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사회
기자이미지 윤수한

[죽음의 알바(3)] 차디찬 도시락 3개, 그가 파업한 이유

[죽음의 알바(3)] 차디찬 도시락 3개, 그가 파업한 이유
입력 2018-10-01 12:04 | 수정 2019-12-31 11:01
재생목록
    [죽음의 알바(3)] 차디찬 도시락 3개, 그가 파업한 이유
    "우리는 사실 없는 존재예요. 아무도 신경 안 써요."

    CJ도봉 물류터미널에서 만난 작업반장 A 씨는 작년 11월에 파업을 했다. 노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혼자 사표를 써놓고, 현장에 나가지 않았다. 작업반장이 안 나오니, 다른 일용직 노동자들도 일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상하차 작업은 반나절 동안 중단됐다.

    A 씨가 파업한 이유는 차디찬 도시락 3개 때문이었다. 당시 물류터미널에서는 '도시락 데이'라는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CJ 직원들과 택배 기사들이 모여 도시락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날 행사에서 상하차 노동자들은 제외됐다. 그들을 위한 도시락은 없었다. 택배기사들이 자리를 비우니 상하차 작업도 한 시간가량 중단됐지만, 상·하차 노동자들은 그냥 멀뚱히 앉아 있어야 했다. 작업반장 A 씨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했다.

    "서러워서, 인간으로서 모멸감을 느껴서, 더 이상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우리는 사실 없는 존재예요. 이방인이죠. 일용직이니까 아무도 신경 안 써요."
    [죽음의 알바(3)] 차디찬 도시락 3개, 그가 파업한 이유
    다 식은 도시락 3개와 라면 국물

    작업반장 A 씨와 다른 일용직 노동자 8명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왕복 20분 거리의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을 사왔다. 하지만, 그마저 먹을 수 없었다. 라면에 물을 붓고 먹기 시작했을 때, 행사가 끝났으니 하차를 시작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막 라면을 먹기 시작한 노동자들은 먹던 라면을 버리고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그때 제가 화가 되게 많이 났어요."

    작업을 마친 노동자들에게 CJ 측이 건넨 것은 자신들이 먹고 남은 다 식은 도시락 3개.

    "생각 같아서는 도시락을 발로 걷어차고 싶었지만 쫄쫄 굶은 노동자들이 생각나서 그럴 수 없었죠."

    A 씨는 그 도시락 3개를 노동자들에게 전했다. 사람은 8명, 도시락은 3개. 다 식은 도시락 3개를 라면 국물과 함께 나눠 먹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작업반장은 파업을 결심했다.

    "매번 간식 달라고 하기도 그렇고…구차한 거죠"

    파업한 이후 지점장과 하청업체 직원들은 그의 집을 찾았다. 그들은 미안하다고 밝히고 간식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매일은 아니고 일주일에 이틀. 가장 바쁜 화요일과 수요일에 초코파이와 우유를 주겠다고 한 것이다. 물론 간식을 먹을 수 있도록 시간을 준 것은 아니었다. 일하는 틈틈이 먹어야 했다.

    "솔직히 저는 그거라도 어디에요. 애들 밥도 못 먹고 하는데."

    하지만, 그마저 오래가지 못했다. 2,3주가 지나니 자연스레 약속은 잊혀졌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왜 안주냐고 물어보다가 서럽고 구차해서 그만뒀다고 한다.

    "이걸 주세요. 주세요. 하는데 거기서 또 예산 타령하고 그러니까 저희도 구차한 거죠."

    [죽음의 알바(3)] 차디찬 도시락 3개, 그가 파업한 이유
    하청업체의 주장, "우리는 갑도 아니고, 을도 아니고, 병이다"

    취재를 하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물류센터의 상하차 작업을 담당하는 하청업체를 찾아갔다. 상하차 일용직 노동자들이 왜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들은 '어쩔 수 없다'며 '지킬 걸 다 지킬 수 없다'고 항변했다. 자신들에게 하청을 준 CJ 측에서 무조건 단가를 깎으려 하기 때문에 일용직 노동자들이 원하는 대로 충분한 여건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갑도 아니고 을도 아니고 병'이기 때문에…

    나는 업체에 하청을 준 CJ 측에 연락했다. CJ 측은 공식 인터뷰를 요구했지만 끝내 거부하면서, 짧은 문자메시지를 나에게 보내왔다. '도급업체와 협력해 문제점을 보완하겠다'는 답변이 전부였다. 우리는 흔히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한다. 공식 인터뷰가 허락됐다면, 나는 이렇게 묻고 싶었다. 만약 당신들의 자식이나 친척이 일용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도시락 한 개 못 먹고 차별받는다면 가만히 있겠는가?

    ▶ 관련 영상 보기 - 차디찬 도시락 3개, 그가 파업한 이유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