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라는 공통의 언어 앞에서 세월의 간극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부터 '아시아의 별' 보아까지, 무대에 오른 가수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문법으로 한 사람의 노래를 들려줬고 관객들은 모처럼의 상찬에 즐거워했다.
9일 밤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국민작곡가 박시춘 탄생 100주년 헌정음악회' 얘기다.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 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총 10팀의 뮤지션들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큰 별인 작곡가 박시춘(본명 박순동, 1913-1996) 선생의 명곡들을 트로트는 물론 재즈, 포크, 리듬 앤드 블루스(R&B)까지 다양한 장르로 편곡해 선보였다.
공연의 서막은 재즈 그룹 윈터플레이가 열었다.
이주환의 아련한 트럼펫 연주로 무대를 연 윈터플레이는 재즈풍으로 편곡한 '칼멘야곡'을 들려주며 관객들을 우수에 젖게 했다.
소리꾼 장사익은 특유의 구성진 목소리로 '봄날은 간다'와 '대전블루스'를 들려줬다.
그는 "'봄날은 간다'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다 들어가 있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즐거울 때는 더 즐겁게, 슬플 때는 더 슬프게 들리는 노래가 바로 이 곡"이라며 '봄날은 간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주현미는 '비내리는 고모령' '삼다도 소식'을 불렀다.
그는 "저는 가요무대 세대라 선생님이랑 같이 출연한 적도 있는데, 아직도 선생님이랑 반야월 선생님 두 분이서 노래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면서 "오늘은 선생님이 더욱 그립다. 선생님의 음악은 가슴으로 기억할 수 있어 참 좋다"고 했다.
박시춘 선생의 손자인 박창조(17) 군도 특별 손님으로 무대에 올랐다.
현재 미국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있다는 그는 이날 키보드를 연주하며 할아버지의 히트곡 '러키 서울', 본인의 자작곡 '소나무'를 들려줘 객석의 환호를 자아냈다.
박군은 "할아버지께서 이 자리에 계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할아버지를 늘 존경하고, 사랑했지만 이 음악회를 보지도 못하시고 지난여름 갑자기 할아버지 곁으로 가신 아버지도 더욱 그립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명예가 흔들리지 않도록 음악 공부 더 열심히 하고 꿋꿋하게 살아가겠다"고 말해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김범수는 박시춘 선생의 대표곡인 '애수의 소야곡'을 R&B 풍으로 편곡, 특유의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멋지게 소화했다.
슈퍼주니어 K.R.Y(규현.려욱.예성)는 '낭랑 18세'로 발랄한 무대를 선보여 '이모팬'들의 환호를 끌어냈다.
보아는 '굳세어라 금순아'로 파워풀한 가창력을, 자신의 히트곡 '온리 원'으로는 화려한 댄스 실력을 선보였다.
이밖에도 포크 가수 추가열은 '물새우는 강 언덕'을, 소프라노 이미경은 '고향초'를 각각 들려줬다.
대미는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가 장식했다.
이미자는 '벽오동 심은 뜻은' '청춘고백' '노래는 나의 인생' 등 세 곡을 선사했다.
그는 "우리 시대가 지나고 나면 이렇게 훌륭한 작곡가 선생님이 또 태어나실 수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면서 "제가 50여년 동안 노래를 불렀는데, 그랬기에 박시춘 선생님의 노래를 받을 수 있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 자리에 서니까 정말 박 선생님이 너무나 그립다"면서 "'벽오동 심은 뜻은'은 선생님이 작곡해서 제게 주신 곡인데, 요샌 통 부르지 않던 곡이라 요즘 열심히 가사를 외우며 연습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약 2시간 30여분에 걸쳐 진행된 공연은 가수들과 관객들이 합창하는 '신라의 달밤'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무대에 오른 가수들은 모두 출연료 없이 '재능 기부' 형태로 참여했다.
공연 수익금은 향후 박시춘 기념재단 설립 자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관객 김정애(56.여) 씨는 "'애수의 소야곡' '봄날은 간다' 등 평소 좋아하던 곡들을 마음껏 들을 수 있어 좋았다"면서 "이미자 씨 팬이지만 젊은 가수들도 노래를 잘 하더라. 아주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장에서는 박시춘 선생의 유족과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 씨가 보관해 온 희귀 자료 100여 점도 전시됐다.
문화연예
서울=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미자.김범수.보아…거장의 노래로 하나된 밤
이미자.김범수.보아…거장의 노래로 하나된 밤
입력 2012-10-09 22:57 |
수정 2012-10-09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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