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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박소희

[뉴스인사이트] 엄마들만 몰랐던 유치원 비리…의원실 네 곳 두드렸다

[뉴스인사이트] 엄마들만 몰랐던 유치원 비리…의원실 네 곳 두드렸다
입력 2018-10-30 11:34 | 수정 2019-12-3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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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엄마들만 몰랐던 유치원 비리…의원실 네 곳 두드렸다
    사립유치원 비리 보도는 지난 10월 11일 MBC의 감사 적발 유치원 명단 공개로 시작됐습니다. 지난 7월부터 매달린 취재의 시작과 끝을 기록하며 또다른 출발선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처음은 부족했습니다.

    지금은 전 국민적 문제가 됐지만, 시작은 미약했습니다. 교육 당국과 1년여 사투 끝에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대표가 건네준 정보공개청구 결과는 정보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적발된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이름'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각 유치원이 어떤 비리를 저질렀는지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물론 그것도 장 대표가 정보공개 청구에 행정소송까지 불사하며 힘겹게 구한 것이었습니다만 그것만으로는 기사를 쓸 순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만두기엔 장 대표 소개로 만난 한 감사관이 보여준 감사보고서 내용이 너무 놀라웠습니다. 아니 괘씸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친인척을 동원해 수천만 원의 인건비를 지급하면서 교사 월급은 200만원이 채 안 되는 곳이 많았습니다. 아이들 급식비로 홍어회, 막걸리를 사 먹고 7080 라이브 클럽 같은 주점을 가고, 피부관리실, 미용실, 백화점을 가고, 차를 사고 땅을 사고 심지어 개인 공과금까지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유치원'이라는 세계에서 '비영리 교육기관'은 사라지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만 남아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취재원 보호를 위해 그 감사보고서를 바로 공개할 수는 없었습니다. 좀 더 공식적인 출처로 유치원 감사 문건을 입수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을 찾았습니다.
    [뉴스인사이트] 엄마들만 몰랐던 유치원 비리…의원실 네 곳 두드렸다
    박용진 의원은 네번째 찾아간 의원

    처음 찾아갔던 A의원실에서 몇몇 지역구의 감사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역시나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순조로운 출발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첫 난관이 닥쳤습니다. 의원실로부터 뜻밖의 요구가 전해진 겁니다. 이 문제를 다루면서 A의원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찾아간 B의원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유총이 무섭다"는 말을 듣고 돌아서 나와야 했습니다. 의원직이 걸린 문제라며 손사래를 치는 이들 앞에서 설득도 무의미했습니다. 씁쓸했지만 돌아섰습니다.

    박용진 의원실은 그렇게 찾아간 네 번째 의원실입니다. 가지고 있는 감사보고서를 보여주며 함께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비서관 입에서 처음으로 "하자"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전해 들으니 박용진 의원은 "두렵지 않다. 같이 세상을 바꿔보자"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함께 싸울 동지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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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루한 서류 싸움...교육청들의 비협조

    이왕 하는 것 조금 욕심을 내어 전국 17개 시도의 감사보고서 전부를 구해보자고 의원실에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수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난관은 교육 당국이었던 겁니다. 비서관은 매일매일 수십 통의 전화를 하며 독촉을 해야 했습니다.

    유치원 이름이 개인정보라는 이유를 대며 교육청들이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고, 심지어 '정치하는 엄마들'과 소송 중이라는 이유로 의원실만 볼 것을 명시하고 외부 공개를 거부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긴 설득과 압박 모두 박용진 의원실의 몫이었습니다. 저는 초조하게 감사보고서가 입수되길 기다려야만 했고, 자료가 모두 모이는 데는 결국 두 달이 넘게 걸렸습니다.
    [뉴스인사이트] 엄마들만 몰랐던 유치원 비리…의원실 네 곳 두드렸다
    보도해도 괜찮을까?

