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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트] 보성군 김치통 사건의 전말

정동훈 기자 기사입력 2018-03-28 08:42 최종수정 2018-03-28 10:01
6.13 지방선거 군수 김치통 뇌물수수 선거법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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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통 공무원

지난해 12월 전남 보성군수가 관내 업자들로부터 2억 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군수 비리가 드러난 건, 군수에게 전달할 현금을 김치통에 담아 자신의 집 마당에 보관해오던 군청 한 공무원의 폭로 덕분이었습니다. 이른바 '김치통 사건'이라 불린 이 일은 세간에 화제가 되는가 싶었지만, 금세 잊혀졌습니다.

인구가 채 5만 명도 안 되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비리 사건에 국민들의 관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오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런저런 비리로 낙마한 단체장들 사례를 취재하던 중 김치통 사건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이 공무원은 현금을 왜 하필 자신의 집 마당에 묻어뒀을까…. 전남 보성군을 직접 찾아가 수소문 끝에 이 공무원을 만났습니다.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라며 말을 극도로 아끼던 A씨는 어렵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는 군수와의 악연이 2016년 9월부터 시작됐다고 했습니다. "(업자들이) 계약하고 나면 보통 인사하러 와요. 제가 (현금을) 모아놨다가 전달해 드리는…." 당시 군청에서 각종 인허가 업무를 담당했던 그는 업자들로부터 받은 현금을 보관하고 있다가 수시로 군수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던 겁니다. 1년 동안 받은 돈은 모두 2억 2천5백만 원. 이 중 1억 5천만 원을 군수에게 전달하고, 나머지 6천5백만 원을 김치통에 담아 집 마당에 묻고 1천만 원은 다락방에 보관했다고 합니다.

'왜 집에 보관했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그럼 다른 데 어디다 보관합니까?" 동네가 워낙 좁아 금방 소문이 돌기 때문에 믿을만한 곳이 '집'밖에 없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심적 부담을 견디다 못해 결국 비리를 폭로하게 됐다는 그는 무척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조직에서 '배신자'가 됐다는 겁니다. "제가 공황장애까지 겪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검찰은 이 공무원의 전임자도 2014년부터 수차례 업자들로부터 받은 뇌물을 군수에게 전달한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뒷돈을 챙긴 이유는 '차기 선거자금 마련'. 부하 공무원을 동원한 군수의 뇌물 비리는 2014년 지방선거로 당선 직후부터 시작됐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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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와 공무원의 결탁

보성군 공무원은 왜 조직 내에서 '배신자'가 되고 말았을까? 군청 다른 직원들은 군수에게 돈을 건넨 해당 공무원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가 승진이 보장된 자리 아닙니까", "무슨 대가가 있으니까 그런 일을 한 거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그 자리'를 보장 받은 만큼, 당연히 군수에게 '보답'을 하는 게 의리이자 도리가 아니냐고 반문하는 공무원도 있었습니다. 군수와 공무원 간 끈끈한 사적 거래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안시영 보성군청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관행이 굳어져 비리에 무감각해 진 것 아니겠느냐. 승진에 목매는 공무원과 그들의 인사권을 틀어쥔 군수 간의 비리 공모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군수와 공무원 간 이런 뒷거래는 사실상 선거 운동 단계부터 은밀하게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취재 중에 만난 전남의 한 군청 퇴직 공무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무원들이 선거운동 합니다. 실질적으로 암암리에 진급을 하려고, 줄을 서는 거 아닙니까. (군수가) 안 도와준 사람들은 한직으로 보내버리고…" 선거에서 수백, 수천 표가 당락을 가를 수 있는 소규모 지역일수록, 군청 공무원의 '파워'는 무시할 수 없는 상황. 그는 적지 않은 공무원들이 선거 때마다 동문회, 친지, 각종 계모임 자리에 유력 군수 후보를 초청해 인사를 시킨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각종 인허가나 관급 공사 이권을 챙기려는 토착 업체는 군수와 공무원들에게 든든한 자금줄 역할을 맡습니다. 군수와 공무원 여기에 토착업체, 이들이 한통속이 되고 마는 건 시간문제였습니다.
▶ 관련 뉴스 보기 [뽑아 놓으면 구속 "군수 무덤"…선거법 위반·뇌물' 혐의]



군수 무덤…왜?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됐다가 선거법 위반이나 뇌물 등의 혐의로 입건된 단체장은 260명 가운데, 35명 13%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단체장이 비리에 연루돼 중도 낙마한 기초단체를 보면 청주시와 파주시를 빼곤 전부 인구 10만 명 이하의 군 단위, 또는 20만 명 이하의 소규모 지자체였습니다. 소규모 지역 단체장들이 비리에 연루된 경우가 월등히 많다는 얘깁니다.

2년째 군수가 공석인 전남 해남군. 군수를 뽑아놓으면 인사 비리로 구속되고, 다시 뽑아놓으면 공사 비리로 구속되고, 이번 군수는 공무원 승진 점수를 조작했다가 구속됐습니다. 지역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해남 군정은 과장 군정이고, 계장 군정이 된 지 오래됐다"고 한탄했습니다. 경북 청도군은 2005년부터 해마다 군수가 비리로 낙마해 3년 연속 선거를 치르는 유례없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전북 임실군은 주민이 뽑은 역대 모든 군수가 형사처벌을 받는 또 다른 기록을 세우면서 '군수 무덤'이라는 오명을 얻었습니다.

소규모 지역 단체장들의 낙마가 유독 잦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숙경 함양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얽히고설킨 학연, 지연, 혈연이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건너가면 선배고, 건너가면 사촌이고, 지역이잖아요. 아주 오랫동안. 학연 지연 혈연이 엄청나다는 얘긴 거죠." 감시의 눈도 거의 없었습니다. 군의회가 있다고는 하지만, 지역민의 정치색이 분명한 전라도와 경상도 소규모 농촌 지역의 경우, 의회가 단체장과 같은 당 일색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단체장과 공무원, 업체 간의 유착에 대해 의회가 제대로 된 감시와 견제를 해 줄 거라는 기대를 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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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은?

경남 함양군은 4기 군수의 경우에는 나중에 무죄를 받긴 했지만, 역대 군수 4명이 줄줄이 구속돼 법정에 서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읍내 장터에서 만난 60대 아주머니는 이제 선거에 맛이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뽑아 놓으면 구속되고, 또 뽑아 놓으면 낙마하고…, 이젠 누구를 뽑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비리 군수 → 선거 무관심 → 검증 안 된 군수 당선 → 비리 군수…. 전문가들은 이런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선거관리위원회와 사정당국이 공무원들의 은밀한 선거운동 참여부터 근절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단체장과 공무원들을 감시하는 데 있어 언론이나 시민단체로는 역부족인데다, 지방의회마저 제 역할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이 주민들이 직접 단체장의 자질을 검증하고, 감시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소규모 농촌 지역일수록 생업을 이어가기 바쁜 노인층이 대부분이어서, 주민 참여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주민들이 제대로 된 지방정부의 파수꾼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남기헌/충청대 행정학 교수]
"지역주민들도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까 주말 의회를 연다든가 또는 야간의회를 열어서 '지방정부의 파수꾼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라는 자긍심을 갖게 해주는 참여제도가 강화돼야겠습니다."

지자체의 업무 전반에 관여하고 감시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뿐 아니라, 여건을 제도적으로 갖춰놔야 한다는 얘깁니다. 자고 일어나면, 줄줄이 쇠고랑을 차는 단체장들. 오는 6.4 지방선거에서만큼은 이런 적폐를 끝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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