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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알바(5)] 총알배송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구조

[죽음의 알바(5)] 총알배송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구조
입력 2018-10-04 14:57 | 수정 2019-12-3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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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알바(5)] 총알배송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구조
    26년 만에 공룡산업이 된 택배

    1991년 자동차운수사업법이 개정되고 일관수송업(택배업)이 제도화됐다. 민간택배산업의 시작이었다. 92년 6월 한진택배가 택배업에 뛰어들었고 이후 수많은 신규택배업체들이 등장하면서 택배산업은 성장해왔다. 92년 기준 물량 5백만 개에 매출액 2백억 원으로 시작한 택배산업은 어느덧 택배 물량 23억 개에 매출액 5조 2천억 원에 달하는 공룡 산업이 됐다. 국민 1명이 한해 45개의 택배를 받아 보는 셈이다.

    이제는 그 많던 택배업체들은 상위 5개의 택배업체로 정리됐다. 5개의 업체가 전체 택배 물량의 85% 이상을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것이 CJ 대한통운. 2013년, CJGLS와 대한통운이 합병하면서 출범했다. 전체 택배의 45%가량에 CJ 마크가 찍혀 있다.
    [죽음의 알바(5)] 총알배송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구조
    속도는 더 빠르게…택배 단가는 더 낮게

    택배 산업이 커져갈수록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택배 업체들은 시장에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고 또 낮췄다. 1997년, 택배 한 상자당 평균 단가는 4,700원이었지만 2년 만인 1999년, 4,000원대가 붕괴됐다. 2005년에는 상위 5개 택배업체들이 시장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3,000원대가 붕괴된다. 무료배송 서비스가 인기를 끌면서 택배 한 상자당 평균 단가는 계속 내려가 현재 2,248원에 머물고 있다. 물가는 꾸준히 올랐는데 택배 단가는 꾸준히 내려가는 기이한 현상이다.

    가격 낮추기에 한계가 오자 택배 업체들은 배송 속도 경쟁에도 돌입했다. 당일 밤 12시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바로 집 앞 현관으로 배송해주는 로켓배송부터 당일배송, 새벽배송 더 나아가 3시간 배송도 등장했다. 롯데 프레시는 과일 등의 신선식품에 대해 온라인 주문 후 당일 3시간 이내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문을 하는 순간 물건을 담고, 포장을 마친 뒤 바로 달려가는 것이다.

    ▶ 관련 영상 보기 - 끼니 거르고 17시간 일해도…'법 사각지대' 택배기사 (2018.10.03/뉴스데스크/MBC)
    [죽음의 알바(5)] 총알배송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구조
    기형적인 조합에 희생되는 노동자들

    점점 낮아지는 택배 단가와 점점 빨라지는 배송 속도의 조합은 기형적이다. 더 적은 돈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받는 동안, 그 둘 사이의 괴리를 채우기 위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희생되고 있다. 기업은 이윤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난 5년간 CJ 대한통운을 포함한 롯데택배, 한진택배 모두 꾸준히 택배 물량을 늘려왔다. 그리고 그에 따라 매출액도 꾸준히 증가했다. 2017년 12월 기준, CJ 대한통운의 연간 순이익은 389억 원이다. 기업들은 낮아지는 단가 속 효율적으로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 노동자들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냈다.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업무를 하나씩 떼어내어 하청업체에게 맡겼다. 운영비와 직원 관리 책임 등을 덜기 위해서였다. 배송은 대리점에게 맡기고, 대리점은 '개인 사업자'로 등록된 택배 기사들과 근로계약을 맺는다. 택배기사들은 CJ대한통운 조끼를 입고 있지만 CJ하고는 전혀 연결되지 않은 ‘개인 사업자’이다.
    [죽음의 알바(5)] 총알배송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구조
    대학생 감전사 사망…"CJ 책임은 10분 1"

    택배 상자들을 관리하는 물류터미널의 운영 역시 하청업체에게 맡겨진다. 물류터미널은 CJ 대한통운 것이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청업체와 계약한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CJ는 설비 관리에 대한 책임만 질 뿐, 13시간 동안 택배 상자를 올리고 내리는 일용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지난 8월 한 대학생이 감전사로 숨졌을 때도 그랬다. 고용노동부는 CJ 대한통운과 해당 물류센터 하청업체에 모두 7,500여만 원에 달하는 과태료를 물렸지만 그 중 CJ에게 부과된 것은 10분의 1도 안 되는 650만 원이었다. 법적으로 시설에 대한 책임은 CJ에게 있지만 안전교육 실시 등 관리 책임은 하청업체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죽음의 알바(5)] 총알배송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구조
    하청에 재하청…열악해지는 노동 조건

    때때로 하청업체는 재하청을 주기도 한다. 일할 사람을 찾기 위해 인력업체를 동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 계단씩 하청을 거칠 때마다 노동자가 받는 처우와 임금은 열악해진다. 중간에서 노동자들을 통해 이윤을 내야 하는 사업체들이 하나씩 늘기 때문이다. 택배 평균 단가 2,248원. 그 중 택배기사가 받는 돈은 800원 정도라고 한다. 그마저 대리점 수수료를 내기 전 금액이다. 물류센터 상하차 노동자가 가져가는 돈은 얼마나 될까. 상하차 노동자들은 시간으로 돈을 받기 때문에 짐작도 할 수 없다.

    기업들 간의 경쟁은 앞으로도 심해질 것이고 택배업계 노동자들의 처우는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질 것이다. 사실 이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로션이 다 떨어져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를 켰던 나는 '당일배송' 표시를 보고 조용히 사이트 창을 닫았다. 그리고 지갑을 들고 가게로 향했다. 조금 불편해도 조금 늦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만났던 그 사람들이 잠시 숨 돌릴 시간이 생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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