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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트] '은산 분리'가 뭐길래…민주당의 딜레마

[뉴스인사이트] '은산 분리'가 뭐길래…민주당의 딜레마
입력 2018-10-01 16:10 | 수정 2019-12-3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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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은산 분리'가 뭐길래…민주당의 딜레마
    남북정상회담 소식에 가려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정상회담 마지막 날이던 지난 9월 20일 국회 본회의는 여러모로 독특한 분위기였습니다.

    본회의에선 보통 토론 없이 표결이 진행됩니다. 대개 여야 교섭단체 대표가 서로 합의한 법안만 올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터넷 전문은행 특례법'은 민주당 원내 지도부가 주도해 합의를 도출한 법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법안에 대해 6명이나 토론자로 나섰고, 특히 여당 소속 박영선 의원까지 반대 토론을 벌여 눈길을 끌었습니다.

    표결 결과, 반대 26표 중 13표가 더불어민주당 표였습니다. 지난 5월까지 각각 원내대표와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낸 우원식, 박홍근 의원도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기권 20표 중 15표도 민주당에서 나왔습니다. 설훈 최고위원과 홍익표 수석대변인, 강훈식 전략기획위원장 등 주요 당직자 의원들이 기권했습니다. 이 법안 표결 때 슬쩍 자리를 비운 여당 의원도 여럿 있습니다. 당 지도부가 추진한 법안에 30명 가까운 여당 의원들이 이견을 표출한 겁니다.
    [뉴스인사이트] '은산 분리'가 뭐길래…민주당의 딜레마
    도대체 '은산 분리'가 뭐길래?

    이 사건의 의미를 짚어보기 전에 잠시 인터넷은행 특례법과 '은산 분리' 원칙에 대해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현재 카카오뱅크의 최대 주주는 카카오가 아닙니다. 한국투자금융지주가 50%의 지분을 가진 1대 주주입니다. 카카오의 보통주는 10%에 불과합니다. 기존 법에선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10% 이상 지분을 보유할 수 없었습니다. '은산 분리' 원칙 때문이었습니다.

    '은산 분리'는 말 그대로 은행과 산업을 분리한다는 겁니다. 산업자본이 은행까지 소유하면 은행의 돈을 사금고처럼 끌어 쓸 수도 있겠죠? 금융시장의 안정성이 붕괴되거나 공정경쟁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을 제한한 겁니다. 우리나라에선 산업자본의 지분을 최대 10%로 제한하고, 의결권은 4% 한도에서 행사하도록 은행법에 규정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법 통과로 인터넷은행에 한해서 '은산 분리' 원칙이 완화되었습니다. 인터넷은행의 산업자본 지분 한도는 34%로 확대하기로 한 겁니다, 따라서 카카오와 KT는 각각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지분을 34%까지 보유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7일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 참석해 "은산 분리는 우리 금융의 기본원칙이지만 지금의 제도가 신산업의 성장을 억제한다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며 규제 혁신을 주문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대통령 발언 후 45일 만에 국회에서 관련법을 통과시킨 겁니다.
    [뉴스인사이트] '은산 분리'가 뭐길래…민주당의 딜레마
    민주당 강령은 '은산 분리 강화'

    국회 본회의에서 여당 내부 반발이 컸던 원인은 무엇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19대 국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은산 분리 강화'(당시 금융을 뜻하는 '금산 분리'로 지칭)를 당론으로 정했습니다. 이 내용은 2012년 말 대선 문재인 캠프 공약에도, 현재 더불어민주당 강령에도 포함돼 있습니다. 당연히 인터넷은행의 산업지분 한도를 34%로 늘리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이 처음에는 컸습니다.

    민주당이 인터넷은행 특례법을 놓고 세 차례나 의원총회를 열 것은 이 때문입니다. 지도부는 "새 법안이 기존 당론과 강령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본회의 이틀 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주주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은행법보다 대폭 강화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대주주에 대한 대출·보증을 '전면금지'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강조했습니다. 산업자본 지분 한도가 34%로 늘었어도, 대기업이 은행을 사유화할 수 없어 안전하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럼에도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2015년 자유한국당 김용태 의원이 인터넷은행의 산업자본 비율을 늘리는 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했을 때의 '과거'가 문제 됐습니다.

    당시 김 의원은 반대하는 민주당을 설득하기 위해 "대주주 대출·보증도 전면 금지할 수 있다"는 보완책을 제시했습니다. 이번에 홍 원내대표가 강조한 안전장치와 똑같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민주당은 이를 매몰차게 무시했습니다. "인터넷은행은 (10% 한도인) 지금으로도 할 수 있어요. 전 세계의 은행 중에서 무슨 2,30%, 40%, 50%씩 특정 기업이 주식을 갖고 있는 은행이 어디 있어요?" 2015년 11월 18일 정무소위에서 민주당 간사였던 김기식 의원이 이렇게 반대하자, 법안 논의는 중단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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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와 현재의 모순, 민주당의 숙제

    "민주당 의원 여러분, (민주당은) 19대 국회와 20대 국회 전반기에는 은행법 개정안과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제정안에 대해서 어떠한 은산 분리 완화도 안 된다며 논의를 거부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안면 몰수하고 한순간에 손바닥 뒤집기 하셔도 되는 겁니까? 민주당은 금산 분리 강화,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모두 다 포기하시는 겁니까?"

    지난 9월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의 반대토론 내용입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참 많이 아팠다"고 토로했습니다. 민주당이 직면한 과거(야당)와 현재(여당)의 모순을 정확히 지적했다는 설명입니다.

    문제는 인터넷은행 특례법이 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국회가 법안을 처리하라는 요구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 중엔 민주당에 대한 '우향우' 요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여당은 자신들의 과거 주장과 또다시 마주해야 할 겁니다. 이는 과거 노무현 정부가 수차례 맞닥뜨린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당장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을 보완하기 위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법안이 올해 여당에 숙제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제 개정법이 나올 것이란 분석도 있습니다. 모두 정부 일각에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던 법안입니다. 과연 그때도 "믿고 따라달라"는 설득이 통할까요? 지난 9월 20일 인터넷은행 특례법을 둘러싼 본회의 풍경이 당 안팎에서 자꾸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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