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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의 맥스MLB] 시애틀의 디포토, 올해는 성공할까?

[전훈칠의 맥스MLB] 시애틀의 디포토, 올해는 성공할까?
입력 2018-06-04 10:18 | 수정 2018-06-08 16:30
좀처럼 주목받을 일 없는 시애틀 매리너스가 요즘 가장 뜨거운 팀 중 하나로 떠올랐다. 최근 16경기에서 무려 13승에 서부지구 1위. 상승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만 해도 이변에 가깝다.

놀라운 것은 간판스타 로빈슨 카노가 금지 약물 복용으로 8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은 이후에도 이기고 있다는 것이다. 디 고든과 진 세구라가 잠시 부상으로 빠진 공백에도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이 와중에 디포토 단장은 깜짝 트레이드로 빈틈을 채우는 수완을 발휘했다. 큰 출혈 없이 탬파베이로부터 수준급 마무리 투수 콜로메와 외야수 스팬을 받아 온 것이다.

'트레이드 중독자'. 디포토를 가장 잘 설명하는 수식어다. 2015년 9월 시애틀에 부임한 디포토는 그해 겨울에만 12건의 트레이드를 진행했다. 올해까지 모두 60회가 넘는다. 갓 영입한 선수를 곧장 트레이드 카드로 재활용하는가 하면, 내보냈던 선수를 다시 받아오기도 한다. 말렉스 스미스는 자신의 시애틀 이적 소식을 접한 뒤 1시간 만에 탬파베이로 또 트레이드되기도 했다. (공식적으로 3각 트레이드가 아니었다.) 틈만 나면 40인 명단을 뒤섞는다.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 트레이드도 부지기수다. 디포토가 시애틀에 온 뒤 단 두 번의 겨울이 지나면서 40인 명단 가운데 30명 이상이 바뀌었다.

"디포토라면 '현금 대 현금' 트레이드도 가능하지 않을까?" 요즘 디포토의 이미지가 이렇다.

끊임없이 벌이는 트레이드를 보노라면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조각들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빈틈을 채우는 테트리스 게임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다만 구단 사정상 디포토가 굵직한 선수를 내주거나 데려오는 일은 거의 없다. 테트리스라면 한 번에 넉 줄, 다섯 줄을 시원하게 삭제할 수 있는 길쭉한 블록이 없는 것이다.

이런 게 없다. 사이다 없이 고구마를 먹어가며 테트리스를 한다고 보면 된다.

디포토의 원칙은 이렇다. 대형 FA 계약은 피한다. 혹시 FA를 영입한다면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비용만 쓴다. 대신 트레이드를 적극 활용한다. 트레이드하기로 마음먹으면 최대한 빠르게 처리한다.

이런 디포토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은 한동안 냉랭했다. 16년 연속 가을 야구를 맛보지 못해 울화통이 터질 지경인데, 잔기술로 어설픈 선수나 데려오는 디포토가 마음에 들 리 없었다. 시애틀의 대표 지역 언론인 '시애틀 타임즈'는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유례없이 비관적인 전망을 담은 특집기사를 마련해 여론을 반영했다.

개막 직전, 시애틀의 흑역사를 총망라한 특집 기사. 추신수의 클리블랜드 이적도 언급돼 있다.

전 세계 스포츠 팬과 언론은 일희일비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올해 성적이 기대를 웃돌자 여론도 급속히 포근해졌다. 현재의 시애틀 역시 잦은 테트리스의 결과물이다. 마이너리거 3명을 내주고 2루수 고든을 데려온 뒤 과감하게 중견수로 기용하는 도박을 감행했다. 결과가 썩 나쁘지는 않았는데 카노가 이탈하는 바람에 고든을 다시 2루수로 옮겨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카노가 징계를 받은 덕(?)에 1,100만 달러의 연봉을 지급할 필요가 없게 됐고, 즉각 디포토의 '테트리스 회로'가 가동됐다. 이 돈을 바탕으로 콜로메와 스팬의 연봉을 일부 떠안으면서 영입할 수 있게 됐다. 스팬은 고든의 2루 행으로 생긴 외야 공백을 채웠다. 타선보다 불펜으로 버티는 상황에서, 콜로메의 영입으로 마무리 디아스만 바라보던 처지도 개선했다. 늘 앤드루 밀러와 코디 앨런이 지키는 클리블랜드의 더블 스토퍼 체제를 부러워하던 디포토에겐 이제 여유마저 생겼다.

