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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윤수한

[죽음의 알바(4)] 그들은 왜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나?

[죽음의 알바(4)] 그들은 왜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나?
입력 2018-10-02 14:11 | 수정 2019-12-3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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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알바(4)] 그들은 왜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나?
    "저는 통장 계좌가 없는데…"

    CJ도봉 터미널에서 함께 하차 작업을 했던 아저씨는 말이 없었다. 나에게 몇 살인지 묻더니 '이 일 말고 좀 괜찮은 일 없냐'고 말한 게, 그가 나에게 건넨 대화의 전부였다. 손목이 아프냐고 물어봐도 대답은 없었고, 종종 혼자 탄식을 터뜨린 뒤 다시 침묵을 지켰다.

    옥천에서 함께 일한 여성 작업자는 언뜻 보기에도 갓 스무 살이 돼 보이는 앳된 얼굴이었다. 무슨 사정으로 이 알바를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쏟아지는 졸음에 자주 고개를 떨궜다. 힘에 부치는 듯 여러 번 허리를 굽혀 상자를 고쳐 잡은 뒤에야 자기 몸집만 한 상자를 겨우 들어 올렸다. 13시간 내내 한 마디도 없던 그는 일이 끝난 뒤에야 내게 말을 걸었다.

    "저는 통장 계좌가 없는데, 현금으로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요?"
    [죽음의 알바(4)] 그들은 왜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나?
    돈이 간절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는 곳

    10년 가까이 이 일을 했다는 작업반장은 '돈이 간절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버티지 못 한다'고 말했다. 하루 유흥비를 벌려고 물류 일에 뛰어든 젊은 사람들도 몇 명 있었지만, 계속해서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당장 현금 한 푼이 아쉬운 사람들이었다.

    한 노동자는 속칭 '노가다'가 벌이는 더 좋지만, 노가다 일은 매일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른 새벽 대림동 인력사무소에 나가 앉아 있어도, 만약 그날 일을 구하지 못하면 당장 내일 쓸 돈이 없다는 것이다.

    '노가다'와 달리 물류센터는 인력난 때문에 늘 일자리가 있다. 그리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은 곳이다. 돈도 빠르면 당일, 늦어도 다음 날 오전까지는 넣어주기 때문에 당장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몰린다. 그래 봤자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하지만.

    물류센터 일이 너무 힘들어 떠났다가도 마땅히 갈 데가 없어 다시 돌아오는 사람도 많았다. 충북 옥천에서 만난 한 아저씨는 허리를 다쳐 물류 일을 그만뒀는데,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다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허리에 복대를 꼭 둘러맨 그는 허리디스크에 시달리고 있었다.
    [죽음의 알바(4)] 그들은 왜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나?
    "위험한 것들은 알아서 피하세요"

    누가 그들에게 집중할까. 일용직이라 노동조합 하나 없는 그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국민들은 총알배송에 열광했고, 더 빠른 속도를 향한 기업들의 경쟁 속에 당일 배송을 넘어 새벽 배송까지 등장했다. 그 과정 속에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쉴 시간을 빼앗겼고, 밥 먹을 권리와 안전마저 빼앗겼다. 손과 머리가 레일에 끼는 사고를 봤다는 노동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서 참고 참다가 급하게 작업대에서 뛰어내리다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도 있다고 했다.

    "저 데크 위에 있잖아 상차하는데. 저기서 맨몸으로 뛰어내리다가 하반신(마비) 된 사람도 있고."

    도봉 물류센터의 경우 안전교육은 없었고, 쿠팡 물류창고에서는 안전교육이 10분 만에 끝났다. 교육영상을 5분 정도 보여주던 담당자는 '알아서 조심하라'는 말로 교육을 끝냈다.

    "딱히 제가 드릴 말씀은 없고, 장비들이나 위험한 것들 알아서 피해 다니시면 돼요."

    옥천 물류센터는 1시간 동안 안전교육을 했지만, 현장에서는 지킬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상자는 놓치지 않게 손바닥을 펴고 양옆으로 꼭 붙잡으라고 했는데, 눈 감았다 뜨면 상자 서너 개가 지나가는 레일 속도 앞에 누가 그렇게 잡을 수 있을까. 안전교육은 노동부의 점검을 면피하기 위한 보여주기에 불과했다.
    [죽음의 알바(4)] 그들은 왜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나?
    쿠팡 물류센터에서 들은 무시무시한 경고방송

    기업과 관리자들에게 중요한 건 속도였다. 쿠팡 물류센터는 추석 특수기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소화기 하나 준비되지 않은 신규 공사구간에 천 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을 몰아넣었다. 방화벽이 내려오는 곳에는 화물운반대인 팔레트와 각종 택배 상자가 쌓여 있었다. 배송 속도를 맞추기 위해선 안전 수칙은 잊혀졌다. 건물 안에는 불에 잘 타는 물건들이 많아 불이 나면 큰일 날 상황이었지만, 그보다는 '로켓배송'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도봉 물류센터는 속도를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을 굶겼고 옥천 물류센터는 빠른 레일 속도를 유지했다.

    회사는 오직 작업 속도에만 관심 있었고, 쿠팡 물류창고에서는 틈틈이 다음과 같은 방송이 나왔다.

    "본인이 아실 겁니다. 속도 올려주세요. 다시 한 번 명단에 올라오시는 분들은 관리자들이 조치하겠습니다."

    경고였다.

    ▶ 관련 영상 보기 - [바로간다] 곳곳 '위험천만'인데…"속도 내라" 경고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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