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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트] "매일매일이 끔찍"…태움 해법은 없나

[뉴스인사이트] "매일매일이 끔찍"…태움 해법은 없나
입력 2018-03-02 10:02 | 수정 2020-01-0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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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매일매일이 끔찍"…태움 해법은 없나
    [간호사 A]

    입사 3일째부터 태움이 시작됐다. 일을 시켜놓고 중간에 다른 일 시키고 시간 되니까 왜 안 했냐고 물으며 혼을 낸다.
    "출근시간이 늦다, 세 시간 먼저 나와라."
    "내가 하는 말에 대꾸하지 말고 무조건 '예, 알겠습니다'로 대답해라."
    "저한테 좀 맞으실래요? 왜 하라는 대로 안 해!"
    (중략)
    너무 우울하다. 내 삶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웃긴 걸 봐도 웃기지 않는다.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고 잠이 들기 전 마음이 너무 괴롭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매일 매일이 끔찍하다.

    [뉴스인사이트] "매일매일이 끔찍"…태움 해법은 없나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제보가 온 태움 피해 사례입니다.

    지난해 11월에 문을 연 직장갑질119에는 현재까지 수백 건의 간호사 갑질 피해 사례가 제보로 들어왔고, 위와 같은 ‘태움’ 피해 사례도 40여 건 접수됐습니다.

    단체는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엄하게 교육을 해야 한다는 핑계로 벌어진 괴롭힘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인격테러’ 범죄라고 비판하면서, 이런 '태움' 뒤에는 간호사 인력부족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내 간호사 교육은, 경력간호사가 신입간호사를 일대일로 도맡아 가르치는 도제식 형태입니다. 4~10년차인 중간간호사가 '프리셉터(preceptor)'라는 교육담당 간호사를 맡아 신입간호사 '프리셉티'(preceptee)’에게 2~3달간 교육을 하는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교육담당간호사가 기존 본인의 업무를 그대로 진행하면서 교육까지 도맡아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뉴스인사이트] "매일매일이 끔찍"…태움 해법은 없나
    국내 간호사 일인당 환자 수 20명, OECD 국가의 4.5배

    국내 간호사 1명이 맡는 환자의 수는 20명 정도로, 다른 OECD 국가(호주·캐나다 4명/미국 5명/ 일본 7명)의 4,5배에 이릅니다. 취재진이 만난 현직 간호사들도 인력부족을 가장 큰 문제로 손꼽았습니다.

    애초에 주어진 시간에 끝낼 수 없는 업무량이 주어지기에 출근시간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해도 야근하기 다반사고, 근무시간 중에는 밥 먹을 시간은 물론 화장실 갈 틈도 없어 방광염을 앓기까지 합니다. 병원 내에서 걸어다니는 일보다 뛰어다니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대학병원에서 만난 한 간호사는 10분 남짓한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정말 복도를 질주해갔습니다.) 이런 고강도 업무 속에서 서로 예민해지고, 신입간호사가 실수라도 하면 뒤처리까지 선배간호사가 맡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태움'이라는 악습이 생겨났다는 겁니다.

    ▶ 관련 뉴스 보기 ["물 마실 틈도 없다"…'태움' 악습, 인력 부족이 문제]



    간호학과 정원 두 배 늘어도, 간호사 인력은 제자리

    이렇게 간호 인력이 부족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간호사의 절대적인 숫자가 적은 것은 아닙니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지난 10년간 전국의 대학 간호학과 정원은 2배 가까이 늘었지만, 병원의 간호사 인력은 제자리라고 지적했습니다.

    병원들이 정부에 간호사 숫자가 부족하다며 간호학과 정원을 늘려달라고 요구해왔지만, 정작 병원 내 간호사 인력은 늘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병원은 인건비 때문에 값싼 신규간호사만을 원했고, 경력 있는 간호사가 떠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김 교수는 말합니다.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가 적다 보니 과다한 업무에 시달리다 그만두고(실제 국내 간호사 이직률은 33.9%에 달합니다.), 이 자리를 신규간호사가 채우는 일이 반복되면서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는 간호사는 더 늘어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는 겁니다.

    간호 현장의 태움에 관한 논문을 쓴 정선화 서울대 간호학 박사는 간호사 간의 수직적인 문화와 위계질서도 태움의 한 원인이라고 꼽았습니다. 바쁜 일정에 쫓겨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병원업무의 특성상 서로 오고가는 말이 더 뾰족해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소통이 원활해지더라도 인력부족과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태움은 근절되지 않을 것입니다. 정 박사 역시 태움을 낳은 가장 큰 원인은 인력부족이라고 지목했습니다. 프리셉터 한 명이 신입교육을 떠맡는 교육방식 또한 문제라고 꼽았는데, 교육을 하는 동안 기존 업무를 덜어주거나, 고참간호사와 수간호사와 신입교육을 분담하는 등의 교육방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태움이 나타나지 않는 병원의 경우, 최고참인 수간호사가 간호사 간의 갈등을 관리하고 교육을 담당하는 간호사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노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뉴스인사이트] "매일매일이 끔찍"…태움 해법은 없나
    인력부족 키우는 '태움' 관행

    어쩌면 '태움'이 병원 내의 독특한 문화라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움 관련 기사에는 힘이 들면 간호사가 아닌 다른 직업을 택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댓글이 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간호사들에게 업무가 과중되고, 과중된 업무 때문에 신입간호사에게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교육이란 이름 아래 태움을 당하다 견디지 못해 간호사가 그만두고, 그 자리를 또 신규 간호사가 들어오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결국 그 피해는 환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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