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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자이미지 정준희 기자

[뉴스인사이트] 공정성이라는 갈망, 학종 그리고 대입개편

[뉴스인사이트] 공정성이라는 갈망, 학종 그리고 대입개편
입력 2018-04-23 10:10 | 수정 2020-01-0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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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공정성이라는 갈망, 학종 그리고 대입개편
    “입시지도를 20년 넘게 해 왔지만 학생부종합전형은 예측을 못 하겠어요. 예를 들어 작년에 똑같은 고등학교에서 똑같은 학생이 똑같은 스펙을 가졌는데도 올해는 합격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고... 그러니까 붙은 학생도, 떨어진 학생도 이유를 모르는 거죠.”
    - 현직 고교 교사

    “제가 일을 그만두면서까지 1년 동안 입시를 팠어요. 왜냐 학종은 엄마의 정보 싸움이거든요. 느낀 게 뭐냐면 복볼복이라는 거예요. 야근하면서 밤 11까지 성의 있게 생활기록부 작성해 주시는 선생님을 만나면 대학에 갈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대부분 교사들은 그렇지가 않아요. 일부 상위권 아이들을 빼면 버리는 카드가 돼요. “
    - 고교생 학부모


    두 달 전, 교육부가 대입제도 개선을 위해 마련한 정책토론 자리에서 터져 나온 교육 현장의 목소리입니다. 논란의 주제는 흔히 ‘학종’이라고 줄여 부르는 학생부종합전형인데요, 내신 성적은 물론 교내 수상과 동아리활동, 독서활동과 봉사활동 등 다양한 항목이 적히는 고교 학교생활기록부를 중심으로 지원자를 평가해 합격 여부를 가리는 대입 제도입니다. 서울대는 신입생의 80% 정도를 학종으로 뽑고 있고, 서울소재 주요 15개 대학으로 보면 절반 정도가 학종선발입니다. 명실 공히 현 대입제도의 핵심이죠.

    학종은 과거 학력고사나 수능처럼 한날한시의 시험점수로 학생들을 줄 세우는 게 아니라, 개인의 다양한 자질과 가능성을 다면적으로 평가해 합격자를 선발하겠다는 뜻에서 지난 2014년 도입됐습니다. 더불어 학교생활을 평가의 핵심에 둠으로써, 무분별한 사교육을 막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의도도 있습니다. 교육적인 취지도 좋고 일부 성과도 있어 지지하는 의견도 적지 않지만, 학종이 최근 뜨거운 논란에 휩싸인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 관련 뉴스 보기 [2022년 대입 개편안 공개…학종 축소, 수시·정시 통합]

    [뉴스인사이트] 공정성이라는 갈망, 학종 그리고 대입개편
    바람직하지만 불공정하다? 정성평가의 함정

    대학들이 생활기록부에서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교과 영역부터 따져볼까요? 먼저 내신인데요,예전 고등학교의 내신이란 말 그대로 중간, 기말고사 성적이었지만 요즘은 좀 복잡합니다. 내신에 시험 뿐 아니라 ‘수행평가’가 반영되기 때문인데요,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국어, 영어, 수학 같은 주요 과목의 경우 많게는 40% 가까이 포함됩니다. 평가 방식도 발표에 토론, 팀 과제에 지필고사까지 다양합니다. 여기에 각 과목의 수업태도와 성취도를 담당 선생님이 서술하는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 항목도 있습니다. 비교적 객관적이라는 생활기록부의 교과 영역에도 이미 주관적 정성평가의 요소가 꽤 포함돼 있는 겁니다.

    이 밖에 자율 활동과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독서활동 같은 생활기록부의 비교과 영역은 객관적인 평가가 애초부터 어렵습니다. 무슨 학교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그 활동을 교사가 어느 정도로 평가해 어떻게 기록했는지, 그리고 그 내용을 보는 각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은 어떤 기준에서 평가할지 모든 것이 사실상 ‘깜깜이’ 상태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여러 대입 전문가들조차 같은 학생의 생활기록부를 두고도 평가가 엇갈린다고 털어놨습니다. 결국 지원자의 고교 생활 3년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겠다는 학종의 의도는 바람직하지만 공정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분석할 때 입시 전문가 7명 정도가 한 학생의 생활기록부를 봐요. 우리끼리도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실적은 긍정적이지 않느냐’, ‘아니다 그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 오히려 마이너스다’ 식인 거죠. 과연 정성평가로 이걸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학생이나 학부모가 납득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는 거죠”
    - 입시분석업체 대표

    “어떤 고등학교는 보면 정말 답답할 정도로, 평가하기가 힘들 정도로 생활기록부가 부실하거든요. 그냥 내용도 다 똑같고. 그건 사실 학생의 잘못은 아니에요. 자율형사립고나 특목고 쪽에서 학생들을 좀 더 잘 표현해 준다고나 할까. 학교 종류에 따라서 또 선생님에 따라서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이건 불공정한 게임이 아닌가 싶습니다.”
    - 전직 대학 입학사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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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을 먹고 자라는 사교육

    대입제도가 복잡하고 불명확할 때, 정보가 부족해서 불안할 때. 학생과 학부모가 의지하게 되는건 ‘맞춤형 서비스’를 약속하는 사교육입니다. 자기소개서와 생활기록부 관리, 면접 예상 질문 적중을 내세운 업체들은 수백, 수천만 원의 고액 컨설팅 비를 받으면서 성업 중입니다.

