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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트] 간호사가 남긴 네 문장…그리고 유가족의 편지

[뉴스인사이트] 간호사가 남긴 네 문장…그리고 유가족의 편지
입력 2018-03-01 09:27 | 수정 2020-01-03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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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간호사가 남긴 네 문장…그리고 유가족의 편지
    지난 설 연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입간호사가 있습니다. 박선영(가명), 28살이었습니다.
    숨지기 20분 전, 자신의 스마트폰에는 단 네 문장의 메모를 남겼습니다. "업무에 대한 압박감", "프리셉터(교육담당간호사)선생님의 눈초리', "의기소침", "불안한 증상" 죽음을 앞두고 선영씨는 이런 단어들로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습니다.

    재수 끝에 이룬 선영씨의 꿈, 간호사

    숨진 선영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간호사의 꿈을 키워왔습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자신보다 더 아픈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가 돼야겠다는 꿈을 위해 재수 끝에 간호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하고 이른바 top 5안에 드는 서울의 한 대형병원의 신입간호사로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웃음도 많고, 주말이면 친척들과 모여 맛있는 음식 먹는 일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다던 선영씨. 그렇게 기다리던 병원에 입사한 뒤엔 웃음도 없어지고, 체중은 5킬로그램 넘게 빠졌습니다. 가족에게 걸려오는 전화에는 '손이 느린 것 같아, 내가 부족한가 봐', '내가 잘못 배운 것 같아.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하지.' 같은 힘없는 목소리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설 전날, 아무 연고도 없는 송파구의 한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꿈에 그리던 간호사가 됐지만, 5개월 만에 쓰다 만 메모 몇 줄만 남기고 세상을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 관련 기사 보기 [목숨 끊기 전 마지막 메모 "선배 눈초리 불안 증상 심해져"]



    [뉴스인사이트] 간호사가 남긴 네 문장…그리고 유가족의 편지
    태움, 사회적 죽음

    유가족과 간호계, 전문가들은 선영씨의 죽음이 '태움'이라는 악습이 가져온 사회적 죽음이라고 얘기했습니다. ('태움'이란 경력간호사가 신입간호사를 가르칠 때 엄격하다 못해 혹독하게 가르치는 것을 일컫는 말로,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워버린다’는 무시무시한 뜻입니다.)

    선영씨는 입사 이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며 힘들어했고, 병원 업무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이 부족하다며 휴일에도 집에 가지 않고 틀어박혀 공부만 했고, 남자친구와 밥을 먹을 때도 손에서 간호관련 서적을 놓지 않을 정도로 심리적 압박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박 씨의 남자친구가 간호사 커뮤니티에 박 씨의 죽음이 태움 때문이라고 올린 글을 시작으로 인터넷상에서는 너도나도 태움을 경험했다는 글이 연이었습니다.

    대한간호협회가 보건복지부와 함께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0% 정도가 인권침해를 경험했다고 답했습니다. 연장근로 강요(35.4%)부터 생리휴가와 유아휴직에 대한 인권침해(27.1%)에 달했고, 10명 중에 4명은 최근 1년 동안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유가족은 면접사진이 영정사진이 되어버린 고인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란다며, 병원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청한 상태입니다. 취재진이 만난 유가족은 이미 세상은 뜬 고인이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선영씨의 죽음으로 병원의 근로환경과 문화가 개선돼 선영씨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선영씨의 죽음은 단순히 선배간호사만의 괴롭힘이 아니라, 병원의 고질적인 '태움'이라는 악습이 낳은 것이라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뉴스인사이트] 간호사가 남긴 네 문장…그리고 유가족의 편지
    유가족의 편지

    남은 가족은 떠난 선영씨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선영아, 네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 사회 첫발을 내딛는 사람을 잘 모르니까 일 배우느라고 힘든 거지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

    네 마음을 몰라줘서 그래서 네가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었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고 그렇지만 네 죽음이 억울하지 않게끔 열심히 노력해서, 네가 지냈던 그 열악한 환경이 조금이라도 개선이 되는 제도로 바뀔 수 있도록 됐으면…

    네 죽음이 헛되지 않다는 걸 알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열심히 노력할게.

    널 너무나도 사랑하던 너의 아빠가 네가 보고 싶어서 너랑 같이 있고 싶어서 데려갔나 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아빠랑 같이 잘 지내고 있으면 우리들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 돼서 그때 같이 만났으면 좋겠다. 선영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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