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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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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트] "엄마들은 찾아오지 않잖아요"…'정치맘'이 나선 이유

[뉴스인사이트] "엄마들은 찾아오지 않잖아요"…'정치맘'이 나선 이유
입력 2018-11-02 19:01 | 수정 2019-12-3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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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엄마들은 찾아오지 않잖아요"…'정치맘'이 나선 이유
    사립유치원 비리 보도는 지난 10월 11일 MBC의 감사 적발 유치원 명단의 공개로 시작됐습니다. 보도에 참여한 MBC 정치 팀원들은 [뉴스인사이트]를 통해 지난 7월부터 매달린 취재의 시작과 끝을 기록하며 또 다른 출발선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7년 전의 기억…"사립유치원 비리, 왜 취재 안 하시나요?"

    개인적으로 사립유치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1년 보건복지부를 출입할 당시입니다. '무상보육' 이슈가 터져 보육업계 관계자들과 학부모들을 많이 만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만나는 취재원들마다 "사립유치원 문제를 좀 취재해 달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사립유치원에 적용되는 사립학교법이 어린이집에 적용되는 영유아보육법과 비교해서도 상대적으로 느슨해, 사립유치원들이 사실상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비리와 횡포가 심하다는 얘기였습니다. 어떤 취재원은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모임을 가본 적이 있는가? 고가의 옷과 명품백 일색이라 놀랄 것이다" 이런 식의 얘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회계부터 인사권까지 모두 개인의 손에 맡겨지면서 사립유치원 운영에 문제가 많다는 건 전반적으로 업계의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주지의 사실대로 누리과정으로 교육과정은 통합이 됐지만 어린이집은 영유아보육법·보건복지부, 사립유치원은 사립학교법·교육부로 지금까지도 법과 감독기관이 이원화 돼 있습니다. 이 두 주체가 통합적인 관리감독을 받아야 한다는 요구는 여전히 해묵은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저기 '카더라' 통신만 있을 뿐 구체적인 제보자는 도무지 나서지 않았습니다.
    [뉴스인사이트] "엄마들은 찾아오지 않잖아요"…'정치맘'이 나선 이유
    2011년, 30대 표심 잡겠다며 '날림 통과'된 무상보육

    잠시 주제가 벗어나지만, 2012년 초를 뜨겁게 달궜던 '무상보육' 얘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지금 시행되고 있는 만 5세(즉 일반적으로 말하는 7세 이하 미취학 아동) 이하 누리과정 지원이 처음 시작된 게 2012년입니다.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전격적으로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년도를 보면 짐작이 되시겠지만 총선과 대선을 앞둔 해라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지금의 '무상보육'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현시킨 정책입니다. 2012년 4월 총선은 사실 당시 통합민주당의 승리가 점쳐지던 선거였습니다.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한 뒤 급해진 한나라당은 민주당 우세로 분류되는 "30대 젊은 층 표심"을 잡기 위해 2011년 하반기에 무상보육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본래 소득 하위 70% 가정 자녀에게 지원해온 보육료를 소득 상관없이 모든 계층 다 주는 것으로 내용을 바꾼 겁니다. 그런데 이 안은 18대 하반기 국회에서 담당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조 단위가 더 투입돼야 하는 예산 문제를 들어 반대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가 바뀌기 직전, '깜짝 사건'이 벌어집니다. 2011년 12월 말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계수조정소위원회에서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민주당이 합의해, 전격적으로 무상보육을 2012년도 예산에 끼워 넣은 것입니다. 당시 저도 "어떻게 된 거냐"고 복지부 담당 간부에게 물었더니, 답변이 "이렇게 될 줄 우리도 전혀 몰랐다. 황당하다"고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뉴스인사이트] "엄마들은 찾아오지 않잖아요"…'정치맘'이 나선 이유
    갓난아이를 기관에 보내야 지원금? 앞뒤가 바뀐 정책

    그런데 들여다보니 그 끼워넣은 안의 내용이 문제였습니다. 모든 아동에게 다 혜택을 주는 것이었으면 다행이었을 텐데, '0세부터 2세 아동에 한해서 집에서 키우면 한 푼도 안 주고, 어린이집에 보내면 지원금을 준다'는 그런 이상한 정책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돈을 받으려면 젖먹이를 집에서 키우지 말고 어린이집에 보내라'는 거였습니다. 그나마 연령이 더 높은 3~4세 아이들은 지원대상에서 아예 빠졌습니다. 사실 아기나 부모입장에선 아기가 어릴수록 집에서 키우는 게 더 좋은 것이 '상식'이고, 3세 이상일 경우 기관에 보내길 원하는 수요가 커지는 건데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겁니다.

