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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사건사고 100년 점검] 부정부패, 참사 연속[박용찬]

[사건사고 100년 점검] 부정부패, 참사 연속[박용찬]
입력 1999-12-16 | 수정 199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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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사고 100년 점검][부정부패, 참사 연속]

    ● 앵커: 가는 100년을 정리하는 기획보도, 오늘은 사건·사고로 얼룩진 지난 100년을 돌아봅니다.

    고속 성장의 뒤편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는 부정과 부패, 매사 빨리빨리 하자며 대강 해치운 졸속, 이런 것 때문에 대형 사건·사고가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박용찬 기자입니다.

    ● 대연각 호텔 화재(71년 12월): 폭설, 폭우로 제대로 구조작업을 못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 기자: 눈부신 개발로 주목받던 한국이 재난 관리의 후진국임을 알리는 첫 참사였습니다.

    사다리를 올려봤지만, 21층 건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구조장비라고는 헬기와 외가닥 로프가 전부였습니다.

    다급한 나머지 내로라하는 군사들까지 동원되는 촌극을 빚기도 했습니다.

    ● 인터뷰: 그 로프를 잡았던, 그 로프를 잡았던 종업원이 로프에서 미끄러져 떨어졌습니다.

    ● 구봉광산 매몰사고(67년 8월): 16일 만에 극적으로 구출됐다.

    ● 기자: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탄광 매몰사고에 온 나라가 떠들썩할 정도로 큰 사고는 거의 없었습니다.

    대형 참사는 무조건 앞만 보고 치닫던 개발 시대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지은 지 4개월 된 와우아파트는 한순간에 와르르, 우르르 무너졌습니다.

    사고는 숨 가쁜 성장지상주의에 대한 경고였지만, 번번이 외면당했습니다.

    안전장치도 없이 다이너마이트를 운송하던 무사안일은 평화롭던 도시를 한순간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1만 명의 시민들이 겨울철 칼바람 속에 6개월간 천막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모두가 고도성장이라는 급행열차를 쉼 없이 내달린 대가였습니다.

    ● 김대엽(당시 사고 목격자): 처음에는 전쟁이 일어난 줄 알았습니다, 저희들은…

    ● 기자: 개인소득 1만 불을 성취해냈다며 들떠 있던 지난 90년대.

    대형 참사는 더욱 가혹하게 찾아 왔습니다.

    안전에 대한 심각성은 부패와 뇌물의 위력 앞에 여전히 뒷전으로 밀려났기 때문입니다.

    수도 서울을 관통하는 다리가 붕괴될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가스로 가득찬 지하철 공사장은 등교길 학생들과 차량들을 한꺼번에 덮쳤습니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가스가 폭발해 불기둥을 뿜어대는 사고는 더 이상 생소한 광경이 아닙니다.

    급기야 풍요와 성장을 상징하던 국내 초호화 백화점마저 어이없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인명피해 규모로 본 대형사고 10건 가운데 무려 4건이 90년대 들어 일어난 것들입니다.

    ● 인터뷰: 너를 보내며, 너가 우리에게 있어 얼마나 소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친구였는지 알리고 싶고, 편안히 눈감고 가기를 빈다.

    ● 기자: 반성과 대책 마련의 다짐은 번번이 구호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총체적 부패와 부실의 곪은 상처는 지금도 도처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사고 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참사로 얼룩진 한 세기가 마감되고 있습니다.

    MBC뉴스 박용찬입니다.

    (박용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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