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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알바(1)] "너 다시 오지 마. 3일 하면 죽어"

윤수한 기사입력 2018-09-29 15:28 최종수정 2018-09-30 07:32
택배 물류센터 상하차 근로기준법 CJ대한통운 CJ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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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다시 하기 싫었던 택배 알바

'돈이 궁해도 다시 이 일은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스물네 살, 군대를 갓 전역하고 혼자 세상 곳곳을 누비는 배낭여행의 맛에 빠져, 닥치는 대로 여행비를 모을 때다. 짧은 시간 안에 목돈을 벌어 얼른 떠나고 싶었다. 벌이가 좋은 일을 찾다가 마주친 것이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였다. 하루 일하면 그날 바로 돈을 준다는 말에, '군대도 갔다 왔는데 뭘 못 하겠냐'며 지원했다.

첫날 이 오만한 생각이 깨졌다. 들이닥치는 택배 상자에 팔이 후들거렸고 입 안에는 흘러내리는 땀과 콧물, 침이 뒤섞였다. 3일째인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누웠더니, 허리가 뜨끔거려서 똑바로 누울 수가 없었다. 그때 다짐했다. '몸 망가지겠다, 다시는 하지 말자.'

택배 현장에서의 사망사고…취재지시

2년여가 지나, 올해 나는 기자가 됐다. 이제 단신 기사도 작성하고, 조금씩 기자의 삶을 배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택배 물류센터에서 사람들이 잇따라 숨지고 있다는 뉴스들이 들려왔다. 8월 6일, CJ대한통운 대전 허브터미널에서 상하차 작업을 하던 내 또래가 감전 사고로 숨졌고, 30일에는 CJ대한통운 옥천 터미널에서 50대 남성이 쓰러졌다.

'정말 사람이 죽어 나가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택배 물류센터의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짧게나마 경험했던 탓일까. 안타까웠지만, 나에게는 그다지 충격적인 뉴스가 아니었다. 거기는 그런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부장으로부터 취재지시가 내려왔다. 사람까지 죽었는데, 물류센터에 가서 얼마나 열악한지 체험해보고 그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라는 지시였다. 몰래 카메라를 들고 가라고 했다. '내가 택배 일을 해봤다는 것을 아는 걸까?, 자기소개서에 택배 알바를 했다는 걸 한 줄도 적지 않았는데, 도대체 왜 내가? 왜? 왜?'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현장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기 때문에 거부하고 싶었지만, 또 그걸 알기에 거부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취재해야 할 곳이다. 그리고 뉴스데스크 입봉도 해야 하지 않는가? "그래 가자! 우리 팀에서 그나마 젊고 건강한 내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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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옥천 물류센터를 가다

취재할 곳으로 충북 옥천의 물류센터를 선택했다. 지난 8월 30일, 50대 아저씨가 쓰러져 숨진 곳이다. 사망사건 이후로 뭐가 달라졌을까? 인터넷 광고로 번호를 찾아 문자를 보냈는데, 바로 답장이 왔다. 물어보는 것은 없었다. 출근 날 출근 문자를 보내고, 교대역 14번 출구에서 통근 버스를 타라고 했다. 무조건 나오면 일할 수 있다니, 일이 힘들다고 소문이 나서 일 할 사람 찾기가 어려운 듯했다.

오후 4시에 통근 버스가 도착했고 다른 아저씨들과 버스에 올랐다. 연령대가 다양했다. 나 같은 젊은 사람들과 아저씨들. 나이든 어르신들도 눈에 띄었다. 종종 아주머니들도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 반을 달려 저녁 6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다. 물류센터 앞 주차장에는 사람들이 태우는 담배연기로 뭉게뭉게 연기가 올라왔다. 그 담배 연기 사이 노동자들 한 명 한 명을 부르는 관리자의 목소리가 울렸고, "윤수한!" 내 이름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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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센터에서 목격한 두 개의 불법

작업이 시작되기 전 모든 게 정신없이 돌아갔다. 안면인식 시스템에 얼굴을 등록하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깨알같이 적힌 글씨를 제대로 읽어볼 틈도 없이 나는 서명을 했고, 회사 측은 내가 작성한 근로계약서를 모두 가져갔다. 아무리 일용직 노동자지만, 근로계약서 한 부를 노동자에게 줘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17조 2항을 위반한 것이다.

뒤늦게 몰래 찍은 영상으로 계약서 내용을 확인해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연장 근로에 동의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이 왜 정해진 시간을 초과해 나에게 강제노동을 시켰는지, 의문이 풀렸다. 나는 자발적으로 연장근로에 동의를 한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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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데가 없는지 문진표도 작성했다. 일부러 손목과 허리가 아프다고 적어냈다. 하지만, 아무도 나의 문진표를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사망 사고가 난 현장인데도 모든 게 형식적이었고, 어떤 걸 주의해야 하는지 설명도 없이 나는 작업에 투입됐다.

노동법에 보장된 휴게시간도 지켜지지 않았다. 근로기준법 54조 1항은 4시간을 일하면 최소 30분의 휴식시간을 보장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CJ옥천 물류센터에서 12시간 35분을 일한 나는 55분밖에 쉬지 못했다. 최소 1시간 30분은 휴식시간이 주어져야 하는데도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명백한 법 위반이다.

"너 오지 마, 3일 하면 죽어"

밤을 꼬박 새서 일을 하고 퇴근하는 시간, 통근 버스를 기다리던 한 아저씨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직장 잡고 다시 오지 마라. 3일 오면 너 죽는다." 누군가 내 기사에 댓글을 단 것처럼, 내가 일이 서툴러 면박을 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일 잘하는 사람도 이틀 일하고 하루 쉬지 않으면 못 견딘다…. 택배 물류센터는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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