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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의 맥스MLB] 펠릭스 에르난데스, '킹인가 짐인가'

[전훈칠의 맥스MLB] 펠릭스 에르난데스, '킹인가 짐인가'
입력 2018-06-11 16:27 | 수정 2018-07-24 13:34
시애틀의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연승을 저지했다. 안타까운 건 상대팀이 아니라 소속팀의 연승을 저지했다는 사실이다.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 16일 팀의 5연승을 막았고, 지난 달 25일에도 6연승에 도전하던 동료들을 좌절시켰다. 팀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어제 역시 3이닝 6실점으로 휴스턴과의 지구 선두 경쟁에 찬물을 끼얹었다. (공교롭게 상대 선발로 나선 블레이크 스넬은 고향이 시애틀이다.) 직전 등판에서 8이닝 1실점의 호투를 펼친 뒤, “이게 원래의 나” 라며 호기롭게 자신감을 드러냈던 게 민망해진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스타 중 한 명인 펠릭스 에르난데스.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압도적인 투구를 펼치면서 빅리그 데뷔 전에 이미 ‘킹 펠릭스’로 불렸다는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2005년 메이저리그 역사상 세 번째로 10대의 나이에 선발 데뷔전을 치르면서 또 한 번 화제가 됐는데, 정작 이 데뷔전을 제대로 시청한 사람은 없다. 혹시 이 경기를 일반적인 경기처럼 본 게 기억난다면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초특급 유망주를 아끼려는 시애틀 구단의 극성 탓에 일반적인 중계방송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뷔전에 몰릴 지나친 관심을 염려한 나머지, 지역 중계 방송사와 협의해 이 경기를 정식 중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금은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팀마다 두어 경기는 생중계가 되지 않았다. 이 경기는 지금도 정식 중계 버전 없이, 일부 시범경기처럼 구위나 구속을 알 수 없는 이른바 ‘ENG 영상’으로 촬영한 버전만 공개돼 있다.)

구단의 조치에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킹 펠릭스는 데뷔하자마자 30이닝 동안 단 하나의 장타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기대에 부응했고, 이후 사이영상(2010년)과 퍼펙트게임(2012년)으로 요약되는 커리어를 이어갔다. 시애틀 구단 최다승, 최다 탈삼진 기록을 보유한 프랜차이즈 역대 최고 스타인 동시에, 베네수엘라 출신 최다승, 최다이닝, 최다 탈삼진에 빛나는 고국의 영웅이기도 하다.

이런 위업을 남기고도 정작 가을 야구는 구경도 하지 못한 비운의 선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킹 펠릭스는 우승 가능한 팀으로 떠나는 선택은 하지 않았다. (킹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또 다른 선수와의 차이다.) 그만큼 시애틀 구단이 확실하게 성의를 표시하기도 했다. 킹 펠릭스는 2013 시즌 개막 전, 7년간 연장 계약을 체결하는 자리에서 나름대로 진심을 드러냈다. 기자 회견 도중 팀을 포스트시즌에 반드시 보내겠다고 수차례 다짐하며 눈물까지 쏟은 것이다.




그런 킹 펠릭스가 지금 시애틀에게 짐이 되고 있는 모양새다. 2, 3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던 노쇠화에 대한 우려가 올해는 현실이 되고 있다. 데뷔 초 심심치 않게 100마일을 찍는 등 2006년 선발 투수 직구 평균 구속 1위 (95.2 마일)를 자랑하던 직구는 평균 90마일 안팎으로 내려앉은 지 오래다. 시즌 성적 6승 5패에 평균자책점 5.70. 아메리칸리그에서 규정이닝을 소화한 투수 가운데 최하위다. 상대적으로 타고투저인 KBO리그에서도 용인되기 어려운 수치다.
물론 시애틀의 암흑기에 홀로 버텨준 킹 펠릭스의 부진을 비난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시애틀 구단과 팬은 그가 버티고 있을 때 가을 야구를 해야 한다는 심정이다. 이른바 ‘탱킹’과 ‘리빌딩’이 유행인 시대임에도 시애틀이 극단적인 체질 개선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킹 펠릭스의 존재 때문이다.

아마추어 시절, 킹 펠릭스는 숱한 스카우트들의 구애를 뿌리치고 비인기 팀인 시애틀을 택했다. 누가 봐도 명문 구단인 뉴욕 양키스와 애틀랜타가 심지어 더 많은 계약금을 제시했음에도 자신의 우상이었던 프레디 가르시아와 같은 유니폼을 입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가르시아가 시애틀을 떠난 뒤 그의 등번호 34번까지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때만 해도 이런 운명을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NBA에서 우승을 위해 팀을 옮긴 대표적인 선수, 케빈 듀란트는 이번 파이널을 마친 뒤 “승리가 범죄라면 나는 죄인”이라는 말을 남겼다. 승리에 대한 본능이 누구보다 강한 프로 스포츠 선수들에게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욕망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유별난 승부욕으로 소문난 킹 펠릭스에게 가을 야구 경험이 없다는 건 스스로 용납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농구와 달리 한두 명의 능력으로 팀을 끌어올릴 수도 없기에 답답함은 더 클 것이다.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했다는 게 나를 미치게 한다. 매년 무엇이든 새로운 시도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동기다.” 해마다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포스트시즌 진출에 사활을 건 그의 인터뷰는 한결같다.
올해는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팀의 163번째 경기에 나설 수 있을까? 와일드카드의 확대로 기회가 늘어났다는 점, 시애틀이 아직 지구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점은 일단 긍정적이다. 시애틀이 65경기를 치른 시점에 40승을 기록한 건 지난 2003 이후 처음이다. 킹 펠릭스와 시애틀의 계약은 이제 옵션 포함 2년밖에 남지 않았다. 예전 같지 않은 구위로 근근이 버티면서도 목표 의식만큼은 확고한 킹 펠릭스. 자신의 첫 포스트시즌 경기를 치르고 또 한 번 눈물의 기자 회견을 갖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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