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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통방통] 일본의 공세가 시작됐다! - 모순 덩어리 한일협정의 복수

[외통방통] 일본의 공세가 시작됐다! - 모순 덩어리 한일협정의 복수
입력 2019-07-30 15:53 | 수정 2019-07-30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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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통방통] 일본의 공세가 시작됐다! - 모순 덩어리 한일협정의 복수
    일본의 공세가 시작됐다! 한일협정 문서 공개

    일본 정부가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의 협상 기록을 일부 공개했습니다. 한국이 약속을 위반했다는 아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여론전에 나선 겁니다.

    일본 외무성이 출입기자단에 공개한 문건은 2개인데, 하나는 한국이 1965년 일본에 제출한 대일청구요강이고, 다른 하나는 1961년 5월 작성된 의사록(회의록)입니다.

    의사록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일본 : 개인에 대해 지불받기를 원한다는 말인가?
    한국 : 국가로 청구해 국내에서의 지불은 국내 조치로서 필요한 범위에서 한다.

    의사록에는 또 한국 대표가 "강제적으로 동원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준 것에 상당하는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 내용도 기록돼있습니다. 일본 외무성은 이를 근거로 "한국이 보상을 요구했으므로, 청구권 협정에 위자료까지 포함된 것이 명백하다. 그러므로 개인 청구권이 남아 있다는 한국의 주장은 모순이다."라는 주장을 폈다고 요미우리 신문은 전했습니다. 한국이 처음부터 정신적 위자료를 염두에 두고 교섭했으니, 한국 대법원 판결은 청구권 협정에 어긋난다는 겁니다.

    이런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요?
    [외통방통] 일본의 공세가 시작됐다! - 모순 덩어리 한일협정의 복수
    일본, 자기들 유리한 것만 쏙 뽑아 공개

    1) 보상인가 배상인가?
    우선 일본이 공개한 의사록에는 한국이 요구한 게 "보상"이라고 돼있습니다. 보상은 적법한 행위로 인한 손해를 보전하는 것입니다. 즉, 식민지배와 징용이 모두 적법한 것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반면 2018년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불법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는 의미로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따라서 위 문서는 일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2) 14년 간 계속된 협상…일본의 아전인수
    한일 청구권 협상은 1951년 시작돼 1965년에 끝난 긴 협상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일 간에는 온갖 요구와 주장들이 오갔습니다. 일본이 공개한 건 그 중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해석될 수 있는 회의록을 뽑아 선택한 겁니다. 이 문서는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이미 2004년 한국 정부가 공개한 문서 중 일부였고,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이 분석을 끝냈습니다.

    실제로 그 이후 회의록을 보면 정반대의 내용도 있습니다. 일본 측이 "법에 없는 지원은 불가하다. 일본인들도 피징용자들은 지원받지 못했다. 조선인도 당시에는 일본인이었다."라고 주장했다는 겁니다. 즉 식민지배와 이에 따른 일본제국의 공권력을 동원한 징용은 모두 적법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일본의 이같은 주장은 불법적인 행위(강제동원, 폭행, 인권 침해)에 대한 배상은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외통방통] 일본의 공세가 시작됐다! - 모순 덩어리 한일협정의 복수
    3)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일본이 공개한 문서는 이미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소송 과정에서도 제출됐습니다. 2018년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했습니다.

    해당 기록의 발언 내용은 대한민국이나 일본의 공식 견해가 아니라 구체적인 교섭 과정에서 교섭 담당자가 한 말에 불과하다.
    13년에 걸친 교섭 과정에서 일관되게 주장되었던 내용도 아니다.
    '피징용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언급한 것은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발언에 불과한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
    실제로 당시 일본 측의 반발로 제5차 한일회담 협상은 타결되지도 않았다.
    또한 위와 같이 협상과정에서 총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청구권협정]은 3억 달러(무상)로 타결되었다.
    이처럼 요구액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3억 달러만 받은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 것이라고는 도저히 보기 어렵다.


    반 세기 넘긴 한일협정 체제, 지금도 유효할까?

    1965년 한일 협정은 이미 50년 넘게 한일관계의 기본질서를 유지하는 근거로 작동해 왔습니다. 한일 협정은 근본적인 모순을 담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적법한 것인지, 불법이었는지에 대해 한일 양국이 분명히 합의하지 못한 채 적당히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청구권 협정 체결 당시 국민적 동의를 얻었는지도 논란입니다. 한일협정 체결 당시 학생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굴욕적인 협정을 반대하며 광범위한 시위를 벌였지만, 박정희 정권은 협정 체결을 강행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여야 정치인들이 바로 한일협정 반대 시위를 주도했던, 이른바 6.3 세대입니다.

    그 이후 50년 넘는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 한국도, 일본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선 한국에서는 1990년대 이후 민주주의와 인권 의식이 성장하면서, 군사독재 시절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시작됐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배상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도 변했습니다. 1995년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 등을 통해 일본 정부도 식민지배로 한국에 손해와 고통을 입힌 것에 대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국가간의 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까지 없앨 수 없다는 것은 국제인권법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모든 변화들은 반 세기 전 봉합했던 한일 협정의 모순을 축적시켰습니다.

    이번 한일 간의 정면 충돌은 언젠가는 터졌어야 할 문제들이 불거진 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65년 체제는 이제 종말로 치닫고 있습니다. 한일 양국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 의식의 성장, 커져버린 한국의 국력이 요구하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질서를 준비해야 할 때가 된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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