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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정동훈

[뉴스인사이트] 공중화장실 휴지통 없앴더니…

[뉴스인사이트] 공중화장실 휴지통 없앴더니…
입력 2018-03-06 15:23 | 수정 2020-01-0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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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공중화장실 휴지통 없앴더니…
    "제 얼굴 나오면 큰일 나요. 싫어요. 싫어. 인터뷰 안 할래요."
    "정부에서 추진하는 건데, 용역 업체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 용역이…"


    화장실이 더 자주 막힌다는 제보

    정부가 올해부터 공중화장실에 휴지통을 없앴습니다. 깨끗한 화장실을 만들겠다는 게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쓰레기통을 치웠더니 애먼 청소노동자들이 안 해도 될 고생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휴지를 변기에 버리다 보니까, 변기가 수시로 막혀 하루에 많게는 여덟 번씩 변기를 뚫고 있다는 겁니다. 입에 담기조차, 상상하기조차 싫어하는 화장실에서 일어나는 이 '지저분한' 이야기를 공중파 TV 메인뉴스에 내보낸다는 게 가능할지 걱정은 됐습니다. 그래도, 뭔가 대책도 없이 갑자기 쓰레기통을 치워서 청소노동자들이 이런 고생하고 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수도권의 한 역사 화장실을 찾아갔습니다. 밀대 걸레를 들고 여자화장실에서 나오시던 한 청소노동자를 발견하고 다가갔습니다.

    "잠시 만요, 뭐 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변기 안 막혀요!"...무조건 피하기만 하는 여사님들

    카메라를 든 취재진을 발견한 50대 여성 청소노동자. 이 업계에선, 여성청소노동자분들을 '여사님'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 '여사님'은 손사래를 치며 다시 여자화장실로 들어가 버리시곤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남자 기자인 저로서는 따라 들어갈 수도 없고 참 난처한 상황이더군요. 조금 있으니, 화장실 안에서 여사님의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변기 안 막혀요!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으니까, 그냥 가세요"

    여쭤보지도 않았는데, 기자가 왜 왔는지 이미 알고 계셨던 겁니다. 그 순간, 역사 관계자가 취재진에게 달려왔습니다. "역사는 보안구역이라서 허가를 받고 촬영을 해야 한다"며 취재 중단을 요구하더군요. 화장실도 보안구역이냐고 되물었더니 아무튼 그렇다더군요. 여사님들께 제대로 말도 못 붙여보고선 며칠 뒤 다른 역사를 찾아가 봤습니다. 지나가는 여사님 몇 분을 쫓아다니면서 변기 막힘 때문에 힘들지 않으시냐고 여쭤봤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변기 안 막힌다"고, "아무 문제없고 더 좋아졌다"고 말씀하시더군요.

    ▶ 관련 뉴스 보기 [공중화장실 휴지통 없애니 청소노동자 '진땀', 왜?]

    [뉴스인사이트] 공중화장실 휴지통 없앴더니…
    정부시책인데..."우리도 먹고살아야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사전에 무슨 단체 교육이라도 받으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잠시 취재를 중단하고, 역사에서 청소 용역을 받은 업체 관계자를 만났습니다. 털어놓은 얘기는 이랬습니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정책인데 우리가 뭐라고 얘기하겠습니까. 역사와 계약해서 먹고사는 우리는 용역 아닙니까, 용역. 나가라면 나가야되는…"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여사님들이 언론 인터뷰에 이처럼 극도로 예민해 하시는 이유도 알게 됐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여사님들이 '변기 막힌다. 바닥에 버린 쓰레기 치우느라 고생이 많다' 뭐 그런 얘기를 기자한테 해줬는데, 기사에 여사님 실명 박아서 나간 거예요. 직업에 아무리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이런 일 하시는 분들인데 기사를 그렇게 써 놨으니…그거 여기 여사님들이 다 알고 있어요. 아마 제가 인터뷰하시라 그래도 안 하실 겁니다."

    "절대 얼굴 나가면 안 돼요!"

    순간, 저는 같은 언론계 종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얼굴이 확 달아올랐습니다. 청소노동자들의 고충을 보도하겠다며 불쑥 여사님들 앞에 카메라 기자와 함께 나타난 제 자신이 부끄럽고, 또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역사 측과 용엽업체 측에 보도의 취지를 보다 상세하고 정확하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여사님들께도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거듭 약속하고 협조를 부탁드렸습니다. 물론 내키시진 않으셨겠지만 일부 여사님들이 촬영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여사님들은 취재가 끝나고도 여전히 불안하셨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걸 잊지 않으셨습니다.

