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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절터서 금동반가사유상 출토…"정식발굴로는 첫 사례"

영월 절터서 금동반가사유상 출토…"정식발굴로는 첫 사례"
입력 2018-04-03 10:08 | 수정 2018-04-03 19:18
영월 절터서 금동반가사유상 출토"정식발굴로는 첫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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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영월에 있는 절터에서 성인 남성의 손바닥보다 작은 금동반가사유상이 나왔다.

    영월군과 강원문화재연구소(소장 오제환)는 발굴조사 중인 영월 흥녕선원지(강원도 기념물 제6호) 건물터에서 지난 3월 말 높이 15㎝, 폭 5㎝ 크기의 금동반가사유상을 발견했다고 3일 밝혔다.

    강원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정식 발굴조사 과정에서 금동반가사유상이 나온 국내 첫 사례"라며 "불상은 양식상 7∼8세기 유물로 보이지만, 불상이 출토된 건물지는 9∼10세기 유적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경남 양산 유산동, 경북 경주 성건동 등지에서 금동반가사유상이 우연히 발견된 적은 있으나, 절터에서 완형의 금동반가사유상이 발굴된 것은 최초다.

    금동반가사유상은 청동 표면에 도금한 반가사유상을 말한다.

    반가사유상은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겨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불상으로, 인도 간다라 지방에서 처음 출현했으나 고대에 한국과 일본에서 특히 유행했다.

    삼국시대 불상 중 걸작으로 평가되는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은 1920년대 경북 경주에서 발견됐다고 전하나 근거가 없고,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도 출토지가 명확하지 않다.

    연구소 관계자는 이어 "이번에 나온 금동반가사유상은 크기가 작아 한 곳에 봉안하지 않고 들고 다녔을 가능성이 있어서 제작 시기와 국가를 추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불상 전문가들은 출토지와 양식을 봤을 때 이 금동반가사유상이 7세기 초반 무렵에 제작된 신라 불상일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학계 관계자는 "신라에서 만들어졌다는 국보 제83호 상과 흡사한 측면이 있다"며"이렇게 작은 불상은 만들기 어렵다는 점에서 수작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번에 영월에서 나온 금동반가사유상은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에 걸치고, 오른쪽 무릎 위에 오른팔을 올려놓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 손가락은 살짝 뺨에 댔다.

    잔잔한 미소를 띤 얼굴은 원형에 가깝고, 상의는 걸치지 않았다.

    머리에는 삼면이 돌출된 관을 쓰고 있다.

    조사단은 "유물 상태는 좋은 편"이라며 "보존처리와 추가 연구를 통해 유물 주조기법과 도금방법 등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동반가사유상이 출토된 흥녕선원지는 9∼10세기에 번성한 선종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인 사자산문파의 본거지로, 자장율사(590∼658)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징효대사(826∼900)가 크게 발전시켰다.

    흥녕선원지 인근에 재건된 법흥사에 보물 제612호로 지정된 징효대사 탑비와 승탑이 있다.

    흥녕선원지에서는 앞서 2002년부터 2004년 사이에 두 차례 시굴조사가 이뤄져 건물지와 석축 등 다양한 유구(遺構·건물의 자취)와 유적이 나왔다.

    이번 조사는 사실상 방치돼 있는 흥녕선원지의 규모와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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