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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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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알바(2)] 낡은 선풍기 두 대와 텅 빈 생수통

[죽음의 알바(2)] 낡은 선풍기 두 대와 텅 빈 생수통
입력 2018-09-30 14:01 | 수정 2019-12-3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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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알바(2)] 낡은 선풍기 두 대와 텅 빈 생수통
    다행히 고장 난 선풍기는 아니었다

    누가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선풍기 두 대가 있었는데, 모두 저랬다. 그냥 낡았다고 하기에도 민망했다. 케이스는 어디 갔는지, 얼기설기 전선이 다 보이는, 그래도 다행히 작동은 된다고 했다.

    옥천 터미널에 비해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던 CJ 도봉 물류터미널은 상황이 더욱 열악했다. 형식적이나마 작성했던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다. 곧바로 택배 상·하차 작업에 투입됐고, 정해진 휴식시간도 없었다. 아침 7시부터 8시간 반을 일했는데도, 밥은 고사하고 과자 부스러기 하나 없었다.

    더욱 기막힌 건 바로 저 선풍기였다. 상·하차 작업의 특성상, 한 시간 안에 11톤 트럭에 담겨 있는 택배를 모두 빼내야 한다. 보통 2-3명이 매달려 일을 하는데, 사방이 꽉 막힌 화물칸 안에서 일을 하다 보니 몸은 금방 땀으로 범벅이 된다. 제법 서늘한 가을 날씨에도 웃통을 벗고 일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다. 그런 상·하차 작업장에 있던 선풍기가 사진 속의 저 낡은 선풍기다.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지난여름, 도봉터미널에서 일하던 일용직 노동자들은 저 낡은 선풍기 두 대로 여름을 견뎠다. 한여름 뙤약볕에 달궈진 철제 화물칸 안의 온도는 50도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나마 저 선풍기가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라고 한다. 누군가가 일을 하다 더위를 먹고 쓰러졌고, 그 사건 이후 가져다 놓은 선풍기라고 했다.
    [죽음의 알바(2)] 낡은 선풍기 두 대와 텅 빈 생수통
    텅 빈 생수통, 마실 물도 없었다

    선풍기는 그렇다 치자. 볼품 사납게 속살을 드러내놓고 있어도 어쨌든 작동은 되니까. 도봉터미널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들은 더 심각한 게 있다고 했다. 바로 마실 물. 나는 물은 맘껏 마실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운이 좋은 거라고 했다. 여름이면 물이 떨어져 마시지 못하는 날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한 달에 40통의 생수통이 배정되는 데, 여름 당시 보름이면 동이 났다고 한다. 며칠 뒤, 도봉터미널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분이 저 영상을 보내줬다. 내가 일을 하고 떠난 그다음 주에도 물이 떨어져서 직접 찍은 영상이었다. 몸을 쓰면서 하는 일이라, 수시로 물을 먹어야 하지만, 충분한 물이 제공되지 않고 있었다. 더 달라고 해도 회사 측은 2-3일이 지나야 물을 가져오는 통에, 도봉터미널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사비를 털어 물을 사와야 했다. 그것도 터미널이 워낙 외진 곳에 있어서 10분은 걸어나가야 물을 살 수 있다. 점심도 굶고 간식도 없는데 자칫 물조차 못 마시고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기계의 속도에 당신을 맞춰라

    ▶ 관련 영상 보기 - 물류센터 레일 속도


    택배 물류센터의 레일은 빠르게 돌아갔다. CJ 옥천 물류센터에서 처음 했던 일은 레일 위에서 작은 택배를 골라내는 작업이었다. 레일이 너무 빨라 상자를 놓치기 일쑤였다. 초보자라 손이 느린 탓도 있었겠지만, 현장에서 만난 작업자들 모두 레일 속도에 맞추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서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기계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뛰어다니고, 사다리를 타고 레일 위를 넘나들기도 했다. 위험해 보였다.

    작업자들은 속도를 맞추기 위해 상자를 마구 집어던졌다. 택배 상자가 파손되기 일쑤였다. 물류센터 한쪽에서는 아예 10여 명의 사람들이 하루 종일 파손된 상자를 다시 테이프로 감싸는 포장 작업을 하고 있었다. 관리자한테 물건이 저렇게 망가져도 되냐고 물었더니, 그 대답은 가관이었다. 파손을 신경 쓰면 일하는 속도가 늦어져 인건비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차라리 망가진 물건을 배상하는 것이 더 싸게 먹힌다고… 택배 상자를 아무리 던지고 망가뜨려도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 이유였다. ▶ 관련 뉴스 보기 [바로간다] "밥도 물도 없다"…어지러워도 '작업 계속'


    레일 속도는 누가 정한 것일까

    레일 속도는 누가 정한 것일까. 누구도 속도를 늦춰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할 생각조차 못하는 듯했다. 작업 관리자들도 시간에 쫓겼다. 관리자 중 한 명이 택배 상자 더미를 가리키면서 "이건 조금만 늦게 레일에 올리자"고 말하자, 다른 한 명은 "그럼 언제 할 건데, 해가 뜨고있어!"라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모두가 속도에 쫓겼고 모두가 속도를 맞추지 못해 허덕거렸다. 그렇게 '총알배송'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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