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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윤정혜

[뉴스인사이트] '수업료 150억 원' 서울시의 미세먼지 수업

[뉴스인사이트] '수업료 150억 원' 서울시의 미세먼지 수업
입력 2018-03-09 15:37 | 수정 2020-01-0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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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수업료 150억 원' 서울시의 미세먼지 수업
    지난 1월 14일 일요일 저녁 5시 19분. 주말 저녁을 보내던 서울시민들의 휴대폰이 일제히 요란스럽게 울렸습니다. 긴급 재난 문자 메시지였습니다. <내일 출퇴근 시 대중교통 무료, 승용차 이용 자제>. 그렇게 사상 첫 '서울형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사상 첫 '공짜 대중교통'은 출근시간을 불과 12시간 반 앞두고 기습 발령됐습니다.

    기분만 좋고 끝난 '공짜 대중교통'

    바로 다음 날, 월요일 아침 출근길. 서울 공덕역으로 가서 시민들을 만났습니다. 우선 가장 많은 대답은 "공짜니까 기분은 좋다"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공짜이기 때문에 오늘만큼은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탔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자율2부제 참여 유도로 시내 도로 통행량을 줄이는 게 정책 목표인데, 그 취지에 맞는 시민을 못 찾은 겁니다. 오히려 한 시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평소에 차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이거(요금) 한 번 무료로 해준다고 대중교통 타겠어요?"
    [뉴스인사이트] '수업료 150억 원' 서울시의 미세먼지 수업
    회의적인 반응은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첫날, 도로 통행량 감소폭은 불과 0.3%였습니다. 단순히 첫날이라 시민들의 참여가 미진했던 걸까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는 1월에만 3차례 발령돼서 15일과, 17일, 18일 모두 출퇴근길 대중교통 요금이 무료였습니다. 3일치 도로 통행량을 살펴봐도 최대 1.73% 줄어드는데 그칩니다. 자율2부제에 참여한 시민들이 거의 없었다는 겁니다. 또 흥미로운 점 하나. 교통량은 비슷한데도 지하철과 시내버스 이용 승객은 각각 최대 5.8%와 9.4%까지 늘었습니다. 공짜라고 하니 평소에 안 타던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탄 겁니다. 서울시 입장에선 도로 통행량을 줄이지도 못하면서 대중교통 요금만 더 내준 셈이죠.

    ▶ 관련 뉴스 보기 [서울시, '예산낭비' 대중교통 무료정책 철회…노후 차량 단속]




    1월에만 150억 원…서울시도 예상 못했다

    3일 만에 145억 원이 투입됐습니다. 서울시가 원래 예상했던 대중교통 무료 정책의 올해 예산은 모두 249억 원인데, 3일 만에 절반 넘게 쓴 겁니다. 정부가 '강제2부제'를 시행할 때까지 계속하겠다고 장담했는데 말입니다. 먼저 기자들 사이에서 "예산 동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1월에 연달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는 건, 서울시로선 전혀 예상 못 했던 일입니다. 서울시는 올해 예산을 짜기 전에 역대 미세먼지 농도 통계자료를 분석했습니다. 그랬더니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할 만큼 미세먼지 농도가 높았던 날이 2016년에는 한 번도 없었고, 2017년은 7번이었습니다. 그것도 월별로 고르게 분포돼 있었습니다. 서울시는 이를 바탕으로 올해도 7번 정도 발령될 것으로 보고, 하루에 35억여 원씩, 예산 249억 원을 준비했던 겁니다. 하지만 1월 셋째 주에 1년치 예산이 절반 넘게 동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일부 공무원들은 "출구전략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수군거렸고, 담당 부서의 한 공무원은 저에게 되묻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결국 본격적인 봄철 황사가 들이닥치기 전, 서울시는 서둘러 '대중교통 무료 정책'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뉴스인사이트] '수업료 150억 원' 서울시의 미세먼지 수업
    '공짜 대중교통' 왜 실패했나?

    원인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사회적 합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경기도나 인천시와의 합의 없이 서울시만 대중교통 무료정책을 강행하다 보니 대기질 개선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 공방만 시끄럽게 벌어졌고 비용만 서울 시민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왔습니다. 서울시는 '대중교통 무료 정책' 중단을 선언하며 "서울시만의 노력으론 한계가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미세먼지 저감 노력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시민에게 제공되는 공짜 정책이다 보니 포퓰리즘이란 비판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임영욱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장은 "왜 자동차 회사 등 원인 제공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그 비용을 충당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습니다.

    기존 제도 정비도 미흡했습니다. 바깥공기만 나쁠까요? 현재 대중교통 내부 공기는 바깥공기보다 더 관리가 안 되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지하철은 미세먼지 농도가 200㎍/m³, 시내버스는 150㎍/m³만 안 넘으면 됩니다. 바깥공기였다면 모두 '매우 나쁨' 수준이지만요. 특히 초미세먼지는 대중교통에 관리기준 자체가 없습니다. 이런 제도 정비 없이 무작정 대중교통을 타라고 하니, 공짜라고 한들 시민들이 안심하고 탈 수 있었을까요.
    [뉴스인사이트] '수업료 150억 원' 서울시의 미세먼지 수업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150억 원은 시민의 인식을 바꾸고 대응이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투자 비용'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자율2부제 참여 독려에서, 시민인식 전환을 위한 투자로 대중교통 무료 정책의 취지 자체가 바뀌어버렸습니다. 적어도 이슈몰이 역할만큼은 톡톡히 했습니다.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는 날이면 각종 포털사이트 랭킹뉴스에 공짜 대중교통 논란 기사가 올랐고 누리꾼들은 댓글로 열띤 찬반 논쟁을 벌였으니까요. 미세먼지 농도도, 도로통행량도 큰 변화가 없었으니 박 시장의 말대로 우리는 150억 원을 들여 3일짜리 미세먼지 수업을 받은 셈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서울시는 대중교통 무료정책 중단을 두고, 정책의 심화이자 발전이라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예산 249억 원 중 105억 원을 그대로 남겨둔 채 돌연 중단했으면서도 그게 정책 실패나 후퇴, 폐기는 아니라는 겁니다. 또 동참하지 않은 다른 지자체 탓으로 돌리기도 합니다.

    서울시도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150억 원짜리 수업을 치렀으니 남는 것이 있어야 할 텐데요. 적어도 앞으로는 불필요한 정치공방에 휘둘리지 않도록 사회적 합의를 거친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겁니다. 언제까지 막대한 혈세를 들여 효과는 보지도 못하고, 비싼 수업만 계속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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