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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홍신영 기자

[뉴스인사이트] 성폭행에 자매 잇단 자살 "공권력의 참담한 실패"

[뉴스인사이트] 성폭행에 자매 잇단 자살 "공권력의 참담한 실패"
입력 2018-03-24 15:32 | 수정 2020-01-0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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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성폭행에 자매 잇단 자살 "공권력의 참담한 실패"
    "우리 애들 다 잊은 줄 알았는데…고마워요. 이렇게 다시 떠올려줘서…"

    만나자는 연락도 조심스러웠습니다. '미투'를 취재하면서 마음에 빚처럼 남았던 한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제대로 알려지지도, 조사되지 않았던 한 가족의 비극.

    몇 년 만에 또다시 유가족만 들쑤시는 일이 되지는 않을까 주저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먼저 용기를 내 주셨습니다. "우리 딸 둘의 원한 풀어야 돼요"…그렇게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 관련 뉴스 보기 ["단역 자매 자살 사건 재조사해달라" 국민청원 봇물]



    어머니의 한 맺힌 기억

    어머니는 2014년 7월이 어제 일처럼 또렷합니다.

    "공부만 해서 세상물정을 몰랐던 큰딸이 작은딸 권유로 단역배우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했어요. 둘이 같이한다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했지. 드라마 현장 몇 군데를 갔다 왔었고…"

    이상한 일이 일어난 건 한 달 정도 지난 무렵입니다. 큰딸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고,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 며칠 만에 초췌한 얼굴로 돌아오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불안증세가 심해져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돼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됐고, 이 과정에서 가족들은 딸이 3개월간 끔찍한 성폭력에 시달린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단역배우들을 관리하는 현장 보조반장이 추행을 시작하더니 성폭행을 했고, 그걸 다른 반장들한테 이야기를 해서 그 사람들까지 딸을 쉽게 보고 추행하고 성폭행 한 거예요. 얘는 이 과정을 겪으면서 정신이 나가서 완전히 자포자기하고."
    [뉴스인사이트] 성폭행에 자매 잇단 자살 "공권력의 참담한 실패"
    지옥 같았던 촬영현장…'쉬운 여자'로 불렸던 큰딸

    곱게 키워 대학원까지 보낸 딸은 촬영현장에서 '쉬운 여자'라는 뜻의 일본어 은어로 불렸습니다. 딸의 일기장과 수첩에 등장한 가해자만 12명. 한 명, 한 명에게 당한 피해 내용을 기록하는 과정이 가족에게는 얼마나 참혹한 시간이었을까요.

    그러나 비극의 서막은 그때부터입니다. 가족의 고소로 시작된 경찰 조사는 딸에게 또 한 번 흉기가 됐습니다.

    "종이판 하나로 가려놓은 책상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앉아 있어요. 말소리가 다 들리고. 담배 태운다고 왔다갔다하고…키득키득 거리고…딸이 조사받다 쓰러지기도 하고 경찰서 앞 8차선 도로에 내달렸다 난리가 난 적도 있어요. 정말 그때 생각하면 기가 막히지…기가 막혀요. 경찰요? 어땠는지 아세요? 자기들끼리 '12명 상대한 아가씨가 저 아가씨야?' 하면서 수군거려요. 형사는 종이하고 자를 주면서 가해자들 성기를 그려보래요. 피해당했으면 알 거 아니냐고 내가 죽으려고 했을 때도 그자는 안 버리고 쥐고 있었어요. 너무 원통해서…"
    [뉴스인사이트] 성폭행에 자매 잇단 자살 "공권력의 참담한 실패"
    흉기로 변한 경찰조사…두 딸의 극단적 선택

    1년 반이 넘게 경찰서를 오갔던 딸은 결국 고소를 취하하고 2009년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하던 둘째 딸은 6일 만에 같은 방식으로 언니를 따라갔습니다. 남편은 지병이 악화돼 세상을 떠났습니다. 단란했던 4인 가족에서 어머니만 덩그러니 남겨진 겁니다.

    "엄마니까…우리 원한 좀 풀어주고 와. 우리 20년 후에 만나. 그게 딸의 마지막 말이었어요."

    그 말을 붙잡고 버틴 지난 세월은 참 지난했습니다. 민사 소송에서 소멸시효를 이유로 패소했고, 1인 시위를 하다 가해자들에게 명예훼손 고소를 당했습니다.

    지난해 말 법원에서 어머니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공권력이 범한 참담한 실패와 이로 인해 가중됐을 모녀의 고통을 보면서 깊은 좌절과 슬픔을 금할 수 없다"고 사과한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됐습니다.

    [뉴스인사이트] 성폭행에 자매 잇단 자살 "공권력의 참담한 실패"
    가해자들, 뻔뻔하고 치가 떨리는 변명

    가해자들과 당시 사건을 조사했던 경찰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가해자들을 접촉하는 건 생각보다 수월했습니다. 대부분 여전히 드라마와 영화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으니까요. 결혼을 하고…아이를 낳고…어머니의 삶은 변한 게 없었는데 가해자들의 삶은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몇몇은 업계에서 제법 잘 나간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가해자들은 "젊은 남녀가 좋아서 잠깐 만났을 때 했던 걸 범죄라고 하면 어쩌냐", "나는 교제했던 사이고 일부는 진짜 가해자다"라며 하나같이 부인하고 성가셔했습니다.

    사건을 처음 맡았던 경찰은 기억조차 희미하다고 했습니다. 피해자는 15분 만난 게 다라며 발뺌하는 그를…어머니는 8년 동안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뉴스인사이트] 성폭행에 자매 잇단 자살 "공권력의 참담한 실패"
    성폭력, 2차 피해, 공권력의 실패

    사건을 취재하면서 마주한 세 가지는 '위계에 의한 무자비한 성폭력' '2차 피해' '공권력의 실패'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미투'의 본질…바로 이 세 가지 아닐까요? 14년 전 벌어진 성폭행, 8년 전 죽음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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