디포토가 시애틀에 온 이후 30개 구단 트레이드 횟수. 어떤 구단보다 월등히 많다.

'해니구라(Hanigura) 트레이드'. 해니거와 세구라를 영입한 트레이드의 별칭으로, 디포토가 시애틀에서 벌인 일 가운데 최고 업적으로 꼽힌다. 2000년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떠난 뒤 10년 넘도록 확실한 유격수가 없던 시애틀에 장기적인 유격수 대안을 마련한 동시에 리그 상위권 우익수를 가져다 준 트레이드다. 본의 아니게 애리조나로 넘어간 타이후안 워커가 토미 존 수술로 이탈하면서 결과가 더 돋보이게 됐다.

어두운 면도 있다. 최근 메이저리그 구단의 가치 평가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팜(Farm), 다시 말해 마이너리그 선수층이 잦은 트레이드로 인해 황폐해졌다. 주요 유망주 순위에 시애틀 산하 마이너리거는 눈 씻고 봐도 찾기 힘들다. 워낙 많은 트레이드를 하다 보니 흑역사도 있다. 내야수 크리스 테일러와 투수 잭 리를 바꾼 게 대표적이다. 테일러는 LA 다저스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았고, 리는 지금 시애틀에 없다. 팀을 떠난 트럼보가 홈런왕이 되고, 대신 받아온 클레빈저는 SNS에 인종 차별 발언을 남겨 징계를 받은 뒤 쫓겨난 사례도 있다.

디포토가 정식 단장을 맡은 것은 2011년 LA 에인절스 때가 처음이었다. 세이버 메트릭스를 현실 야구에 구현하려는 의욕이 넘쳤지만 마이크 소시아 감독과 야구관이 정면충돌했고, 결국 '파워 게임'에서 밀려 사임했다. 하지만 시애틀에서는 그럴 걱정이 없다. 시애틀의 스캇 서비스 감독은 오로지 디포토의 단장직을 위해 고용된 인물이다. 그리고 지금 한풀이하듯 자신만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

디포토는 운동 능력과 수비, 스피드가 갖춰진 라인업을 지향한다. 몇 차례 공사를 거치며 크기가 줄긴 했어도 여전히 홈구장 세이프코필드는 투수들이 선호하는 구장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한 철학이다. 시애틀의 황금기로 불리는 2001년,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을 작성할 때도 내야의 브렛 분, 존 올러루드, 데이비드 벨, 외야의 이치로, 마이크 카메론 등 수비력이 강조된 중장거리 라인업이었다. 조금 성급하지만 향수를 느낄 만한 분위기는 조성됐다.

선수 출신인 디포토는 8년의 빅리그 현역 시절, 선발 등판 기회 한 번 없이 불펜으로만 뛰었다. 두 차례 트레이드를 경험하기도 했다. 처음 트레이드를 겪을 때 충격이 있었지만, 이후 팀이 자신을 활용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자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버텼다고 한다. 장기적이고 긍정적인 안목을 가지려는 건 단장이 된 이후도 마찬가지다. "트레이드 하나하나에서 승리자가 되기보다, 꾸준히 승리하는 팀이 되기 위한 트레이드를 한다"는 게 자신의 주장이다. 다양한 시도가 용인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유별난 방법으로 조각을 맞춰가는 디포토의 시도가 시애틀의 16년 묵은 한을 풀 수 있을까? 디포토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구를 어떻게 바꿀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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