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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M] "혼자 걸을 수 없는데 저는 왜 장애인콜택시를 탈 수 없나요?"

[탐정M] "혼자 걸을 수 없는데 저는 왜 장애인콜택시를 탈 수 없나요?"
입력 2019-08-20 10:54 | 수정 2019-08-2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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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M]
    "답답해 죽겠습니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 임현섭 씨.

    지난 넉달 동안 법원에서는 아무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장애인 콜택시를 타게 해달라고 법원에 요구한 지 넉달.

    법원에서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임씨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왜 이렇게 재판이 늦어지냐며 열 번도 넘게 법원에 전화했지만, 그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기록이 안 넘어온다"는 이야기뿐.

    답답한 임 씨는 법원을 찾아가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여 활동보조인 없이는 집 앞 계단도 홀로 내려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탐정M]
    "휠체어를 못 타는 교통약자 장애인도 콜택시 탈 수 있게 해주세요"

    사실 법원에 제출한 임 씨의 요구는 간단합니다.

    임 씨는 장애특성 상 근육이 갑자기 움직이거나 경련이 일어나기 때문에 휠체어를 타는 것보다 보조인 부축을 받아 걷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그런데도 관할 지자체인 성남시가 계속해서 "장애인 콜택시를 타려면 휠체어를 타라"고 고집하자, 이번엔 법원 문을 두드린 겁니다.

    신속한 결정이 필요해 '가처분'과 비슷한 '임시조치'를 신청했는데도, 4달째 지연되는 재판에 임 씨는 속이 타들어갑니다.

    ▶ 관련 영상 보기 [소수의견] 휠체어 못 타면 택시도 못 탄다?
    기록이 사라진 34일…"흔한 사건이 아니라서"

    임 씨의 대리인 최정규 변호사는 "늦어진 4달 중에서도 특히 중간에 기록이 '증발'한 34일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중간에 관할 법원이 바뀌었는데, 사건이 이송된 지 34일 동안 기록이 넘어가지 않았다"며 "변호사 생활 17년 동안 이런 일은 처음"이라는 겁니다.

    최 변호사는 "'흔한 사건이 아니라서 그렇다'는 답변만 수차례 들었을 뿐, 아직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담당 법원 직원도 모르고, 판사도 모르고, 베테랑 변호사도 모르는 말 그대로 '깜깜이' 법원 행정 시스템인 셈입니다.

    대용량 동영상도 손가락 한 번만 움직이면 전송되는 시대에 어떻게 서류 전송에 34일이나 걸렸던 걸까요?

    장애인차별금지법 11년…"시스템이 없었다"

    취재를 시작하자, '깜깜이' 시스템의 실체도 밝혀졌습니다.

    문제는 시스템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원지법은 "이런 사건은 처음이라 대법원 전산정보국에서 기록 전송을 위한 시스템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습니다.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이 사건의 경우 사건 번호가 '아'에서 '가합'으로 바뀌었는데,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법원 내 기록을 넘길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법원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임시조치 사건에 부여되는 '아' 사건 자체가 법원에 거의 없는 일"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결국 임 씨와 변호사가 수없이 들었던 "잘 모르겠지만 흔한 사건이 아니라 그런 것 같다"는 당시 법원 직원의 답변은 "시스템이 없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참고로 '아' 사건이란 행정신청 사건을 의미하고 '가합' 사건이란 민사 본안 사건 중 합의부 사건을 의미합니다.

    임 씨는 성남시, 즉 행정부를 상대로 임시조치를 신청했기 때문에 행정신청 사건으로 판단돼 사건번호가 '아'로 분류됐었는데, 이게 다시 민사 사건으로 바뀌면서 문제가 발생했던 겁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11년이나 지났지만 시스템도 없고 경험도 없었던 법원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임현섭 씨에게 돌아갔습니다.
    [탐정M]
    당사자는 다급한데, 공무원은 '느긋'

    사실 느긋한 건 시청도 법원 못지 않습니다.

    애초에 문제가 된 성남시는 "장애 등급제가 폐지돼 어차피 11월 이후에 조례가 바뀐다"며 "그 때 임 씨가 장애인 콜택시를 신청하면 된다"는 입장.

    당장 병원을 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임 씨는 이 얘기를 듣고 더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지 2년이 넘었고, 작년 11월엔 인권위에서 차별시정 권고까지 내렸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냐"며 "성남시가 한번이라도 제대로 조사하고 그런 말을 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이미 인권위에서는 현행 성남시 조례로도 임 씨가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도 성남시는 여전히 현행 조례로는 임 씨에게 장애인 콜택시를 허용할 수 없으며, 당장 휠체어를 타든지, 아니면 조례가 바뀔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탐정M]
    "법원 못 믿으면 어디로 가나요?"

    UN 장애인권리협약에는 '선택의정서'라는 것이 딸려 있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했을 때, 국제기구인 UN 장애인권리위원회에 직접 조사를 요청할 수 있는 '개인통보제도'란 걸 따로 떼어 내 추가협약으로 만들어 놓은 건데요.

    우리나라는 지난 2008년 UN 장애인권리협약에 가입할 때 이 선택의정서는 빼고 가입했습니다.

    국내법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는 만큼 "국내 제도로도 장애인의 권리를 충분히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임현섭 씨는 "장애인이 국가로부터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정말로 국내절차를 이용해 충분히 권리를 구제할 수 있는게 맞냐"고 반문합니다.

    오히려 "장애인 임시조치 사건이 흔한 사건이 아니라서 재판이 지연됐다"는 무심한 법원 직원이나 11년 동안 임시조치 사건에 대한 행정 절차를 마련하지 못한 법원이야말로 장애인을 보이지 않게 차별하고 있는 거라고 주장합니다.

    정부와 국회는 여전히 장애인 단체들의 요구에도 이 선택의정서에 가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 이상 법원을 못 믿겠다는 임현섭 씨에게 정부와 국회는 "장애인의 권리를 구제하기 위한 국내제도가 충분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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