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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나세웅

[뉴스인사이트] 잘못된 판결 때문에 부모를 모두 잃은 기막힌 사연

[뉴스인사이트] 잘못된 판결 때문에 부모를 모두 잃은 기막힌 사연
입력 2018-10-12 14:07 | 수정 2019-12-3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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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잘못된 판결 때문에 부모를 모두 잃은 기막힌 사연
    "아버지도, 어머니도 판사들이 죽였습니다. 두 번 죽였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오판 때문에 가족을 잃게 됐다면 어떨까? 한 번도 아닌 두 번씩이나. 억울함을 풀어 줄 것으로 믿었던 판사들 때문에 오히려 부모를 모두 잃었다는 피해자, 박미옥 씨를 <스트레이트> 취재진이 만났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숨기고 살아왔어요. 왜냐면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참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나는 견뎌내야 되기 때문에.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30년 전 어느 날…

    가슴에 묻어온 이야기는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만 스무 살이던 지난 1981년, 미옥 씨는 고향 진도를 떠나, 전남 광주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미옥 씨의 대학생활은 그러나, 캠퍼스의 낭만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1년 전 무참히 짓밟힌 광주민주항쟁의 여파는 대학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6남매의 장녀로서, 아래로 딸린 동생들을 생각하며 학업에 전념하던 어느 날, 미옥 씨는 하숙집 주인의 연락을 받습니다. 그런 뒤 펼쳐 본 신문 1면. 낯선 표정의 가족들 사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한 번도 꾸중하지 않으시던 자상한 아버지도, 큰딸에게만큼은 믿고 속내를 내비치던 어머니도 전혀 딴사람처럼 굳은 얼굴이었습니다. '고정간첩 일당 7명 검거' 기사엔 '24년간 북한 지령을 받아 고정간첩으로 암약했다'는 안기부의 설명이 친절하게 덧붙어 있었습니다.

    모두 고문으로 조작된 혐의였습니다. 미옥씨의 고모부 허현 씨는 끔찍했던 기억에 대해 '몇 번을 죽었다'라고 표현합니다. "고추 물을 코에 붓는 건 그나마 나아. 꼴딱꼴딱 넘어가서 배가 산처럼 불러지면 수사관 놈들이 '아따 고놈 잘 먹었다'라고 하고 뒤집어서 밟는다고. 그러면 다시 게워, 그때 정말 죽어."

    갑작스러운 연행 뒤 잠을 재우지 않고 매질이 이어집니다. 간첩은 그렇게 안기부 조사실에서 태어났습니다. 친목 계는 불만을 조직하는 모임으로, 침술원에 입원한 건 사회 분위기를 정탐한 것으로 부풀리고 비틀었습니다.
    [뉴스인사이트] 잘못된 판결 때문에 부모를 모두 잃은 기막힌 사연
    잘못된 판결1-아버지의 죽음

    진술서 속 가공의 ‘간첩’을 판사들이 현실의 간첩으로 만들었습니다. 미옥 씨의 가족들은 첫 공판 때부터 ‘고문을 못 이겨 억지로 진술했다’고 호소합니다. 여전히 몸에 남은 고문 흔적을 봐달라며 신체 감정도 신청합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모두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법대 위 판사님은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해, '간첩', '간첩 가족'이란 화인(火印)을 찍습니다.

    "정말 인생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친구들이 부모님 얘기할 때 아무 얘기도 못 하고. 방학 때면 몰래 교도소에 가서 아버지 면회를 다녀와야 하는 그런 삶을 살았죠."

    7년형을 꽉 채우고 풀려난 아버지는 이미 어머니 말씀처럼 '허수아비' 같았습니다. 고문 후유증과 수형 생활로 건강을 크게 해쳤기 때문입니다. 다만, 누명을 벗는 것에 유일한 희망을 품고, 망가진 몸을 이끌고 시민단체와 형사법학회 등 곳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곧 해결될 것이다. 이렇게 명백한데 곧 조작 사실이 바로 잡힐 것이다'라고 하던 아버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을 잃어갔습니다. 결국, 지난 1998년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죄를 유죄로 만든 판사들이 돌아가시게 한 셈입니다.

    아버지가 숨진 뒤 11년이 흐른 2009년. 법원은 재심 끝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아버지 대신 재심을 신청한 어머니는 때늦은 판결을 들고 한스러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처음 무죄 판결 났을 때 어머니가 무죄 판결문을 들고 아버지 산소에 가서 목 놓아 우셨거든요. 조금이라도 한이 풀리시라고. '미옥이 아버지 당신이 죄가 없다 하요. 당신이 무죄라 하요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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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못된 판결2-어머니의 죽음

    미옥 씨와 남은 가족들은 무죄 판결을 근거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냅니다. 18년을 살고 나온 사촌오빠(박동운)는 판사들이 잘못된 판결을 내린 탓에 삶이 송두리째 빼앗겼고, 다른 사촌은 간첩 자식이란 딱지를 피해 자식을 해외로 입양 보내기도 했습니다. 1,2심 모두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덕분에 배상액 절반을 가지급금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2014년, 대법원이 갑작스럽게 판결을 뒤집습니다. 두 번째 악몽이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가족들이 패소하자 정부가 역으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받아간 돈이 '부당이득금'이니 연 5%의 이자를 붙여 돌려달라는 취지였습니다.

