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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노경진 기자

[뉴스인사이트] 야근족 김 부장에게 52시간 근무제란?

[뉴스인사이트] 야근족 김 부장에게 52시간 근무제란?
입력 2018-05-15 07:11 | 수정 2020-01-0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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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야근족 김 부장에게 52시간 근무제란?
    오늘도 고민하는 당신, “칼퇴근 하다 칼 맞는 거 아냐?”

    김 부장은 법정퇴근시간인 오후 6시가 꽤 넘었는데도 왜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을까?
    창을 향하고 있는 저 컴퓨터 화면엔 어떤 내용이 떠있는지 도무지 알 수는 없지만 부장의 기척을 보면 퇴근시간을 잊을 정도로 바쁘게 일을 하는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부장 맞은편에 앉은 이 과장 역시 조용히 문서작업을 하는 것 같은데, 반면 5시 반쯤 보고서를 다 작성해 이 과장에게 제출한 박 대리는 6시 30분이 지나자 벽시계와 부장, 과장을 번갈아 바라보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헛기침을 하거나 가방을 들춰보는 등의 인기척을 내기 시작합니다.

    입사한 지 1년을 갓 넘긴 윤 모 사원은 이 모든 광경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머릿속은 더 복잡하죠. 요즘 유행한다는 ‘칼퇴근족’에 빙의해 가방을 챙기고 벌떡 일어나 ‘내일 뵙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를 당당히 외치며 단호하게 저 문을 나설지, 아니면 어른들에게 숱하게 들어왔던 ‘이런 게 사회생활’이란 구문을 경전말씀처럼 되뇌이며 김 부장이 퇴근할 때를 하염없이 기다릴지 오늘도 갈등의 기로에 섭니다.

    ‘칼퇴근’은 ‘칼’이란 수식어 자체에 정시퇴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듯한 제3자의 시선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반면 비정시 퇴근 즉 ‘야근 뒤 퇴근’에 대해 ‘칼퇴근’처럼 이미지가 명징하게 드러나도록 일컫는 단어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별도의 단어가 필요 없을 정도로 비정시 퇴근이 우리에게 일상적이란 반증일까요?

    [뉴스인사이트] 야근족 김 부장에게 52시간 근무제란?
    ‘칼퇴근’은 젊은 세대의 전유물?

    부하직원은 언젠가 내가 상사가 되면, 부장이 되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홀연히 정시퇴근을 하리라 맘먹곤 합니다. 부하직원들에게 ‘자 다들 이만 퇴근하지’란 말도 멋지게 날리고 말이죠. 그런데 최근 BC카드 빅데이터를 보면 재밌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칼퇴근은 직장상사에 속하는 50대보다 부하직원격인 30대가 더 많이 한다는 겁니다. 30대 직장인 중 저녁 6시부터 7시 사이에 교통카드 사용내역이 찍힌 이들이 43%에 달해 밤 8시부터 10시 사이에 찍힌 35% 보다 높았습니다. 반면 50대는 밤8시 이후 퇴근이 32.1%로 저녁 6시대 퇴근 25.6%보다 비중이 더 높았습니다. 40대는 그 중간 정도의 결과가 나왔네요.
    [뉴스인사이트] 야근족 김 부장에게 52시간 근무제란?
    BC카드의 빅데이터는 재밌는 내용을 또하나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찍 퇴근하는 이들에게 “어디 좋은데 놀러 가느냐”며 못마땅하게 보는 시선을 단번에 뒤집는 자료입니다. 이른바 ‘칼퇴족’의 퇴근 뒤 카드매출비중이 학원, 병원 등에서 야근족보다 훨씬 높게 집계된다는 거였습니다. 칼퇴족 이야말로 여유시간을 자기계발이나 건강에 투자한다는 거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는 업무능력과 개인의 행복감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반면 야근족은 술집과 편의점에서의 매출비중이 칼퇴족보다 더 높았네요. 한마디로 ‘퇴근 뒤 술 한 잔’은 칼퇴족 보다는 야근족의 일상이었다는 겁니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김 부장, 기성세대의 일상이기도 합니다.

    ▶ 관련 뉴스 보기 [칼퇴는 젊은세대가…야퇴족이 술집 더 찾아]



    김 부장이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도 한 때, 풋풋한 신입사원으로 간만에 일찍 퇴근하면 영화를 볼까, 애인을 만날까 행복한 고민을 했을 터이고, 이제 막 새내기 부모가 된 시기였다면 어린 자녀들에게 두 팔 벌려 달려가고 싶었을 시기도 분명히 있었겠죠. 하지만 야근과 휴일근무가 당연했던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그 문화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김 모 사원은 김 대리에서 김 과장을 거쳐 결국은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도 자리에서 미동 않는 김 부장이 되고 말았네요. 물론 김 부장에겐 부하직원보다 더 많은 책임과 업무가 있을 겁니다. 반면,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김 부장을 이렇게도 표현합니다. ‘일찍 퇴근해도 반기는 가족이 없다’, ‘시간이 있어도 뭘 해야 할지 모른다’.
    [뉴스인사이트] 야근족 김 부장에게 52시간 근무제란?
    일찍 퇴근해도 갈 데 없는 김 부장에게 주 52시간 근무제란?

    기업들이 ‘후진적 조직문화’를 개선하겠다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하는 것도 어제오늘일은 아닙니다. 온갖 선언적 구호를 내걸고 소통, 효율, 합리를 강조하며 이벤트를 열어 조직문화를 바꿔보려 한다지만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여전히 낙제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직혁신을 추진한다는 국내 대기업 3곳, 중견기업 3곳, 스타트업기업 2곳 직원 2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근본적인 개선이 됐다’는 응답은 12%에 그쳤고, 전체의 60%는 ‘일부 변화는 있으나 개선된 것으로 볼 수 없다’로 답했으며, 아예 28%는 ‘이벤트성일 뿐 전혀 효과가 없다’고 조사됐습니다. 대한상의 보고서는 직원들이 자신의 직장을 이렇게 보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늬만 혁신, 보여주기식, 청바지 입은 꼰대’.

    내년 7월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됩니다. 위 대한상의 조사결과가 일부기업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기업에서 후진적 조직문화는 여전한 채 선진적인 정책만 앞서 시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리 준비가 된 자들에겐 합법적으로 보장된 칼퇴근과 이후 시간을 잘 활용해 말 그대로 제2의 삶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조직문화에서 흔쾌히 벗어나지 못한 채 일찍 퇴근해도 갈 곳이 없는 김 부장들에게 주 52시간 근무제는 어떻게 다가올까요? 기업들은 그 혼돈에 대응할 준비가 돼있을까요? 노동문화의 혁명적 변화를 앞두고 이제 시대의 적응 문제를 고민해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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