    무상보육한다고 생색 내놓고 내용이 이 모양이다 보니 시민단체들이 엄동설한에 국회 앞에서 시위를 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말 그대로 '얄팍한 포퓰리즘'이 빚은 참사였던 겁니다.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지자 한 달 만에 정책 내용은 지원 대상에 3~4세를 추가하고 가정 양육비 지원을 대폭 늘리는 걸로 어찌어찌 정리됐습니다.

    [뉴스인사이트] "엄마들은 찾아오지 않잖아요"…'정치맘'이 나선 이유
    "원장들은 찾아오지만, 엄마들은 국회에 찾아오지 않잖아요?"

    국회의원들이 바보는 아닐 텐데 도대체 왜 이런 '상식 밖'의 일이 벌어졌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의원회관을 돌며 당시 결정에 관여한 의원들을 쫓아다녔습니다. 다들 아예 만남을 피하거나, 어물어물 답변을 하지 않았는데 그나마 입을 연 한나라당 모 여성 국회의원의 얘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심지어 '여성'의원 이었기 때문에 더 놀라웠는지도 모릅니다. "왜 그런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예산을 통과시켰냐"고 묻자 난감한 표정으로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진짜 엄마들, 학부모들의 요구사항은 솔직히 잘 알 수가 없어요. 의원실에 직접 찾아오는 엄마들은 없지 않나요. 그래서 정말 뭘 원하시는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어린이집연합회, 유치원연합회에서는 수시로 찾아오고 얘기를 합니다.

    의원들이 듣다 보니 아무래도 정책에 많이 반영이 되는 겁니다. 물론 이 말은 100% 진실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진짜 모르진 않았을 겁니다. 지역표를 쥐고 있는 이익집단의 얘기가 "듣고 싶은 얘기"라 더 크게 들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회로 찾아오는 엄마들이 없지 않냐"는 말은 유독 귀에 박혔습니다. 뭔가 구조부터 문제가 있구나. 사람 먹고사는 문제가 다 '정치'인데 정작 여의도엔 '진짜 정치'가 없구나. 이 간극은 어떻게 좁혀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뉴스인사이트] "엄마들은 찾아오지 않잖아요"…'정치맘'이 나선 이유
    엄마들이 드디어 정치를 시작했다.

    지난 6월 보도국에서 정치팀에 발령이 났습니다. 정치팀에 처음 오게 되던 날, 담당 에디터는 저에게 이런 주문을 했습니다. "새로운 정치 뉴스를 해보자. 여의도 금배지들의 권력 다툼, '그들만의 리그' 이야기를 하는 정치 뉴스가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요구와 목소리를 정치로 담아내는 뉴스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저도 공감했습니다.

    뉴스에 등장하는 '정치'가 여의도 의사당에 앉아있는 그들만의 관심사에 치우치는 게 아니라,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울고 웃는 평범한 사람들의 바람과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그런 이들의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국회의원들이니까요. 그러면서 '정치하는 엄마들'이라는 단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난해 초에 만들어져서 1년 넘게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비리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실명 명단을 공개해달라는 운동이 있었습니다. 이미 작년 여름 행정소송을 낸 상태였습니다. "내 아이가 다니고 있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일 수도 있다. 감사를 통해 적발된 유치원과 어린이집들의 실명을 알고 싶다." 부모로서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요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교육부는 "유치원과 어린이집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납득되지 않는 이유를 들며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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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정치팀과 '정치하는 엄마들'과의 만남

