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학자 조안 엘리자베스 록은 저서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에서 “인간은 종(種)의 보존을 위해 벌레를 필요로 한다”고 했지만 요즘 우리나라는 그 벌레의 습격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른 폭염과 한반도 온난화로 치명적인 병을 옮기는 벌레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작은소피참진드기>
‘살인진드기’로 불리는 ‘작은소참진드기’가 옮기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환자는 3년 새 4.6배로 증가했습니다. 올해 벌써 48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13명이 사망했습니다. 알려진 치사율 30%를 넘었습니다.

올해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6월에 ‘일본뇌염 경보’도 발령됐습니다. ‘털진드기’가 옮기는 ‘쓰쓰가무시증’ 환자는 2010년 5671명에서 지난해 1만1105명으로 2배 늘었습니다. ‘참진드’가 옮기는 ‘라임병’ 환자는 첫 환자가 발생한 2011년 2명에 불과했지만 올해 7월 현재 벌써 28명이 걸렸습니다. 제주도엔 매년 수만 명이 사망하는 ‘뎅기열’이 상륙했다고 합니다. 확산되는 벌레 공포, 어떻게 대비하면 좋을까요?
SFTS 치료제 없어 피해 확산
벌레의 습격, 그 선봉에 선 작은소참진드기는 흡혈진드기로 체외 기생합니다. 숙주는 소, 말, 사슴, 염소, 사람 등 포유류와 조류가 주이지만 가끔은 파충류나 양서류에도 기생합니다.

작은소참진드기 중에서 0.5퍼센트라는 낮은 확률로 ‘플레보바이러스’를 체내에 가지고 있는데요, 이 바이러스가 사람 몸에 들어오면 SFTS에 걸리게 됩니다. 70대 이상 만성질환을 가진 어른신들이 걸리면 치명적입니다. 2013년 한강 고수부지에서 잡힌 작은소참진드기에서도 바이러스가 검출돼 충격을 준 바 있었죠.
SFTS는 발병할 경우 치료제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인데요, 환자가 증상을 보이면 수액을 놓거나 수혈을 하면서 인체가 스스로 회복하기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답니다.

주된 증상은 고열, 피로감, 두통, 근육통, 구토, 설사, 기침 등이고 급격하게 혈소판과 백혈구가 감소하고 위장관에 출혈이 생기면서 급기야 사망하게 됩니다. 사망까지 이르는 기간은 대략 9일로 짧습니다.

<출처=질병관리본부>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이재갑 교수(감염내과)는 “일단 진드기에게 물렸다고 생각되면 2~3주 잠복기를 거쳐 열이 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뾰족한 수가 없다”며 “최근 실험적으로 약을 써보곤 있지만 백신 개발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열대로 변한 한반도… ‘죽음의 벌레’ 더 몰려온다
한반도가 아열대성 기후로 변하면서 2010년을 기점으로 벌레, 곤충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올해 일본뇌염 매개모기인 ‘작은빨간집모기’는 부산, 경북, 인천 등지에서 속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작은빨간집모기>
질병관리본부(본부장 정기석)는 4월 4일 제주에서 올해 첫 작은빨간집모기를 확인해 일본뇌염 주의보를 발령했고 이어 6월 29일 부산에서 채집한 모기 중 작은빨간집모기가 전체의 50% 이상 나와 전국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인천에서도 최근 11일 작은빨간집모기가 발견됐습니다. 작은빨간집모기는 논이나 동물축사, 웅덩이 등에 서식하는 암갈색의 소형 모기로, 주로 야간에 흡혈 활동을 합니다.

이 모기가 옮기는 일본뇌염은 급성으로 신경계 증상을 일으키는데, 90% 이상은 물려도 아무런 증상을 보이지 않지만, 일단 증상을 보이면 사망률이 20~30%로 높고, 회복된 환자 중 30~50%가 반영구적인 신경학적 후유증을 보입니다. 자체 치료제가 없어 예방접종이 최선입니다.
<뎅기열 모기>
뎅기열, 웨스트나일열, 지카바이이러스 등도 사실상 국내에 상륙했습니다. 뎅기열을 일으키는 뎅기열 모기는 제주도에서 지난 2010년부터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뎅기열은 지난 1998년 태국에서만 13만 명이 감염돼 424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일본뇌염과 비슷한 지카바이러스와 웨스트나일열은 국내 새에서 확인됐습니다.
이밖에 털진드기(쓰쓰가무시증), 참진드기(라임병), 중국얼룩날개모기(말라리아) 등도 매년 급증하고 있습니다.
벌레·곤충 방어체계 구축 시급

전문가들은 벌레 피해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경고합니다. 벌레는 무척추, 변온동물로 따뜻하고 습할수록 번식력이 강해진다고 합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2050년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은 현재보다 4도 상승하고, 폭염 일수는 5.8일 많아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국립생물자원관 김태우 연구사는 “어떤 벌레가 어떤 피해를 주는지를 분석하고, 주요 출몰 지역의 출몰 시기를 예측하는 등 벌레 방어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재갑 교수는 “숙주에 해당하는 모기가 일단 확산되면 토착화 돼버린다”며 “보건당국이 각종 모기나 살인 진드기의 생육상태, 분포여부, 퍼센트 정도를 알고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