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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트] 협상의 달인, GM

김재경 기사입력 2018-04-26 15:28 최종수정 2018-04-26 21:50
한국GM 노사합의 법정관리 산업은행 GM
한국GM, 노사합의, 법정관리, 산업은행, GM
다음은 어느 기업의 재무 상태입니다.

- 영업적자 8천5백억 원.
- 최근 4년간 누적적자 2조 1천억 원.
- 자기자본 마이너스 1조 1천억 원 (자본잠식 상태)

여러분은 이 기업에 투자를 하시겠습니까. 참고로 이 기업에 대한 감사보고서는 '의견 거절'이 나왔습니다. '의견 거절'은 보통 상장폐지로 이어집니다. 이 회사의 주식을 매수한 투자자는 투자금을 모두 날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당연히 투자할 가치가 전혀 없어 보이는 기업이죠.

이 기업은 바로 한국GM입니다. 2조 원대 만성적자로 결국 군산공장을 폐쇄했고, 2천5백 명을 감원한 기업이죠.

한국GM이 우리 정부에게 투자를 요청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투자가치가 전혀 없는 기업이 바로 한국GM인데, 이 기업이 우리 정부에게 투자를 해달라고 한 겁니다. 투자금액은 대략 1조 원. 당연히 회계장부만을 판단한다면 우리 정부는 한국GM에 투자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한국GM은 우리 정부가 투자를 고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투자 수익을 전혀 거둘 수가 없는데도, 우리 정부는 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GM과 관련된 30만 명의 노동자들 때문입니다. 한국GM은 우리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법정관리로 갈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법정관리로 가면 최소 수만 명의 일자리가 사라집니다. 한국GM은 기업을 청산하고, 노동자들을 사실상 해고하겠다며 우리 정부에게 1조 원을 내라고 협박하고 있는 겁니다.

"도대체 한국GM을 살려야 하는 게 맞나?"

한국GM 사태를 취재하면서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하지만 생각하기도 전에 답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지켜야 한다고요. 우리 정부는 한국GM의 노동자들과 하청업체, 부품업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 방법이 투자가 됐든 뭐가 됐든 일자리를 지키는 것은 30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의 가정을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한국GM, 노사합의, 법정관리, 산업은행, GM
GM의 경영 악화는 누구탓?

어느 분들, 어느 언론사들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한국GM 노동조합이 너무 강경하고, 결국 잦은 파업 탓에 공장의 생산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라고요.

과연 그럴까요?

한국GM의 공장은 원래 부평1공장, 부평2공장, 창원공장, 군산공장 등으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부평1공장에선 소형 세단 아베오와 소형 SUV 트랙스를, 부평 2공장에서는 중형 세단 말리부와 SUV 캡티바를 생산했습니다. 창원공장에선 스파크, 다마스, 라보를 만들었고, 군산공장은 크루즈와 올란도가 양산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미국 GM본사의 글로벌 전략이 바뀐 겁니다. 공략대상을 미국 본토와 중국 시장으로 집중하고, 수익성이 나지 않는 지역은 과감히 정리하기로 글로벌 GM은 전략을 수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GM은 2013년 유럽시장에서 철수합니다. 유럽 수출용 크루즈와 올란도를 만들던 군산공장에선 일감이 급격히 줄어들었겠죠. 2013년 62만 대에 달했던 수출 물량은 지난해 39만 대로 곤두박질쳤습니다. 더구나 GM 본사는 한국GM에 새로운 수출 물량은 배정하지 않았고, 브랜드 철수 비용 2천9백억 원까지 부담하게 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10년 동안 글로벌 GM은 연구개발비 명목으로 한국GM에서 매년 약 6천억 원씩 받아갔습니다.

또 있습니다. 글로벌 GM은 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한국GM 지분을 사들이면서 복잡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글로벌 GM이 산업은행에서 지분을 사면 간단하게 정리되는 일인데, 글로벌GM이 자신들이 소유한 한국GM에 돈을 대출해주고 한국GM이 산은 지분을 사들이는 형식을 취한 겁니다. 대출금리가 연 5%. 이로써 글로벌 GM은 한국GM으로부터 연간 수백억 원의 이자를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글로벌 GM은 이런 식으로 한국GM에게서 투자금을 회수해갔습니다. 애초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가격이 22억 달러, 현재 환율로는 2조 3천억 원 정도인데요. 한국GM의 감사보고서를 분석해보면 사실상 투자금 22억 달러는 모두 회수한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시 말해 당장 내일 한국시장에서 철수해도 손해 볼 일은 아니라는 거겠죠. 더구나 부평공장 부지의 공시지가만 1조 원이 넘기 때문에 부지고 공장이고 이것저것 다 팔아치우면 큰 이익을 남길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우리 정부나 노동조합과 협상에 임하고 있는 GM의 강경한 태도가 이해가 갑니다. 유리한 건 자신들이라는 거죠. 결국 GM은 노동조합을 상대로 성과급을 못 주겠다고 하고, 상여금을 25% 깎겠다 하고, 자가운전보조금과 명절수당을 폐지시키겠다고 압박해 이를 모두 통과시켰습니다.



한국GM 직원들은 억울하다

사실 노동조합은 억울할 법합니다. 한국GM이 나락으로 떨어진 원인은 글로벌GM의 결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군산공장이 폐쇄된 이유 역시 군산공장 노동자들이 일을 게을리했거나 파업을 주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일감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GM이 일감을 배정하지 않았고, 일감이 없으니 생산성이 떨어졌고, 생산성이 떨어졌으니 공장은 폐쇄됐습니다. 일각에선 공장의 생산성이 떨어진 건 노조의 책임이 있다고 말하지만,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한국 GM 공장의 생산성이 떨어진 건 글로벌 GM의 결정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시겠죠.
한국GM, 노사합의, 법정관리, 산업은행, GM
회사를 정리하겠다는 노골적인 발언과 태도로 노사협의까지 타결시킨 GM에게 이제 협상 대상자는 한 곳만 남았습니다. 바로 우리 정부입니다. 이제 그들은 애초에 원했던 것, 그러니까 많게는 1조 원, 적게는 수천억 원의 금액을 우리 정부로부터 받아 내는 일만 남은 겁니다. 그걸 못 받아 내는 일이 발생했을 경우 GM은 얼마든지 한국에서 떠날 준비가 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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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노사합의, 법정관리, 산업은행, GM
결론은 결국 GM의 승리

우리 정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 GM 관련 기사들의 댓글을 보면 "한 푼도 지원해주면 안 된다", "GM은 이제 나가야 한다"는 내용의 댓글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GM을 내보낼 경우 수만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건, 그들의 가정이 파괴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더구나 정부로서도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한국 GM 사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이겠죠.

결국 우리 정부는 한국GM의 요구를 상당부분 받아들일 겁니다. 그들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줄 겁니다. 어느 정도의 명분과 모양새만 마련되면 미련 없이 협상안에 서명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미 대우자동차를 GM에 넘겼을 때부터 예견됐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GM은 5년이든 10년이든,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동안 연구개발비나 본사지원 명목으로 계속해서 한국GM의 수익을 챙겨갈 겁니다.

하지만 GM의 요구는 받더라도, GM에 국민 세금을 투입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반드시 배워야 할 점이 있습니다. 다음번 협상도 예정돼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자본금이 떨어지면 GM은 우리 정부에게 또 지원을 요구할 겁니다. 대선이나 총선,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말입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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