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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트] 금융당국 짬짜미로 지켜온 이건희 회장의 차명 세계

[뉴스인사이트] 금융당국 짬짜미로 지켜온 이건희 회장의 차명 세계
입력 2018-03-07 09:26 | 수정 2020-01-0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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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금융당국 짬짜미로 지켜온 이건희 회장의 차명 세계
    월요일 아침, 여느 직장인들처럼 기자들도 월요병에 시달립니다. 저희도 직장인인 이상 그날 먹고살 거리 (언론계 용어로는 '아이템')가 변변치 않은 날은 참 하루 시작이 버거운데, 월요일이 특히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5일 월요일도 그런 날이었지요. 부장에게 아침 보고를 별 내용 없이 올리려는데 갑자기 스마트폰 문자 알림이 울립니다. '(금감원) 브리핑 안내, 주제 : 이건희 차명계좌에 대한 검사결과, 일시 및 장소 : 3.5(월)11:00 / 금감원 기자실, 자료배포 : 브리핑 시 현장 배포'

    오! 이런! 순식간에 머리와 손이 바빠집니다. 얼른 내용을 파악해서 개요를 짜서 부장에게 보고하고 기사구성을 상의해야 하죠. 그리고 동시에 드는 의문. ‘이거 조사 들어간 지 2주밖에 안 됐는데 벌써 검사결과가 나와? 이 회장 차명계좌 자료 25년 전 꺼라 증권사들이 이미 예전에 삭제했다고 했는데(금융자료 보관의무기한은 10년이라는 이유로...) 고작 2주 조사해서 의미 있는 검사결과가 나왔을까?’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과징금 부과대상 27개 계좌의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 실시 당일) 잔액이 고스란히 나온 거죠. 네 개 증권사 계좌에 삼성계열사 (대부분 삼성전자) 주식으로 61억 8천만 원이 남아있었답니다. 이걸 현재가치로 산정하면 무려 2천3백억 원에 달합니다. 하지만 차명계좌 과징금이 실명제 실시 당일 가액의 50%니까 30억 9천만 원에 그치고 말았네요.

    ▶ 관련 뉴스 보기 [이건희 차명자산 2천억 원인데 과징금은 30억, 왜?]

    [뉴스인사이트] 금융당국 짬짜미로 지켜온 이건희 회장의 차명 세계
    금감원은 왜 허위보고를 했을까?

    지난해부터 그렇게 우리 사회를 요란하게 달군 것치곤 과징금이 턱없이 적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아니 그보다도 이렇게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자료를 왜 이제까지 금감원은 찾아볼 노력을 안 한 걸까요? 국회에조차 금감원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증권사 자료가 삭제돼 찾을 수 없다고 보고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허위보고를 한 셈이죠. 금감원은 5일 검사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사과의 뜻을 표명했습니다.

    금감원뿐 아니라 상위부처인 금융위원회도 불과 20일 전까지만 해도 이 회장의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할 법적 논리가 없다며 버티고 또 버텨왔습니다. 임직원 명의로 개설된 이 회장 차명계좌가 어쨌든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의 명의이니 ‘금융실명법’을 어긴 건 아니라는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법제처가 지난달 과징금 부과 대상이 맞다고 결론 내리니까 그제서야 금감원, 국세청 등과 TF를 꾸리고 활동을 시작한 게 이번 검사 결괍니다. 의지가 있으니 일은 일사천리네요. 금융위는 아예 한 술 더 떠서 이 회장의 나머지 차명계좌 1400여 개에 대해서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뉴스인사이트] 금융당국 짬짜미로 지켜온 이건희 회장의 차명 세계
    당국 직무유기 틈새에 무력해지는 법의 존재

    금융당국의 모습이 180도 달라진 걸 보며 저는 지난 1월 입수한 금융위와 금감원이 작성한 문서 파일을 열어봤습니다. 이거로만은 기사화하기 다소 미진해 보관해왔던 자료입니다. 이번 검사결과로 이 자료도 좋은 기삿거리가 된 셈이죠. 이건희 차명계좌 과징금 부과에 대한 두 기관의 입장을 정식 보고한 문건인데요. 다섯 가지 질문을 던져놓고 있습니다.

    1) 각 금융기관의 차명계좌 거래 여부는 어떤 식으로 확인하고 있는가?
    2) 차명계좌를 확인했을 때 처리방식은?
    3) 과징금 부과대상을 국세청에 통보한 케이스는 몇 건인가?
    4) 불공정거래 외에 차명계좌 거래를 국세청에 통보할 근거는 전혀 없는 것인가?
    5) 상속세나 증여세 회피 목적, 비자금 조성목적의 차명계좌를 적발해 과징금을 부과할 근거는 없는가?

    여기에 금융위는 1) 2) 3)은 금감원 업무라며 답변을 미루고, 4) 차명계좌 거래나 5) 상속세 회피, 비자금 조성목적의 차명거래는 적발되어도 이를 계좌명의자(여기선 삼성 임직원)의 동의 없이 다른 기관에 알릴 수 없다고 말합니다. 금감원은 같은 질문을 놓고 계좌개설 시 자금 실소유주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등의 차명거래 여부는 확인할 의무도 없고 확인도 불가능하다고 답합니다. 차명계좌 확인의무는 금융위의 유권해석에 따른다며 또 미루고요. 차명계좌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한 적도 실명제 실시 이후 단 한 번도 없고, 이를 국세청에 알릴 의무도 없다고 답합니다.

    서로 공을 넘기고 또 넘깁니다. 조금이라도 법 해석에 논란의 여지가 있으면 집행하지 않습니다. 두 보고서 어디에서도 법의 미진한 부분을 고치려는 행정기관으로서의 적극적 노력이나 사회정의, 경제정의를 실행할 의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법률용어에 숨고, 소관을 따지며, 책임을 빙글빙글 돌립니다. 그 직무유기의 짬짜미에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는 과징금도 세금도 매겨지지 않은 채 20년 넘게 안전하게 유지돼왔습니다.

    ▶ 관련 뉴스 보기 [2주 만에 찾은 차명계좌…25년간 알고도 모른 척?]

    [뉴스인사이트] 금융당국 짬짜미로 지켜온 이건희 회장의 차명 세계
    그리고 혜택을 누리는 자들

    금융실명법이 시행된 지 25년째이지만, '투명한 금융'을 위해서 '실명 계좌'로 거래하고자 하는 취지는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네요. 삼성뿐 일까요? 상속세, 증여세 회피목적이나 비자금 조성 목적으로 차명계좌를 만든 재벌가는 검·경에 적발된 곳만 CJ, 동부그룹, 빙그레 등 이미 여러 곳입니다. 이들에 대해서 금융당국은 또 어떤 입장을 보일까요? 금융당국이 추진하겠다는 금융실명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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