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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방통] 북한에 욕 먹으며 쌀을 줘야 할까?

[외통방통] 북한에 욕 먹으며 쌀을 줘야 할까?
입력 2019-06-28 17:08 | 수정 2019-06-2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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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통방통] 북한에 욕 먹으며 쌀을 줘야 할까?
    정부가 북한에 국내산 쌀 5만 톤을 지원하기 위해 남북협력기금 408억 원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통일부는 오늘 제306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대북 식량지원을 위한 남북협력기금 지원(안)’을 심의·의결했습니다. 통일부에 따르면 5만 톤의 국내산 쌀을 사 국내에서 운송하는데 약 272억 원이 듭니다. 이렇게 구매한 쌀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북한으로 옮기는데, 국내 항구에서 북한 항구까지 수송하고 또 북한 내에서 분배하는데 최대 136억 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통일부의 이 같은 결정에 당장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에 대해 북한이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데, 굳이 쌀을 지원해야 하는가’라는 비판이 바로 그것입니다.

    욕 먹으며 쌀 준다?

    먼저 어제 자 조선중앙통신입니다. 북한 외무성 권정근 미국 담당 국장의 담화가 실렸습니다. ‘남한은 참견하지 말라’는 게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권 국장은 “북미 협상을 해도 북한과 미국이 직접 마주 앉아서 하게 되는 만큼, 남조선 당국을 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오늘은 북한의 대남선전매체 ‘메아리’가 움직였습니다. 한국 정부에 대해 “지금은 생색내기나 온당치 못한 헛소리가 아니라 북남관계의 교착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실천적 행동이 필요하다”고 쏘아붙였습니다. ‘참견 말라’는 북한 권정근 국장의 발언 등에 대해 김은한 통일부 부대변인은 오늘 정례브리핑에서 “남북, 북미 간 대화의 조속한 재개를 바탕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습니다. 일각에서는 “北은 ’참견말라‘는데 정부는 여전히 대화 재개를 원하는가”, “이 시점에 쌀을 주겠다는 것인가” 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외통방통] 북한에 욕 먹으며 쌀을 줘야 할까?
    "외무성 국장 말 한 마디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전문가들은 “북한 외무성 국장의 담화 한마디에 일일이 신경을 쓰는 건 무의미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일단 권정근 국장의 담화는 북한의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만 실렸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볼 수 없는 매체입니다. "북한의 공세적 발언이 대화의 판을 깨려는 것보다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협상을 이끌기 위한, ‘대외적 기 싸움’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은 여기서 나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일개 국장의 담화를 직접 읽어보고 ‘OK’ 하는 건 아니라는 점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보도되는 모든 글을 일일이 읽기는 어렵다”면서 “일부 실무자들이 충성심을 각인시키기 위해 대미, 대남 메시지를 일부러 세게 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북한 외무성 실무자 입장에서 ‘최고영도자 동지가 북미관계를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남조선이 중간에서 모종의 역할을 하는 듯 생색내지 말라’는 정도의 메시지로 보는 게 적당하다는 지적입니다. 정 교수는 “어제 한중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한 김정은 위원장의 말과 권정근 국장의 담화가 배치되는 상황"이라며 "정부 입장에서 당연히 시 주석의 ‘전언’에 초점을 맞춰 상황 판단을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습니다. 시 주석은 문 대통령에게 “비핵화 의지에 변함이 없다”, “한국과의 화해 협력을 추진할 용의가 있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의중을 전한 바 있습니다.
    [외통방통] 북한에 욕 먹으며 쌀을 줘야 할까?
    '쌀 지원', '정치'와 분리해 생각해야

    북한에 대한 국내산 쌀 지원 얘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이번에 지원되는 쌀 5만 톤은 북한 120개 시 군의 212만 명에게 분배될 예정입니다. 임신·수유 중인 여성과 영유아, 여성 세대주나 장애인이 포함된 가족과 같은 취약계층에 주로 나눠지게 됩니다. 북한의 식량난은 최근 10년 간 가장 심각하다는 게 국제기구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식량지원을 ‘정치’가 아닌 ‘인도’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북한이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데 왜 또 주냐”는 논쟁보다는 ‘북한의 취약계층에게 잘 전달되도록 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국내에 쌀이 많이 남는다는 점도 고려사항입니다. 5월말 기준으로 국내 쌀 재고량은 약 118만 톤 정도입니다. 유엔 FAO가 권고하는 국내 적정 재고량인 80만톤을 크게 웃도는 수준입니다. 1만톤 당 연관 관리비용이 37억원에 달하니, 안 먹는 쌀 관리하는데 천문학적인 돈이 듭니다. 북한에 국내산 쌀을 지원하면 그냥 나가기만 하는 돈을 '지원'으로 돌릴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No access, No food'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지원할 수 없다' WFP의 식량 분배 원칙입니다. 분배가 제대로 되는지를 끝까지 살피겠다는 WFP의 의지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WFP는 북한에 상주하는 모니터링 요원 숫자를 늘려 국내산 쌀이 제대로 전달되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 역시 지원하는 쌀을 보관기관이 짧은 정곡의 형태로 가공해 지원할 계획입니다. 어딘가에 쌓아 놨다 군인들에게 주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뜻입니다. 또 포대에 ‘대한민국’을 명확히 기재해 전용 우려를 최소화 할 방침입니다.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폭염과 가뭄에 '먹을거리'가 없어 신음하는 북한 취약계층에 말 그대로 '단비'가 되도록 한국 정부와 WFP가 분배와 모니터링에 역량을 집중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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