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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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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M] '엉망진창' 어린이집이 보였던 4가지 징후들

[탐정M] '엉망진창' 어린이집이 보였던 4가지 징후들
입력 2018-12-22 11:58 | 수정 2018-12-22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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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M] '엉망진창' 어린이집이 보였던 4가지 징후들
    지난 16일 MBC 뉴스데스크는 한 달간 엉망으로 운영하다 갑자기 문을 닫은 파주의 한 어린이집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당시 뉴스를 보신 많은 분들이 따로 연락을 주셨고 "해당 어린이집의 이름을 밝혀라", "뉴스에 등장하는 사립유치원의 이름도 공개하라", "또 다른 만행(?)도 폭로해달라" 등의 요구가 빗발쳤습니다.

    뉴스에 다 담지 못한 나머지 얘기들, 그리고 엉망진창으로 운영되는 어린이집의 특징들을 [탐정M]에서 전해드리겠습니다.

    1. 원장 위에 대표원장(?)

    어린이집 한 곳이 새로 문을 연다고 했습니다.

    새 학기 시즌인 3월이 아니라 10월에 아이들을 모집한다는 이 특이한 어린이집에 학부모들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원아모집 현수막에 적힌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상담도 받았습니다.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여성.

    학부모들은 그녀를 대표원장(?)이라 불렀습니다.

    대표도 아니고 원장도 아니고 대표원장(?)이라니… 대체 얼마나 위세가 높았던 걸까요.

    그녀가 처음 학부모들 앞에 등장한 건 지난 10월 어린이집 입학설명회였습니다.

    청산유수.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능숙했습니다.

    직접 원장과 교사들을 일일이 학부모들에게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학부모 A씨]
    "그분이 원장인 줄 알았는데 다른 분을 원장이라고 소개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저분은 여기 대표인가 보다 했죠."

    그런데 그녀는 어린이집 대표가 아니었습니다.

    어린이집과는 서류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제3자. 그저 대표의 엄마일 뿐이었습니다.

    교사와 학부모들은 어린이집 대표를 본 적도 만난 적도 없었습니다.

    대표가 왜 여기에 어린이집을 새로 열었는지,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진 교육자인지 궁금했지만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교사 B씨]
    "실제 대표가 카톡에 초대는 돼 있는데 전혀 답글도 없어요. 저희가 회의 내용을 쭉 올려도…"
    [탐정M] '엉망진창' 어린이집이 보였던 4가지 징후들
    2. "빨리 등록하고 돈부터 내세요"

    학부모들은 새로 문을 연 어린이집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따뜻하지 않은 바닥과 오래된 교구들, 낡은 시설, 먼지 낀 공기청정기까지.

    무엇 하나 내키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습니다. 맞벌이를 하려면, 재취업을 위해 교육기관을 다니려면, 당장 아이 맡길 곳이 필요했습니다.

    다른 어린이집을 좀 더 알아보기 위해 입소 일정을 미루려 해도, 대표원장(?)은 오히려 입소를 서두르라고 재촉했습니다.

    [학부모 C씨]
    "그게 좀 이상하긴 했어요. 저희는 한 달 정도 더 있다 입소하려고 했거든요. 근데 지금 아니면 입소가 어렵다면서 보육료 전환부터 빨리 신청하라고…"

    학부모의 일정을 최대한 맞춰주는 다른 어린이집과 달라 이상하긴 했지만, 학부모들은 행여나 지금 아니면 입소가 안될까 아이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보통 1-2주 하는 어린이집 적응 기간이 이곳은 유독 길었습니다.

    교사들은 적응기간을 줄이고 다른 어린이집처럼 점심 급식을 시작하자고 제안했지만 대표원장(?)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10명도 안 되는 아이들. 적응도 못 한 애들을 뭘 해먹이려 하냐는 핀잔을 들어야 했습니다.
    [탐정M] '엉망진창' 어린이집이 보였던 4가지 징후들
    3. 돈을 안내 CCTV까지 떼어 갔다

    대표원장(?)은 거의 매일 교사회의를 주재했습니다.

    그러다 개원 13일 만에 돌연 이민을 계획 중이라며 어린이집을 폐원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교사 B씨]
    "완전 황당했죠. 뭐지? 그럼 애들은? 우리는? 이거 취업 사기 아냐? 별생각이 다 들었어요."

    교사들이 귀를 의심하며 재차 확인했지만 대표원장(?)의 폐원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어린이집 연 것을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학부모들에게는 자신이 직접 말할 테니 교사들은 폐원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교사 E씨]
    "그 뒤로 며칠 지났나… 저희가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중이었어요. 대표원장(?)이 어떤 여자 두 명을 데리고 다니면서 1층은 뭘로 쓸 수 있고 2층은 뭘로 쓸 수 있다면서 부동산에서 집 보듯이 데리고 다니는 거에요."

