과 작위를 얻고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 넘긴 친일파들의 행적과 뭐가 다르단 말입니까.

    나세웅 이 법원 수뇌부들은 해외 공관 자리로 조직 장악력을 높이고 또 자신들이 더 높은 자리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대신 강제징용 피해자 분들의 가슴 아픈 사연은 외면한 셈이죠.

    김정인 네, 더 분노하게 되는 건 강제징용뿐만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소송까지 일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 했던 겁니다. 심지어 소송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이런 계획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6 위안부 소송에도 일본 편에서 개입 정황 ▶


    이옥선 할머니는 1940년, 공부를 시켜준다는 우동가게에 수양딸로 들어갔습니다.

    이옥선 / (74세) ‘위안부’ 피해자 (2000년6월1일)
    “그래서 내가 7살부터 15살까지 울었습니다. 공부를 하겠다, 학교를 가겠다. 그런데 학교를 보내준다니까 얼마나 기쁩니까. 15살 까지 울었으니까.”

    그런데 심부름을 갔다가 납치돼 중국 연길에 끌려간 뒤 일본군 위안부가 되는 피해를 당했습니다.

    이 할머니는 지난 2000년 중국에서 귀국한 이후, 피해 사실을 알리며 일본에 사죄를 요구해 왔고,

    2013년에는 다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일본 정부가 1인당 1억 원씩 배상하도록 해 달라는 민사조정을, 한국 법원에 신청했습니다.

    이옥선 / (87세) 조정 신청 기자회견 (2013년 8월 13일)
    이렇게 세월이 60년이 지나가도록 일본 사람들이 왜곡하고 한국의 딸들 하나도 안 끌어갔다고 말합니까.

    그런데 2015년 말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일본과 위안부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윤병세 / 외교부 장관 (2015.12.28)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이 문제가 최종적으로,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

    이 합의 이후 우리나라 법원은 할머니들의 사건을 조정하기 어렵다고 결정했고, 결국 이 사건은 정식 재판으로 넘겨졌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2년 반.

    법원은 단 한 차례도 재판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 소송 당사자인 12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가운데
    6명이 사망했습니다.

    이옥선 / (92세) ‘위안부’ 피해자 (2018년 9월 5일)
    1942년 7월 29일 날에 내가 끌려갔다가 왔어. 끌려가면 뭘 해. 숱한 고통 받고 총질하고 칼질하고 매질하고. 사죄만 하면 되는 거지. 할머니들 다 죽길 기다리는 거지. 그래도 이제는 다 죽고 몇이 안 남았잖아.


    그런데 검찰은 최근, 이 소송이 미처 시작도 되기 전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재판을 몰고 가기 위한 시나리오를
    법원행정처가 작성했던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행정처는 일단 재판이
    요건에 맞지 않다며 심리도 하지 않고
    소송을 끝내는 ‘각하’ 결정을 하기로 합니다.

    한국 법원에서 외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 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소멸시효나 청구권 문제로 ‘기각’하자는
    대안도 마련합니다.

    양승태 대법원은 이렇게 될 경우
    논란이 일 것도 뻔히 알고 있었습니다.

    "국민적 비판이 예상되니, 판결문에
    일본의 반인권적 행위에 대한 비판을 담아
    비판 여론을 최대한 약화시켜야 한다"는
    여론 대응 방안까지 마련했습니다.

    양승태 사법부가 일본 정부 편을 들며
    할머니들의 피맺힌 바람을 외면하는 동안,

    이제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27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용수 / '위안부' 피해자
    "펑펑 울어요. 나 혼자. 펑펑 울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난 어디 가서 살아야 할까요. (대법원과 판사들이) 지금은 지 허영, 지 욕심만 챙기고 일본 놈 편이 돼서 하는 걸 몰랐어요."

    김복동 / '위안부' 피해자
    "자기네들이 했다, 미안하다, 용서해주시오. 그렇게만 하면 우리들도 어떻게 용서할 수가 있다고. 그런데 무조건 자기네들은 안 했다, 한국 사람이 했다, 우리는 모른다 그래가지고는 되지 않는다고. 이 늙은 김복동이가 얘기한다고.“

    ◀ 스튜디오 7 ▶

    김의성 네. 이옥선 할머니의 인터뷰를 보니 그 상당히 정정하시던 때부터 치아가 다 손상돼서 굉장히 많이 늙으신 모습까지, 그 과정까지 한꺼번에 지켜볼 수 있게 되네요.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고통 받으시면서 이 일로 싸워 오셨는지 느낄 수 있어서 더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주진우 슬프네요, 네.

    김의성 그런데 이런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에 기각을 미리 결정해놨다는 거 아닙니까.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립니까. 이 사법부의 추락. 어디까지입니까. 어떻게 이 사법부를 우리가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주진우 박근혜 사법부는 그랬습니다. 양승태 사법부는 그랬습니다. 법과 국가를 우롱하고 훼손했습니다. 일본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 이런 일을 했습니다.

    김의성 사법농단 재판거래 수사는 지금 어떻게 진행 중입니까.

    김정인 네. 강제징용 문제를 포함해서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수사는 지금 검찰의 손에 넘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석 달 동안 검찰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의 90%가 법원에 의해서 기각이 됐습니다.

    주진우 90%가 훨씬 넘죠. 그런데 영장의 기각 사유도 정말 황당합니다.

    김정인 네. 강제징용 관련 수사를 위해서 행정처 압수수색 영장을 요청을 했더니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서 대법원이 판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이유를 대기도 했고요. 법원의 인사심의관실을 압수수색 하겠다고 했더니 법원의 인사정보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과 관련된 공무상의 비밀이라면서 이것도 기각했습니다. 또 윤리감사관실의 압수수색은 자료를 요청하면 순순히 줄 것이다. 이런 이유를 들면서 기각했습니다.

    주진우 자료를 줄 거라고. 자료를 줄 텐데 왜 영장을 가지고 왔냐. 이런 얘기입니까.

    나세웅 또 이게 누가 어떻게 이 법원의 재판 절차를 만들고 미뤘는지 논의를 어떻게 했는지 이런 걸 보려면 법원 내부를 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외교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발부하고 같은 날, 법원 내부에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은 기각하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국가의 중대한 이익과 관련된 공무상 비밀이라면 외교부에 더 많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각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주진우 법원의 무더기 영장 기각을 그냥 제 식구 감싸기, 이 정도 수준으로 볼 수 없습니다. 대법원의 친일 행각 수사를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있습니다. 딱 친일파 식입니다.

    김의성 네. 언제까지 사법개혁의 과정을 사법부 스스로가 가로막고 있는 것을 지켜만 봐야 합니까. 정말 답답합니다. 검찰조차 쉽게 파고들지 못하는 사법부의 깊은 곳. 반드시 밝혀야 할 치부들. 두 분 기자, 끝까지 취재해주기 바라겠습니다.

    # 클로징

    김의성 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은 최순실의 국정농단보다도 오히려 훨씬 더 크고, 중요하고 위험한 국기문란 사건이 아니었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주진우 사법농단, 재판거래를 자행한 판사들은 탄핵해야 됩니다. 그리고 구속해야 됩니다. 이번 기회에 굽은 것은 바로 펴고 곪은 곳은 도려내야 합니다.

    김의성 끈질긴 추적 저널리즘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저희는 다음 주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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