    당신은 무죄요, 외치던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신 건 그 직후였습니다. 미옥 씨 어머니는 "법원이 뭔가를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본인이 무죄 판결문을 들고 가서 설명하면 안되겠냐"고 미옥 씨에게 한참을 되물었다고 합니다.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처지가 기가 막혔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함께 안기부로 끌려가 매질을 견뎠던 아내, 풀려난 뒤 시아버지를 모시며 홀로 6남매를 길러낸 강인한 엄마. 그녀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기막힌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정부의 역소송이 제기된 지 다섯 달 만인 지난 2016년 11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슨 법이 그렇다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냐' 이해를 못하셨어요. 그리고 한숨도 잠도 못 주무시고 사흘을 한숨도 못 잤는데 그러고도 나가서 일을 하는 거예요. 이제 나라에서 준 돈을 도로 뺏어간다고 하니 돈이 한 푼도 없잖아요."
    [뉴스인사이트] 잘못된 판결 때문에 부모를 모두 잃은 기막힌 사연
    피해자 탓하는 법원

    양승태 대법원은 무슨 이유를 들어 배상을 막은 걸까. '소멸 시효가 지났다' 즉, 한 씨 등 피해 가족들이 소송을 너무 늦게 내 돈을 받아낼 수 있는 기한이 지났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원래 재심으로 무죄가 확정 된 뒤 3년 안에 소송을 내면 된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이었습니다. 한창 미옥 씨 가족의 소송이 진행되던 중인 지난 2013년 12월 갑자기 3년이던 소멸 시효를 6개월로 줄이는 판결을 대법원(주심 박병대 대법관)이 내놨고, 그 여파로 미옥 씨 가족도 돈을 도리어 토해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입니다. 공개 변론이나 의견 수렴과 같은 절차는 생략됐습니다.

    "사실 애초에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 결정이 있을 때에도 그리고 재심 무죄판결이 확정되었을 때에도 피해자나 유족에게 6개월 안에 권리행사를 해야만 한다고 말해주는 국가기관이나 법원은 없었다."(각주: 윤진수, 위헌인 대통령 긴급조치 발령이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 민사법학, 2017)

    고문 등으로 중대한 인권 침해를 저지른 국가와 이를 용인한 법원이 피해 구제를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진실을 은폐하고 조사 요구를 묵살해왔던 사정은 무시됐습니다. 대신 소멸 시효를 이유로, 피해자들의 태만함을 질책합니다. '적반하장'의 논리입니다. 소멸 시효 면제 이론을 처음 국내에 소개한 서울대 윤진수 교수는 법적 근거가 박약한 판결이라며 강하게 비판합니다.

    "'대법원 판결에서 왜 꼭 6개월로 소멸시효를 줄여야 하느냐'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습니다. 법적인 논리 자체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내 생각에는 대법관들이 '이렇게 많이 배상하면 국가의 재정 부담이 늘어나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한 것 같아요. 그 점이 몹시 실망스럽습니다."

    헌법 10조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결국 법원 안팎의 비판을 받은 2013년 대법원 판결은 지난 8월 30일, 헌법재판소에서 바로 잡힙니다. 헌재가 간첩 조작 사건 같은 국가의 중대한 인권침해 범죄에 일반적인 소멸 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날 미옥 씨는 방청권 추첨에서 떨어져, 무작정 헌재 앞을 서성였는데요. 법정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빈자리가 나서 겨우 직접 결정 내용을 듣고 난 뒤 눈물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기쁨도 잠시, 다시 재심을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앞으로가 더 걱정스럽다고 했습니다.
    [뉴스인사이트] 잘못된 판결 때문에 부모를 모두 잃은 기막힌 사연
    '재판 거래' 의혹에 두 번 우는 피해자

    37년 전 만 스무 살 대학생은 이제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습니다.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재조사하는데 3년. 재심 청구해서 무죄를 받는데 2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국가배상 청구소송에 4년이 또 흘렀습니다. 대법원의 판결이 헌법재판소에서 바로 잡히는데 다시 4년이 필요했습니다. 직접 피해를 받은 부모님은 법원의 잘못된 판결로 모두 숨졌습니다. 취재진이 가늠하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다시 또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 미옥 씨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과거사 배상을 줄이려는 판결이 청와대와의 거래 대상으로 거론됐다는 사실에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또 진실이 묻힐 수 있었구나. 아찔한 생각이 드는 거죠. 무슨 힘이 있어요. 저희가. 지금껏 계속 그래 왔거든요. 촛불집회 때 나온 '이게 나라냐'는 외침이 정말 와 닿았어요. 이제 저는 어머니가 아버지 산소에 가서 그랬듯이, 어머니 산소에 가서 '엄마, 그 판결이 잘못된 거래.' 엄마 산소에 가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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