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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때 간행한 불교서적 '교장', 고려 목판으로 찍었다"

"세조 때 간행한 불교서적 '교장', 고려 목판으로 찍었다"
입력 2018-04-10 07:59 | 수정 2018-04-10 07:59
"세조 때 간행한 불교서적 교장 고려 목판으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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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세조 때 불경을 간행하기 위해 1461년 세운 기관인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펴낸 불교서적 '교장'(敎藏) 중 일부는 고려시대에 새긴 목판으로 찍은 책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이 11세기 후반에 편찬한 대장경 연구 해석서인 '교장'은 1천여 종이 있었다고 하는데, 고려 목판으로 인출(印出)한 책은 일본 2종과 한국 1종만 현존한다고 알려졌다.

    송일기 중앙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한국서지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서지학연구' 최신호에 게재한 논문 '간경도감 중수본에 대한 오해'에서 중수본(重修本)은 번각본(飜刻本)이 아니라 후인본(後印本)이며, 고려시대 목판으로 찍은 '교장'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40여 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서지학계에서는 가장 처음에 새긴 목판으로 찍은 책을 원각본(原刻本)이라고 하는데, 번각본은 본래의 목판이 소실된 상태에서 원각본을 저본으로 삼아 목판을 다시 새긴 뒤 찍은 책을 지칭한다. 후인본은 원래 목판을 일부 보수하거나 고친 뒤 인출한 책이다. 번각본보다는 후인본이 원각본에 훨씬 가깝다. 송 교수는 "'중수'라는 표현이 서적의 간행기록에 사용된 경우는 간경도감이 거의 유일한 것 같다"며 193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학자들이 중수본을 어떻게 정의했는지 살펴봤다.

    그는 "일제강점기에는 중수본을 고려시대에 판각한 원판을 부분적으로 보완해 다시 인출(印出)한 것으로 봤는데, 1960년대 중반부터 번각본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송 교수는 간경도감의 중수본은 번각본이 아니라 후인본이 옳다는 견해를 내놨다.

    그는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는 간경도감 서적 15종을 추려보니 이 책들이 1461∼1468년에 간행된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특히 9종이 1461년과 1462년에 찍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송 교수는 "조선 조정에서는 전국 주요 사찰에 있는 경판의 상황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간경도감에서 책을 찍는 작업이 신속하게 이뤄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중수기가 있는 간경도감 판본 15종 중 소재가 파악된 14종을 대상으로 검토한 결과, 전체적으로 보각(補刻·목판의 훼손 부분만 수리)이나 보판(補板·사라지거나 훼손된 목판을 새로운 목판으로 교체)의 흔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간경도감에서 목판 전체를 번각했다면 보각이나 보판 같은 현상이 나타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수에 관한 기록은 목판을 파내고 새롭게 새긴 부분을 넣는 매목(埋木)을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간경도감에서 찍은 책 중에는 다른 서체가 한 권에 공존하는 사례가 있다. 예컨대 보물 제90호로 지정된 순천 송광사 소장 '대반열반경소(大般涅槃經疏) 권9'의 13∼14장은 서체에서 차이가 난다. 한쪽은 원래 목판, 다른 쪽은 후대에 다시 새긴 목판이라는 것이 송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중수기는 없지만 중수본에 해당하는 판본은 50여 종에 달하고, 그중 교장의 후인본이 40여 종은 될 것"이라며 "이 서적들은 후대에 인출한 판본이지만, 원각본과 동일한 가치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2000년대 이후에도 순천 송광사에서 간경도감 중수본이 발견되는 등 새로운 책이 속속 나오고 있다"며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북한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고려시대 목판을 조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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