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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전예지 기자

[뉴스인사이트] 학살의 현장, 은비녀 60여 개가 발견됐다.

[뉴스인사이트] 학살의 현장, 은비녀 60여 개가 발견됐다.
입력 2018-03-31 14:54 | 수정 2020-01-0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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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학살의 현장, 은비녀 60여 개가 발견됐다.
    “땅 속에서의 67년”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어머니 등은 따뜻했습니다.
    어머니 등에 포대로 감싸져 업혀가던 그 날을 기억합니다.
    지금은 사람 발길이 끊긴 폐금광입구까지 굽이굽이 올라가던 그 길을 잊을 수 없습니다.

    몇 달 전, 북한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간 아버지가 숨지고 어머니는 눈물로 저를 키우셨습니다. 동네 사람들 전부 모이라는 경찰의 말에 어머니는 저를 업고 나갔습니다. 매서운 날씨 탓에 엉엉 울어대는 제 손에 구슬 하나를 쥐여주고요.
    그렇게 나선 길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경찰은 저와 어머니를, 우리 옆집에 사는 순이네 이모와 건너편 집에 사는 영이 누나를, 동네 사람들을 창고에 가둬놓은 뒤 이튿날 폐금광 입구로 올라갔습니다.

    폐금광입구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이웃들은 먼 발치서 쏘는 총소리에 하나둘 쓰러져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쓰러진 이웃들과 함께 흙더미에 묻혔습니다.

    그렇게, 땅속에서 67년이 지났습니다."

    ▶ 관련 뉴스 보기 [67년 만에 햇빛 본 유해… 95%가 여성 ·어린이]

    [뉴스인사이트] 학살의 현장, 은비녀 60여 개가 발견됐다.
    아산 설화산, 참혹한 학살의 현장

    목격자의 증언으로 재구성한 1살짜리 아기의 67년 전 이야기입니다.

    67년 전, 유난히 추웠던 1951년 1월.
    충남 아산의 설화산에는 총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협조한 부역자의 가족이라며,
    경찰이 동 네주민 200명 가까이를 학살한 겁니다.
    살아남은 유가족은 빨갱이 가족이라는 시선 때문에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땅속에 버려진 가족의 유해조차 찾아달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난해 11월, 시민단체로 이뤄진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아산시의 도움을 받아 설화산에 묻힌 민간인 유해를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폐금광의 위치조차 추적할 수 없어 설화산 곳곳을 뒤진 끝에 유해를 발견했고,
    지난달(2월)부터 본격적인 유해발굴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모습을 드러낸 진실은 구전으로 남겨진 기억보다 더욱 참혹했습니다.
    가로 4미터, 세로 5미터, 깊이 4미터 정도의 구덩이 안에서 발견된 유해는 약 170구.
    [뉴스인사이트] 학살의 현장, 은비녀 60여 개가 발견됐다.
    켜켜이 쌓인 유해들, 95%가 아이와 여성

    67년만 에 햇빛을 본 유해들은 그 구덩이 안에 뒤섞여 켜켜이 쌓인 상태였습니다.
    수십 명이 먼저 총살되고 다시 몇십 명이 몰려와 총살되고.. 그렇게 시신이 퇴적처럼 쌓인 겁니다.
    총살당한 시신들을 아무렇게나 던져놓아, 여기저기 깨지고 부서져 있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건, 발견된 유해 170구 정도의 95%가 아이와 여성이었다는 겁니다.
    20년 가까이 유해발굴을 해온 박선주 유해발굴단장은 이렇게 많은 아이와 여성이 발견된 것은 처음 본다며, 발견된 유해 중에는 돌을 넘기지 못한 아기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습니다.

    젊은 부녀자들이 썼을 것으로 보이는 은비녀만 60여 개. 아기들이 가지고 놀던 구슬 같은 장난감도 곳곳에서 발견됐습니다.

    유독 아이와 여성이 많이 발견된 이유에 대해 박 단장은, "남자들은 1차로 먼저 학살당해서 어딘가에 묻혔고, 이후 남은 가족들도 부역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2차로 살해해 묻은 것으로 보인다"며, "6~7살 난 아이의 유해가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의 유해 옆에서 발견될 때마다 전쟁의 비극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뉴스인사이트] 학살의 현장, 은비녀 60여 개가 발견됐다.
    성인 남성의 신발과, 여성의 골반뼈와 쌍가락지, 아이의 신발이 한 곳에 발견돼
    일가족이 한번에 살해됐다는 점도 추측해 볼 수 있었습니다.

    유해발굴단은 유해를 아산시 공설봉안당으로 옮겨 세부적인 감식 작업을 한 뒤,
    5월쯤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국가 공권력 앞에서 하릴없이 쓰러져 차가운 땅에 묻힌 민간인은
    설화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산 끊겨 중단된 발굴작업

    2005년 정부는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와 유족의 한을 풀기 위해
    '진실화해위원회'를 설립했습니다. 당시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한 결과, 전국 168곳에서 민간인 학살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고 그 가운데 13개 지역을 발굴해 1600여 구의 유해를
    수습했습니다.

    하지만, 한시적인 법 때문에 2010년 이후 정부 예산은 끊겼고 발굴작업은 중단됐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관련 개정법안이 매년 발의되고 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차원의 발굴 작업이 없는 상황에서 2014년부터 시민단체가 뜻있는 시민들의 후원과 지자체 예산을 조달 받아 일부 유해작업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현재까지 150곳 정도의 민간인 학살지가 방치돼있습니다.
    [뉴스인사이트] 학살의 현장, 은비녀 60여 개가 발견됐다.
    학살된 민간인들, 그들에게는 언제 봄이 올까?

    차디찬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지만,
    전국 곳곳 이름 모를 산 밑 차가운 땅에는 학살된 민간인들이 묻혀있습니다.

    민주화가 됐다고 하지만, 과거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 처벌받은 군인이나 경찰은 거의 없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국가 공권력에 희생된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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