    감사보고서를 다 확보해도 문제는 남아있었습니다. 교육청이 너무나 소극적이었기에 정말 '감사에 적발된 유치원의 이름을 공개해도 문제없나?'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정치팀 선배 기자들과 머리를 맞댔습니다.

    논의 끝에 실명을 공개해야만 비리의 고리가 끊길 거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취재원의 도움으로 반가운 문건도 입수했습니다. 교육부의 내부 회의 자료였습니다. 교육부가 서울고검에 의뢰한 법률 검토에서 "감사에 걸린 유치원의 이름은 행정처분이 완료됐을 때 비공개 정보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을 통보받았던 겁니다.

    이를 토대로 사내 법무팀과 외부 로펌에 차례로 법률검토를 받았습니다. 또 한 번 초조하게 기다리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전해진 결론은 "감사보고서는 비공개 정보라 볼 수 없고, 이를 공개했을 때 얻을 공공의 이익이 더 크다"였습니다. 결과 보고서를 받고 흐뭇하게 웃었던 데스크와 여당 반장 선배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이제 정말. 제대로. 잘. 보도하는 것만 남게 됐습니다. 선배들이 길을 만들어주셨으니 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가올 앞날은 꿈에도 모른 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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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장판 토론회는 의욕에 더욱 불을 지폈습니다.

    많은 분이 기억하시는 이 장면. 사실 이때는 이미 방송 날짜가 정해진 뒤였습니다. 비리 내용을 다 알고 있는데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거친 집단 행동을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보도 이후 맞닥뜨길 거센 저항도 그려졌습니다. 그날 만난 한 학부모는 그 모습을 보며 "얼마나 비리가 많길래 이렇게까지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넷에도 비슷한 의견이 줄을 이었습니다. 학부모의 그 말이 첫 기사의 앵커 멘트가 되었습니다.

    환희유치원 원장은 울었습니다.

    시간 제약 때문에 방송에서 감사보고서에 등장하는 모든 유치원을 다 보여줄 수 없는 일입니다. 기사에 쓸 대상을 정해야 했습니다. 비리의 중대성, 처벌의 경중을 고려해 처음 선택한 곳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원장 파면처분을 받은 동탄 환희 유치원이었습니다. 적발된 비리 유형만 13가지. 6억 8천여만 원을 돌려내라는 보전 처분도 받았던 곳입니다. 성인용품을 산 곳으로 유명해졌지만, 더 큰 항목은 원장과 가족들이 가져간 교육비 명목의 인건비들이었습니다.

    반론과 해명을 듣기 위해 찾아갔을 때 환희 유치원 원장은 저를 붙잡고 소리 내 울었습니다. 반성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유치원 이름만은 공개하지 말아 달라 말했습니다. "제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다시 잘할 기회를 주는 것이 좋지 않겠냐" 말했습니다.

    하지만 감사보고서상 드러난 비리는 원장의 부탁을 들어주기엔 너무 컸습니다. 개인적 원한이 있었던 것은 아니기에 그녀의 눈물이 안타까웠지만, 기자로서 판단을 돌릴 이유는 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덮으면 피해를 본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영영 그 사실을 알 수 없을 테니까요.

    ▶ 관련 영상 보기 - [단독] 아이들에 쓰라 준 돈…명품 사고 월급 두 번씩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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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개월의 끝...진정한 시작은 이제부터

    첫 보도에서 가장 강한 처분을 받았던 곳으로 MBC가 환희유치원의 적발 사항을 소개한 이후 며칠 동안 환희유치원은 계속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올라있었습니다. 폭발적 관심 속에 학부모 비상대책위가 만들어졌고, 원장 김 모 씨는 학부모 앞에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사과했습니다.

    이어 학부모 요구를 전부 받아들여 에듀파인 즉 국가 회계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고, 교재, 교구는 공개입찰을 통해 구매하며, 식자재도 학부모 검수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함께 유치원에 근무했던 아들 둘 중의 한 명은 교직원에서 제외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한 언론사는 이를 두고 '환희 유치원의 역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비난의 대상에서 이제 사립유치원들이 나아가야할 본보기로 바뀌었다고 평가한 겁니다.

