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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오현석 기자

[뉴스인사이트] 잘못한 국회의원은 왜 ‘리콜’이 안되나?

[뉴스인사이트] 잘못한 국회의원은 왜 ‘리콜’이 안되나?
입력 2018-03-31 08:58 | 수정 2020-01-0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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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잘못한 국회의원은 왜 ‘리콜’이 안되나?
    지난 2004년 9월 12일 저녁, 경기도 용인의 한 골프장에서 당시 한나라당 초선의원이었던 김태환 전 의원의 경비원 폭행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언론 보도와 MBC 취재 영상을 보며 당시 상황을 복기해 봤습니다.

    징계할 수 없던 ‘골프장 폭행’ 국회의원

    골프를 마친 김 전 의원은 일행과 클럽하우스 귀빈실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술자리는 저녁 9시 30분까지 이어졌습니다. 클럽하우스 경비원 60대 강 모 씨는 “술자리가 언제 끝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살짝 문틈으로 방 안을 들여다봤는데, 그만 김 전 의원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김 전 의원은 “왜 들여다보느냐”고 고함을 질렀고, 강 씨는 황급히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사건은 김 전 의원이 귀빈실을 나설 때 벌어졌습니다. 문을 잠그러 올라온 강 씨를 알아본 김 전 의원은 비닐 포장된 건어물로 강 씨의 얼굴을 때렸습니다. 강 씨는 격하게 항의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천한 일을 해도 지도층 인사가 사람을 때려도 되느냐.” 골프장 직원들이 달려들어 말렸습니다. 하지만 차를 타려던 김 의원은 다시 귀빈실로 올라가 강 씨의 얼굴을 때리고 발로 배를 걷어찼습니다.

    ‘골프장 폭행 사건’이 알려진 뒤 비난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김 전 의원은 국회 윤리특위에 회부되었습니다. 문제는 단순 폭행 사건은 당시 국회법상 징계 사유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김 전 의원에게 내려진 조치는 “국회의원윤리강령 위반 사실을 본인에게 통고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당시 민주당 소속 한 윤리특위 위원은 “법적인 문제보다 국민감정이 중요하지만, 현행법상 징계는 안 되더라”라며 아쉬워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정봉주 전 의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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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잘못한 국회의원은 왜 ‘리콜’이 안되나?
    징계 가능해진 뒤엔 ‘제 식구 감싸기’

    국회법 징계 관련 조항은 2010년 개정됐습니다. 윤리강령만 위반한 국회의원도 경고나 사과, 출석정지, 제명 등 징계를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나운서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강용석 전 의원이 바로 ‘윤리강령 위반’으로 징계 대상이 된 경우입니다. 강 전 의원에 대한 징계안이 본회의에 상정된 2011년 8월 31일, 박희태 당시 국회의장은 이례적으로 ‘비공개 심의’를 선언했습니다. 여성단체 회원 등 참관인들을 모두 내보낸 뒤 진행된 표결에서는 찬성 111표, 반대 134표로 제명안이 부결됐습니다. 동료 국회의원들의 ‘제 식구 감싸기’ 문턱을 넘지 못한 겁니다.

    강 전 의원 다음으로 제명안이 상정된 국회의원은 ‘성폭행 논란’에 휩싸였던 심학봉 전 의원이었습니다. 심 전 의원은 2015년 10월 12일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고, 국회 본회의는 제명안을 의결하는 대신 사퇴서를 먼저 의결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아직까지 국회에서 가결된 국회의원 제명안은 고(故)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제명이 유일합니다. 김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이던 1979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에 대해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가, 제명안이 ‘날치기 통과’로 가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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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안으로 각광받는 국민소환제…찬성률 91%

    대통령 개헌안 45조 2항은 ‘국민소환제’에 대한 규정입니다. “국민은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 있다. 소환의 요건과 절차 등 구체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주권자인 국민이 국회의원에게 권력을 위임했으니, 그 위임을 국민이 직접 철회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게 국민소환제의 기본 취지입니다.

    국민들의 여론은 매우 긍정적입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3월 16일과 17일, 전국 성인남녀 1041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 결과에서 “국회의원 소환제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91%에 달했습니다. 국민 여론이 워낙 적극적이니 대놓고 반대하는 정당도 없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부터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후보까지 한목소리로 ‘국민소환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국회를 취재하다보면 우려하는 목소리를 적잖이 들을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대립이 심한 나라에서 ‘국민소환제’가 도입되면, 소환 사태가 반복해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지난 3월 2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환제를 하면 반대 당이나 세력, 후보자가 걸핏하면 소환하자고 해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다른 의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종종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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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소환제가 도입되면 온 나라가 시끄러울까?

    하지만 국민에 의한 소환제도는 이미 도입돼 있습니다. 광역·기초 단체장과 지방의원에 대한 ‘주민소환제’가 도입된 게 2007년 5월. 전국적으로 10년 넘게 시행되고 있습니다.

    주민소환은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시작됩니다. 시도지사는 전체 유권자의 10%, 기초 단체장은 15%, 지방 의원은 20%가 서명해야 소환 투표가 개시됩니다. 만만치 않은 숫자입니다.

    어렵게 서명인 숫자를 채워 투표를 개시해도 난관은 남습니다. 투표율이 33.3%를 넘어야 개표할 수 있습니다. 지난 11년간 모두 다섯 차례 주민소환 투표를 했는데 투표율을 달성한 것은 2007년 9월 하남시에서 이뤄진 ‘화장장 건립 추진’ 관련 주민소환투표 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소환대상 4명(시장과 시의원 3명) 중 시의원 2명에 대해서만 투표함을 개봉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국민소환제 도입이 실제 국회의원을 끌어내리는 목적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국회의원이 먼저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하는 게 진짜 목적이라는 겁니다. 헌법을 개정할 때 대통령 권력 분산만큼 국회의원의 권한 분산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국회에서의 개헌 논의를 보다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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