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로 이동
Home > 엠빅뉴스 > 엠빅블로그

[취재플러스] 불면의 시대, 수면유도 'ASMR'의 유혹

정준희(rosinante@mbc.co.kr) 기사입력 2016-03-04 11:54 최종수정 2016-03-08 15:23
ASMR 수면 불면증 의존증
ASMR,수면,불면증,의존증
심심하고 잠도 오지 않았던 밤, 볼거리라도 없을까 해서 이리저리 '유튜브'를 돌아다니다 동영상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얼핏 보기엔 인터넷 1인 방송 같은데, 영 특이했습니다.

젊은 여성이 마이크 앞에서 뭔가를 속닥속닥 거리다 손가락을 움직이며 숫자를 세는 듯한 동작을하고, 물건을 두드리며 소리를 내기도 하는 겁니다.

들릴락말락 나직한 소리에 묘한 손짓. 순간 당혹감과 호기심이 스쳤습니다. '뭐지 이건?'

바로 'ASMR'이었습니다.
ASMR,수면,불면증,의존증
ASMR이라는 황홀경

ASMR이란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앞글 자를 딴 신조어로 '자율감각 쾌감반응'이란 뜻입니다. 친구가 귓속말을 하는 순간 느꼈던 짜릿함이나 미용사가 머리를 빗겨줄 때의 편안함 같은, 일상 속의 기분 좋은 자극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ASMR 영상은 시청각을 활용해 이런 나른함과 안정감을 재현하고자 만든 것입니다. 이어폰을 끼고 영상을 보고 있으면 긴장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죠.

아직 생소한 서브컬처라고 볼 수 있지만, ASMR은 이미 젊은 층에 널리 퍼져있습니다.

미국이나 호주에서 올린 영상이 5년 전쯤부터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최근 1~2년 새 국내 창작자들까지 가세하면서 더욱 대중화됐죠. 유튜브에서 검색되는 영상이 3백만 개에, 이름이 알려진 국내 유튜버들의 구독자만 50만 명 정도 됩니다.

영상을 접한 사람들은 ASMR의 매력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뭔가 간질간질하고 기분이 좋다." "마음이 편안하고 차분해진다" "친구가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것 같다" 등등….
ASMR,수면,불면증,의존증
시계 소리부터 우주여행까지

ASMR의 다양성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신문을 부스럭거리거나 시계 침이 똑딱 거리는 것처럼 일상의 사물을 이용한 것은 물론, 사람이 속삭이거나 동작을 보여주는 영상도 있고, 마사지 숍이나 이발소 같은 서비스업 상황극에, 좀비로 멸망한 세상이나 우주여행을 다루는 ASMR까지 있습니다.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이 소재가 된다고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ASMR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로 10대 후반부터 30대까지의 젊은 층입니다.

일부는 공부할 때 집중력이 좋아진다며 듣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스트레스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 수면유도용으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편안하고 나른한 느낌에 빠지면서 기분 좋게 잠이 들 수 있다는 것이죠.
ASMR,수면,불면증,의존증
ASMR이 건네는 위로, 그러나….

취재진이 해 본 수면 시험에서도 ASMR 영상을 보거나 듣다가 잠을 청한 경우가 그냥 잤을 때보다 깊고 안정적으로 잠든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물론 정식 임상시험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기에 의학적인 의미는 없고, ASMR에 대한 호불호나 수면습관 차이에 따라 개인차도 심하기 때문에 이 결과를 쉽게 일반화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수면을 돕는다는 게 아예 근거 없는 말은 아니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잠잘 때마다 ASMR을 듣는 게 하나의 수면 조건이 되면 오히려 숙면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반드시 안대를 해야 잠이 오고, 다른 사람은 꼭 클래식 음악을 들어야 잠이 드는 것처럼, 우리의 뇌가 한번 익숙해지면 그 조건 없이는 잠을 청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제 취재 중에 만난 이용자들 가운데는 ASMR을 이용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ASMR의 효과를 맹신하거나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게 아무것도 없는 만큼, 우선은 적당히 즐기는 게 좋을 듯합니다.
ASMR,수면,불면증,의존증
스트레스와 불면의 시대

취업포털들의 최근 설문조사결과를 봤더니 구직자의 92%가 취업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직장인 가운데 76%가 사무실에서 우울증 증세를 겪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고된 '알바'를 해가며 학자금 대출을 떠안고 힘겹게 구직난을 돌파해도 무한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는 시대. 이 지독한 불면의 시대가, ASMR 열풍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건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경쟁과 스트레스에 지친 젊은이들을 위로하는 것이 모쪼록 ASMR뿐만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이전 세대 그 누구도 겪어본 적 없었던 종류의 아픔을 겪어야 하는 청년들에게 사회가 좀 더 따뜻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기 동영상

공감지수가 높은 기사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