    환희유치원이 공공성을 확대하는 운영방식을 확정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MBC 정치팀은 기사를 쓴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지금의 상황이 매우 두렵습니다. 사회적 관심이 어느 순간 순식간에 사그라지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들이 제도화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될까 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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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립유치원은 '개인소유' 문제 고쳐지지 않는다면…

    현재 사립유치원은 사립 초중고와 달리 사립학교 중 유일하게 개인 소유가 가능합니다. 개인이 땅을 사고 건물을 짓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그동안 '비영리 교육기관'인 사립유치원에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암묵적으로 '학원'처럼 수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내버려뒀습니다. 수십년 간 국가가 맡아야할 역할을 민간에 떠넘기는 대신 이익 추구를 용인해 준 겁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보육기관이 영리를 추구했을 때 벌어지는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난 이상 예전의 방식으로 유치원 운영을 내버려둬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소유는 개인, 운영은 공익이라는 이상한 구조를 밀어붙여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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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감사나 회계 시스템 도입, 처벌 강화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투자로 유치원을 차린 '장사꾼'은 걸러내 과감히 퇴출하고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하는 '교육자'만 남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OECD 평균인 67%에 한참 못 미치는 국공립 취원율 확대가 필수입니다. 사립 유치원을 흡수 편입하든가 7~8년에 걸쳐 서서히 보조금을 투입해 사립유치원의 90%를 법인화한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공립 유치원이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교사들도 확충이 되어야 합니다. 열악한 교사 처우 개선을 동반해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제도변화는 필연적으로 변화에 따른 진통을 만듭니다. 이를 견디고 개혁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해야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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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는 끝까지 지켜보고 요구하겠습니다.

    취재 중 만난 한 보좌관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유총은 세상에서 로비를 가장 잘하는 집단이다" 이런 말도 했습니다 "찾아오고 또 찾아오고 원하는 것이 이뤄질 때까지 온다". 2012년 누리과정지원금이 지급된 이후 이런저런 비리가 있다는 것을 교육 관계자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교육당국,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편에 서길 머뭇거렸던 데는 이런 사립유치원의 로비력도 분명 작용했을 겁니다. MBC는 후속 보도를 통해 유착의 가능성을 들여다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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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한유총은 억울하다고 말합니다. 국감 증인으로 나선 이덕선 비대위원장은 이번 정부대책을 "수용할 수 없다"고 재차 말했습니다. 한유총은 MBC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 언론중재위 제소를 예고했습니다.

    MBC의 보도로 여론이 들끓자 교육부가 전국 유치원 감사보고서를 각 교육청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했지만, 한유총이 MBC를 상대로 낸 감사보고서 명단 공개 금지 가처분 소송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잘못은 있는데 반성하는 이는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겁니다.
    [뉴스인사이트] 엄마들만 몰랐던 유치원 비리…의원실 네 곳 두드렸다
    3개월 간의 취재 속에 MBC 취재팀은 '정치하는 엄마들', 숱한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꼼꼼한 감사기록을 남겨준 각 시도교육청 감사관, 특히 경기도 교육청 감사팀 등 각 시도교육청의 감사관들, 박용진 의원실 식구들과 만났습니다. 수십 명이 힘을 모아 오늘을 이끌었습니다.

    사학 비리 근절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말할때 아니라고 맞서 싸우는 이들이 있었고, '사학비리'라는 산처럼 거대한 적폐를 없애기 위한 삽을 꽂았습니다. 사회의 관심과 지지가 이어지는 한 언젠가는 이 큰 산도 옮길 수 있을 것입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을 곱씹어 봅니다.

    사립학교법 개정까지 이뤄져 유아교육이 공공의 영역에 안전하게 안착할 때까지 MBC 취재진은 계속 감시하고 보도하겠습니다. 학부모와 시민들의 눈과 입이 되겠습니다. 공영방송 MBC가 추구해야 하는 뉴스란 그런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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