    “애들이 책을 읽을 시간이 어디 있어요. 독서록 같은 경우는 1권당 저희들이 판매하는 게 7만 원. (대학 입학사정관이) 면접 볼 때도 그 책의 내용을 일일이 다 체크 할 수 없기 때문에 걸러낼 수 없다고 생각이 되고요. 생활기록부 내용을 보완 하고 싶을 때 어머님이 (학교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말을 해야 될지도 시나리오를 만들어주게 됩니다. 제가 컨설팅해서 올해 입시에도 SKY 대학에 간 합격생들이 학교별로 다 있습니다.”
    - 대치동 컨설팅업체 대표


    불공정한 학교, 상처받는 아이들

    학생부종합전형이라는 제도의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하는 건 그 운영입니다. 바로 일부 고등학교들의 행태인데요, 명문대 진학실적을 위해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만 내신 성적이나 교내 수상에서 특혜를 주고,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박탈감을 안기고 있는 것이죠. 이른바 ‘학생부 몰아주기’입니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도입된 학종이, 오히려 학교 현장에서 비교육적 모습으로 변질돼 많은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 취재를 하며 가장 마음이 아팠던 대목이었습니다.

    “수행평가를 보는데 학교의 케어를 받는 학생이 어느 날 시험에서 1개를 틀린 거예요. 평소 채점 기준은 1개 틀리면 3점 감점 이랬는데 갑자기 그 수행평가만 평가 기준이 1개까지 만점으로 바뀐 경우가 있었어요. 다들 말도 안 된다 했지만, 그 친구는 결국 OO대 의대 갔어요." - 17학번 대학생

    “저는 성적이 뒤늦게 오른 케이스였는데, 아무리 수업을 열심히 들어도 기존에 공부 잘했던 학생들만 생활기록부를 워낙 길게 써주고 좋게 써주는 거죠.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도 내신등급 좋은 애들만 써주고. (성적이) 밑에 있는 친구들도 생활기록부에 아무것도 없으면 대학가기 힘들잖아요. 써달라고 해도 안 써주시고 저희 학교 선생님은 정말 심했어요.
    - 재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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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입제도개편, 책임의 무게

    정부는 현재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치르게 될 2022학년도 대입제도개편안을 오는 8월까지 확정하기로 하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생부종합전형을 비롯해 대입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요즘, 이 개편 방향에 대한 관심 역시 어느 때보다 뜨겁습니다. 하지만 교육부의 태도는 국가교육정책의 주무 부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실망스럽습니다.

    지난 11일 교육부가 공개한 소위 ‘열린 안’은,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에서 다시 남은 4개월여 동안 의견 수렴을 해서 결정해주면 그에 따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해 8월, 수능 절대평가 확대를 추진하려다 반대 여론에 백기를 들고 올해로 대입 개편을 미룬 지 무려 여덟 달이 지났는데 대체 그동안 뭘 했다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육부의 이런 떠넘기기식 발표로, 구체적 개편시안이 나온 뒤 수정과 보완이 이뤄지길 기대했던 중3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수시와 정시가 통합될지, 학종과 수능 전형의 선발 비율은 어떻게 될지, 수능 절대 평가는 어떻게 되는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다시 넉 달을 보내며 고입과 대입을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으니까요. 정책 방향도 여론에 따라 요동치게 돼 극심한 혼란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뉴스인사이트] 공정성이라는 갈망, 학종 그리고 대입개편
    공정성에 대한 갈망

    취재를 하는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은 사실은, 모두가 원하는 건 결국 납득할 수 있는 공정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교육 현장의 각 주체들은 “내게 유리한 것이 가장 공정하다.”는 이기심도 있지만, 대다수는 “내게 불리하더라도 납득할 수 있으면 인정한다.”는 합리성 역시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지난해 말, 대입 개편안을 확정할 국가교육회의 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새 대입제도는 공정하고 단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종교적 열정으로 대학진학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에서, 대입의 공정함과 단순함이란 누구에게나 절실한 가치일 것입니다.

    어떤 제도를 내놔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대입의 민감함 앞에 고심을 거듭하게 되는 정부의 입장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편안이 문제가 있다면 비판을 두려워할게 아니라 철저히 개선해 나가면 될 일입니다. 지금 교육 현장이 무엇보다 교육부에 바라는 건 여론 수렴이라는 방패막이 뒤에 숨는 게 아니라, 분명하게 결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자세란 걸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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