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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트] 미혼모의 고통, '히트앤드런' 방지법으로 막자

서유정 기사입력 2018-05-31 10:00 최종수정 2018-05-3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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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시키려 폭행 후 잠수 탄 남친…"그리고, 나는 엄마가 되었다"

25살.
한창 예쁘게 꾸미고, 남자친구를 만나고, 여행도 가고, 친구들과 즐기며 살아갈 나이에 자신의 삶은 잠시 접어두고 한 아이의 엄마로, 내 아이만은 남부럽지 않게 키우겠다며 열심히 살고 있는 김슬기 씨를 만났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찾아간 슬기 씨 집에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네 살배기 아들이 눈을 비비고 있었는데요. 능숙하게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밥을 챙겨주는 슬기 씨에게 옛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4년 전 남자친구와 사귀다 임신을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우자고 했었죠."

결혼을 약속하고 아이를 낳기로 하면서 자연스레 흘러간 시간. 하지만 임신 9개월에 접어들 무렵 남자친구는 아이를 낳지 말라며 갑자기 슬기 씨를 폭행했습니다. 고비를 넘기며 힘겹게 아이를 낳았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9개월이니까 아이를 지울 수가 없잖아요. 유산시키려고 폭행을 했다가 결국 잠수를 타고"

▶ 관련 영상 보기 [아이 양육비 요구하면 꽃뱀?…'싱글맘' 지원 절실(2018.05.11/뉴스데스크/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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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에 보낸 아이를 보름 만에 다시 찾은 슬기 씨

갑자기 홀로 남겨진 슬기 씨는 아이를 혼자 키울 자신이 없어 시설로 보냈지만 결국 보름 만에 아이를 다시 찾아왔습니다.

"아이는 정말 저밖에 없잖아요. 정말 좋은 곳으로 입양이라도 가게 되면 좋지만 그게 아니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밑바닥부터 시작하더라도 내가 키우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데리고 왔어요."

어린 나이에 부모의 마음을 알아버린 슬기 씨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서 팔찌 등을 만들며 생활비를 벌고 있습니다. 그나마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그 시간 동안 일을 할 수 있지만 아이를 봐줄 곳이 없어 긴 시간 일을 할 수는 없는데요.

이렇게 해서 버는 돈은 50만 원 정도.
여기에 기초생활수급비로 나라에서 받는 월100만 원을 더해 월세와 관리비를 내고 나면 살림살이가 빠듯합니다. 점점 커가는 아이를 위해 아버지를 찾아내 양육비를 부탁했지만 아이 아버지는 양육비를 요구하면 아이를 데려가서 죽이겠다는 협박만 할 뿐, 책임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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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 9.4%만 양육비 수령

슬기 씨와 같은 형편의 미혼모는 현재 2만 4천여 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 가운데 아이의 생부에게 양육비를 받는 경우는 9.4%. 아이에 대한 책임을 생부도 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지난 2005년 생부가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의 법이 생기긴 했지만 실효성이 거의 없습니다. 생부가 소득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나 타고 다니는 자동차 등을 차명으로 돌려놓은 경우에는 사실상 받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소득 확인 안 되면 양육비 징수 어려워

양육비의 원활한 지급을 위해 2015년부터 양육비이행관리원도 설치돼 운영 중이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원 이후 2017년 말까지 미혼모를 포함한 이혼가정 등 한부모 가정의 양육비 이행의무 확정건수는 8천여 건이 넘지만 이 중 실제로 양육비가 지급된 건수는 2천500여 건에 불과합니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만난 안소희 씨도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학원비 등으로 생활비가 불어나자 아이 생부를 찾아 양육비를 요구했지만 수입이 없다는 핑계로 거절당했습니다. 사실 아이 아버지의 여동생이 남긴 SNS 글 등에는 아이 아버지가 주점을 운영하거나 해외 여행을 다닐 정도로 여유가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심증만 있을 뿐 사실 확인이 어려워 양육비를 쉽게 청구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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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앤드런 방지법'을 도입하자

지난 2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른바 '히트앤드런 방지법'을 만들어 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생부에게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미혼모들에게 정부가 먼저 양육비를 지급하고 나중에 생부에게 이 돈을 받아 내자는 법인데, 21만 명이 넘게 청원에 참여해 많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여성가족부도 관련 제도를 위한 연구 용역을 시작해 11월 대책을 발표할 예정인데요.

실제 덴마크의 경우 생부가 매달 약 60만 원을 보내야 하는데 돈을 보내지 않을 경우 생모가 시에 보고를 하면 시가 그 돈을 충당한 뒤 생부의 소득에서 원천징수하는 방식으로 돈을 회수하고 있습니다.

"내 아이는 내가 키울 수 있도록"

2016년도 기준으로 국내외로 입양된 아이 10명 중 9명은 미혼모의 아이들입니다.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없어 결국 아이를 포기한 건데요.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여성단체들은 내 자식을 내가 키울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줄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미혼모협회 <인트리>의 최형숙 대표는 "엄마들은 누구나 다 그렇듯 자신은 최저의 삶을 살 수 있어도 내 아이만큼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며 미혼모들이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양육비 지급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고, 또 미혼모들도 마음 놓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아이에 대한 돌봄 서비스 등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도 내 아이만큼은 내가 직접 키우겠다는 미혼모들이 최근 조금씩 늘고 있는데요. 이들의 선택이 후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가 차원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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