    교사들은 불안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이상했던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급식을 해야 할 조리사도 없었고, 급식실 내 일부 개수대는 사용할 수 없을 만큼 고장 나 있었습니다.

    화장실 변기는 물이 내려가지 않았고, 변기통이 심하게 흔들리기까지 해 아이들이 다칠까 늘 걱정이었습니다.

    안전공제회 가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대표원장(?)은 알아서 하겠다며 1년에 12만 원 수준인 공제회 가입도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교사실에는 인터넷 연결도 되지 않았고, 복사기도 프린터도 전화기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CCTV 비용 납부를 자꾸 미루자 CCTV 업체에서 카메라를 도로 떼가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교사 D씨]
    "돈을 안내니까 업체가 외부에 있는 CCTV를 다시 떼 간 거에요. 그런데도 대표원장(?)은 업체에서 오면 문 열어주지 말라고…"
    [탐정M] '엉망진창' 어린이집이 보였던 4가지 징후들
    4. "애들 급식은 내가 가져오겠다"

    대표원장(?)은 인근에서 사립유치원을 운영한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딸이 어린이집 대표였고, 엄마가 원장으로 있는 유치원에서 교사로 일한다고 했습니다.

    교사들은 사립유치원 원장의 어린이집 겸업이 불법인 걸 알았지만 오히려 경험이 많으니 잘 운영할 거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믿음과 달리 대표원장(?)은 어린이집 운영에 의지가 없어 보였습니다.

    보다 못한 교사들이 낡은 중고 교구들을 새걸로 교체해달라고 요구하자 돌아온 건 막말뿐이었습니다.

    [교사 F씨]
    "이 어린이집은 다 중고라고 했어요. 교구들만 중고가 아니고 선생님들도 중고라고. 선생님들도 새거 아니지 않냐고… 이게 여자들한테 할 말인가요? 정말 모멸감까지 들더라고요."

    교사들의 계속된 요구에 개원 3주가 지나 겨우 급식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대표원장(?)은 급식을 안에서 조리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가져오겠다고 했습니다.

    [교사 D씨]
    "급식이라고 왔는데 그냥 마트 장바구니에 스테인리스 그릇을 덜렁덜렁 들고 오는 거에요. 여기 어린이집엔 17년생들이 주로 다녔거든요. 1세 영아들밖에 없어요. 그걸 애들 먹이라고…"

    [교사 B씨]
    "어느 날은 저희 먹으라고 깍두기도 가져왔는데 깍두기에 하얀 곰팡이가 펴 있는 거에요. 기가 막혔죠."

    어린이집과 무관한 대표원장(?)이 사사건건 어린이집 운영에 개입하고, 그마저도 제대로 운영할 의지를 보이지 않자 아이들과 교사들은 하나 둘 어린이집을 떠났습니다.

    그러다 지난 3일 결국 어린이집은 문을 닫았습니다.

    학부모들에게 마땅히 했어야 할 사전 통보는 없었습니다.

    [학부모 A씨]
    "어떤 아이의 아빠가 대표원장(?)한테 전화해서 따졌더니 그러더래요. 자기 유치원 옆에도 어린이집이 있는데 본인 이름 대면 바로 입소 가능하다고… 어이가 없었죠. 그 어린이집 대기 인원도 70명이 넘는데 낙하산으로 꽂아주겠다는건지…"

    [학부모 G씨]
    "이 정도면 파주시에서 알아보지도 않고 어린이집 신규 인가를 내준 거 아닌가요? 저희가 파주시청에 전화해서 따졌더니 시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더라고요. 너무 무책임하지 않아요?"

    [탐정M] '엉망진창' 어린이집이 보였던 4가지 징후들
    5. "다시는 교육관련 일은 못하게 해달라."

    보다 못한 교사들은 그동안의 기록과 증거들을 모아 국민신문고에 대표원장(?)을 신고했고, 결국 파주시청과 파주교육지원청이 각종 의혹에 대한 조사에 나섰습니다.

    [파주시 보육청소년과장]
    "어린이집 운영에 제3자가 개입해선 안 되게 돼 있습니다. 외부음식으로 급식하는 것도 안 되고요. 개원한 지 얼마 안 된 곳이다 보니 저희가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파주교육지원청 장학사]
    "사립유치원 원장이 딸 명의로 어린이집을 차려놓고 겸업을 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정식 감사에 착수할 것입니다. 감사 결과에 따라 경찰 수사도 의뢰할 방침입니다."

    보도가 나간 뒤 어린이집 교사들에게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파주 지역 맘카페가 뜨겁게 달궈졌고, 많은 학부모들로부터 용기를 내줘 고맙다는 감사 인사를 받고 있다고요.

    그러면서 인터뷰 때 하지 못한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했습니다.

    [교사 D씨]
    "그분이 앞으로 교육 관련된 일은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아이들 상대로 돈벌이하려는 생각이었다면 이제라도 그런 생각을 버리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저희들이 용기를 내서 국민신문고를 두드린 이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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