    "집에 애들이 내가 이런 일 하는 거 알면 큰일 나. 절대 얼굴 나가면 안 돼요!"

    이렇게 몇몇 용기를 내 주신 여사님들 덕분에, 저는 "화장실 휴지통 없앴더니, 청소노동자 '진땀', 왜?" <뉴스데스크, 3월 3일 보도> 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처지에서도 취재에 응해주신 청소노동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뉴스인사이트] 공중화장실 휴지통 없앴더니…
    휴지통 없앤 뒤 3배나 많아진 막힘 현상

    취재를 해 보니, 화장실 변기 막힘 현상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걸 알게 됐습니다. 서울역 하루 유동 인구는 30만명이 넘는데, 화장실 청소 담당자는 5명이 전부였습니다. 휴지통을 없앤 뒤로, 변기 막힘 건수가 예전보다 3배 이상 늘어, 하루에 7,8번은 '뚫어뻥'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서울지하철 1~4호선은 이미 지난해 8월부터 화장실에 휴지통을 없앴는데요.

    통계를 보면, 이후 변기 막힘이 늘어난 게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2017년 7월 648건에 불과하던 막힘 건수는 8월 들어 1천49건으로 폭증했고, 이후에도 계속 증가해 12월에는 무려 1천709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이 수치는 변기 수리 업체가 출동한 건수만 집계한 것으로, 현장 청소노동자가 바로 뚫는 경우는 빠져 있어서 실제 막힌 건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휴지통을 치운 뒤 1~4호선 역사 중에서 변기 막힘이 심해진 곳은 홍대입구가 1위, 2위는 신도림, 3위 창동, 4위 교대, 5위 시청으로 나타났습니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일수록 막힘 건수도 많다는 얘기였습니다. 당황스러운 건 막힘 원인이었습니다. 카드나 빨대, 비닐, 종이컵, 커피뚜껑, 심지어 유리병이 막힘을 유발한 10대 원인에 포함됐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막힘 원인 1위는 뭐였을까요? '휴지'였습니다.
    [뉴스인사이트] 공중화장실 휴지통 없앴더니…
    물에 안 녹는 휴지가 '뚫어뻥'의 주범

    청소노동자들은 "휴지를 너무 많이 둘둘 말아서 집어넣거나, 물에 안 녹는 물티슈를 사용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문 연구기관에 의뢰해 두루마리 휴지와 미용휴지, 물티슈가 물에 얼마나 잘 풀리는지, 직접 실험을 해 봤습니다. 실험 결과, 물에서 두루마리 휴지는 28초 만에 풀렸고, 미용휴지는 110초, 물티슈는 3분이 지나도 아예 풀리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문병근 한국건설생활환경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물 풀림성이 좋지 않은 휴지를 변기에 투입하면 막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S자형으로 구부러진 배관도 문제

    전문가들은 변기 막힘의 원인으로 쉽게 막힐 수밖에 없는 변기의 구조도 지적했습니다. 변기 안에서 내용물이 빠져나가는 관이 S자형으로 꼬부라져 있어서, 코너에서 막힐 확률이 크다는 겁니다. 배관의 경사도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변기 배관의 경사도는 1미터 당 1cm 이상, 배관은 75cm 이상의 관을 쓰게 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건물의 층간 두께가 얇다 보니 경사는 최대한 완만하게, 관두께는 가는 것을 사용하다 보니 변기가 막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변기와 연결된 배관은 보통 건물 바닥이나 층과 층 사이에 설치되는데, 층간 두께를 얇게 시공하다 보니, 배관 경사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내용물이 잘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얘기였습니다.
    [뉴스인사이트] 공중화장실 휴지통 없앴더니…
    "1초만 더 꾸욱 눌러 달라"

    화장실에 휴지통을 없애는 건 이미 세계적인 추세라고 합니다. 취재과정에서 주무부처인 행안부 관계자에게 변기 막힘의 실태와 청소노동자분들의 고충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관계자는 "변기 막힘이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면서 "국민들과 현장 청소노동자분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번 보도가 청소노동자분들의 변기 뚫는 고충을 덜어드리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방송 보도에는 미처 담지 못한 한 여사님의 당부를 전하면서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물 내릴 때, 이렇게 꾸욱 눌러야 된다고. 살짝 누르고 마는데, 지금보다 1초만 더 눌러줘도 덜 막힌다고요. 1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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