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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트] 다시 보는 펜스·김여정 회동, 기획부터 불발까지

임명현 기자 기사입력 2018-04-03 09:22 최종수정 2018-04-0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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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 통화의 미스터리
2월 2일 금요일 밤 11시 30분,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화통화를 가졌습니다. 그날의 통화는 여러 가지로 평소와 다른 점이 많았습니다. 우선 청와대 측의 보도유예 요청이 없었습니다. 통상 한미 정상 통화가 잡히면 출입기자들에게 사전에 고지하고 보도유예를 요청합니다. 그러나 이때는 그런 절차 없이, 다음날 오전 7시가 되어서야 서면브리핑 형식으로 기자들에게 공지됐습니다. 당시 청와대 측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랬다’는 이유를 들었는데, 통상 한미 정상의 통화가 우리 시간으로 밤 10시쯤 이뤄진다는 점에서 설득력 높은 설명은 아니었습니다.
청와대는 통화 영상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통화의 경우 보통 전속팀이 촬영한 영상이 제공되는데, 이날의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통화 때 배석했던 인물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뉴스에는 어쩔 수 없이 자료화면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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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정보당국자가 배석한 이유
한 달 가량 지나 당시 배석자의 윤곽이 드러났습니다. 정보당국의 고위관계자로 전해진 겁니다. 영상이 제공되지 않았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하는 대목입니다. 앞서 이 고위 정보당국자는 1월 말 미국을 극비 방문해 미국의 정보수장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종합해 보면 이 고위 정보당국자가 1월 말 미국에서 사전 조율을 마쳤고, 2월 2일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에서 결정된 ‘뭔가’가 있었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뭔가’의 정체는,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로 전모가 밝혀진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특사의 비공개 회동으로 좁혀진다고 추정해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펜스 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 직전인 2월 8일 방한했습니다. 그의 방한을 앞두고 서울과 워싱턴 간에 오간 외교 전문의 양은 방대했다고 합니다. 펜스 부통령이 서울에 와서 밝힐 메시지, 일정 및 동선 등을 놓고 한미 외교당국 간에 조율할 문제가 많았다는 의미입니다. 일부 당국자들은 이런 긴밀한 조율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북 강경 메시지가 누그러질 것 같지 않아 고민이라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정보당국 수장 간의 물밑 채널에서는 ‘펜스․김여정 회동’이라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을 합의에 다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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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할 수 없었던 ‘펜스․김여정 회동’
실제로 펜스 부통령의 방한 당시 ‘김여정 특사와의 비밀 회동이 합의된 상태였다’라는 사실은 당시의 시점에선 도저히 상상 불가였습니다. 그는 문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매우 단호한 어조로 “미국은 최대한의 압박을 계속할 것이며 이런 결의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기대했던 메시지는 아닐 것으로 보였습니다.
동계올림픽 개회식이었던 9일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그날 저는 평창 현지에서 취재했는데,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 30분경부터 리셉션장 입구에서 각국 정상급 외빈을 일일이 맞이했습니다. 시나리오를 보면 이날 펜스 부통령은 7번째, 아베 총리는 9번째 등장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펜스와 아베, 두 사람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리셉션이 시작한 6시 이후에도 이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리셉션장의 모든 테이블이 참석자들로 꽉 들어차 있었는데, 유독 이들의 빈자리가 도드라진 헤드테이블은 썰렁하다 못해 괴이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정말 펜스가 안 왔나’ 눈을 비비고 헤드테이블을 주시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후 펜스 부통령은 6시 30분경 아베 총리와 함께 나타났습니다. 당시의 취재수첩을 들춰보니 펜스 부통령은 헤드테이블의 각국 정상은 물론이고 옆 테이블의 외빈들과도 일일이 악수했습니다. 김정숙 여사와도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나 김영남 상임위원장과는 악수하지 않고 5분만에 행사장을 떠났습니다. 당시 김 위원장은 별다른 표정이 없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기도 했습니다. 펜스 부통령은 올림픽 개회식에서도 끝내 북한 인사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김여정․김영남은 펜스 부통령과의 면담을 취소하겠다는 입장을 우리 측에 밝힙니다. 이 사실을 미리 통보하고 청와대를 방문했는지, 아니면 청와대에 방문해서 밝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죠. 문 대통령은 매우 아쉬워하며 만류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임종석 비서실장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 대표단의 판단을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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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위복'
세기의 극비 회동을 앞두고 펜스 부통령은 왜 이렇게 했던 것일까요? 그리고 북한의 김여정․김영남은 왜 굳이 그 회동을 취소했을까요? 펜스 부통령이 적대적이었기 때문이라면, 그들이 먼저 다가갈 수도 있었지 않을까요? 기선 제압을 위한 사전 신경전이 지나쳤던 나머지 중요한 기회를 엎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북한 대표단의 귀환 이후 문 대통령은 며칠 동안 이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 무렵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심경이 무거워보였다’고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날의 극비 회동이 성사되지 않은 것은 지금 보면 또다른 기회로 작용한 것처럼 평가될 수도 있겠습니다. 북․미 양쪽 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위급 비밀 회동을 가졌다가, 원만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어그러졌다면 사안을 풀기가 더 어려워졌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만난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도 “당시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만나서) 얼굴 붉히고 헤어졌더라면, 오히려 이후 북미정상회담까지 합의하기가 더 어려워졌을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야말로 전화위복이 된 셈이죠.
두 달이 지났고 이제 우리는 4․27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end of the May’에 열릴 것으로 추정되는 북미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이 회담이 예정대로 열려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아울러, 장밋빛 미래를 예고하는 ‘세기의 회담’인 것 같지만 이것이 실패한다면 전혀 다른 미래가 도래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경우에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 아니라 전복위화(轉福爲禍)라 할 수 있겠죠.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역사 속을 뛰어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붙잡은’ 문 대통령의 행보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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