    ▶ 관련 영상 보기 - [출연] '정치하는 엄마들' 장하나 대표


    7년 전 취재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집에서 애 보느라 국회에 직접 못 찾아간다는, 그 엄마들이 목소리를 내는 단체가 이제 드디어 생겼구나.' 많이 반가웠습니다. 특히 공동대표 중 한 명이 전 국회의원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됐습니다. 시민들의 요구가 입법을 통해 정책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했을 것이란 점에서 그러했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 최초로 임기 중에 출산을 했던, 19대 청년 비례대표 출신 장하나 전 의원입니다. 장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지난 7월 1일 주말 뉴스데스크에 출연해주십사 부탁드렸습니다. 장하나 대표는 그날 출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보육정책 관련한 TF에 참석해보면 장년층, 남성, 교수·교수·교수…박사·박사·박사…공무원 그리고 엄마 1명…거기서 발언을 하는데 엄마의 목소리를 무겁게 듣지도 않고요. 그러다 보니까 현장하고 아주 동떨어져 있는 엄마들의 분노를 살 수밖에 없는 이런 정책들이 아직까지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7년 전 그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장 대표를 붙잡고 감사 적발 유치원들의 명단을 실명으로 공개하는 작업을 MBC와 함께 하자고 제안드렸습니다. 장 대표님은 그 자리에서 바로 흔쾌히 수락해 주셨습니다. '감사 적발 유치원 명단 공개'를 향한 MBC 정치팀의 3개월 넘는 긴 취재의 여정이 시작된 날입니다.
    [뉴스인사이트] "엄마들은 찾아오지 않잖아요"…'정치맘'이 나선 이유
    '엄마들'과 '여의도 정치'가 만나 맺어낸 결실

    ▶[관련 영상 보기] 감사 적발 유치원 명단 공개 청구 이유는?

    하지만, 이후 작업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정치하는 엄마들'이 요구한 명단 공개 요청에 대해 행정 소송의 대상이었던 국무조정실을 비롯한 정부는 제대로 된 자료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결국 MBC 정치팀이 여러 의원실을 두드린 끝에 전국 유치원에 대한 시도교육청 감사 보고서를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실을 통해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비리 유치원과 어린이집 명단을 공개하라"는 시민들의 요구가 언론을 매개체로 여의도 정치와 맞닿아 행복한 결실을 맺게 된 겁니다. 이렇게 시민들이 직접 정치 무대에서 성과를 이룬 사례는 해외에서도 적지 않습니다.

    정치 후진국으로 분류되는 옆 나라 일본에선 SNS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 '카운터스'가 아베 정부 아래에서 '혐오표현금지법' 제정을 이끌어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져 올여름 국내에서 개봉되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경우엔 아예 기성 정치권의 부패를 비난하는 시민운동에서 출발해 '오성운동'이란 이름의 정당이 만들어졌습니다.

    투명성과 청렴함, 인터넷을 통한 직접 민주주의를 내걸었는데 (정책으로는 국회의원 임금 삭감·2선까지만 허용·국회의원 헌법교육과 시험 의무화·전 국민 인터넷 무료 사용 등을 내놨다고 합니다.) 올봄 총선에서 창당 9년 만에 최대 정당이 되는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우리에겐 '당사자 정치'를 내세운 '정치하는 엄마들'의 이번 성과가 눈부십니다. 이들의 요구를 통해 MBC와 민주당 박용진 의원실이 감사 적발 유치원 명단을 공개하게 됐고, 유치원 비리 문제가 전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보도 불과 나흘 만에 교육부 장관이 입장을 내고, 단 2주 만에 정부가 종합 대책을 발표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시민운동의 문제제기가 이렇게 단기간에 실질적인 정책 변화로 이어진 건 사실상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아기를 업고, 끌고, 거리로 나서 이뤄낸 이들의 성공 사례가 시민이 정치의 주인공이 되는, 제2·제3의 정치 실험으로 이어지는 출발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MBC 정치팀 '비리 유치원 감사' 관련 [뉴스인사이트] 엄마들만 몰랐던 유치원 비리…의원실 네 곳 두드렸다(박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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