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뉴스데스크

전두환씨,1980년 5월 17일 당시 비상계엄 전국 확대[유재용]

전두환씨,1980년 5월 17일 당시 비상계엄 전국 확대[유재용]
입력 1995-12-03 | 수정 1995-12-03
재생목록
    [정권찬탈 5월17일]

    ● 앵커: 80년 5월 17일 당시 학생들의 시위는 수그러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확대했습니다.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는 구실을 붙였지만 이것은 정권장악을 위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유재용 기자입니다.

    ● 기자: 1980년 봄, 서울의 봄으로 불리는 이때에 3金은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다짐하고 있었고 대학생들은 신군부의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12.12 군사반란으로 병권을 장악한 전두환氏로서는 마지막 목표인 정권을 빼앗기 위해 또한번의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습니다.

    5월17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이끄는 신군부는 그 수단으로 치밀한 준비 끝에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결정합니다.

    물론 구실은 국가안보를 위해서 입니다.

    전氏 등 12.12세력은 오전 9시 전국 주요 지휘관들을 모이게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만장일치로 가결하고 일사천리로 비상 국무회의를 열게해 이를 의결합니다.

    그리고 밤10시, 신군부는 우선 정권장악의 걸림돌인 정치인들을 잡아들입니다.

    학생소요를 배후조정 했다는 죄목을 씌워 김대중氏를 체포하고 김영삼氏는 가택에 연금합니다.

    국회의원의 등원을 봉쇄하도록 하고 대신 정권창출을 위한 기구로 활용될 국보위 설치가 결정됩니다.

    훗날 전두환氏는 국보위 위원장으로서 활동하며 정권장악의 터를 다졌습니다.

    다음은 대학생, 당시 학생권은 대책을 논의하면서 격렬한 시위를 멈춘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신군부는 오후 6시쯤 이화여대에 모여 있던 전국 대학생 대표들을 급습해 체포합니다.

    이와 동시에 시위진압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켜온 군인들을 전남대 등, 전국의 주요대학에 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같은 음모에 대한 반발로 다음날 일어난 광주 민주항쟁 등 국민의 저항을 무력진압한 신군부는 그들의 의도대로 정권을 장악합니다.

    MBC뉴스 유재용입니다.

    (유재용 기자)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