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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전동혁 기자

[뉴스인사이트] 전교 1,2,3등 기말고사 고의 결시? 확인해봤더니…

[뉴스인사이트] 전교 1,2,3등 기말고사 고의 결시? 확인해봤더니…
입력 2018-12-20 16:00 | 수정 2018-12-20 16:46
뉴스인사이트 전교 123등 기말고사 고의 결시 확인해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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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시도교육청이 초중고등학교의 감사 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하기 나흘 전,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내용의 '내신 편법'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전교 1,2,3 등이 기말고사 첫날 단체로 독감에 걸려 시험을 보지 않고 정정당당히 중간고사 점수를 100% 인정받게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1,2,3등의 부모 중에는 의사도 있고 지역 정치인도 있어 독감 진단서도 의심된다고 했습니다.

    취재팀엔 비상이 걸렸습니다. 당일 바로 제보자와 접촉했죠.

    제보자는 학원가 관계자였습니다.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을 듣고 얼마 전 숙명여고 사태가 떠올라 제보했다고 밝혔습니다.

    제보자는 학교 교칙이 '독감으로 기말고사를 못 보면 중간고사 성적으로 100% 대체하게 돼 있다'며 '편법'이라고 말했습니다.

    해당 학교의 규정을 찾아봤습니다.

    사실이었습니다.

    독감 같은 법정전염병에 걸리면 학교보건법 제8조에 따라 '등교중지' 처분을 받고 중간고사 점수 그대로 기말고사에서도 인정해줍니다.

    해당 학교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80%를 인정하는 일부 고교를 제외하면 전국의 고등학교에서 똑같은 학교 규정을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중간고사를 잘 보고, 독감 진단서를 뗄 수만 있다면, 기말고사까지 잘 볼 수 있는 '프리패스 편법‘이 존재했던 겁니다.

    다음날, 제보자에게 문자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오늘도 3명 전원 안 나왔다"고.

    해당 학교의 기말고사 시간표도 '내신 편법' 의혹을 부채질했습니다.

    이들이 결석한 목요일과 금요일에 주요 과목인 수학과 과학 시험이 몰려있었기 때문이죠.

    제보자는 "2학기 기말고사의 수학 범위는 미적분"이라며 "수능에서 고배점 문제가 주로 출제되는 곳"이라고 알려줬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라도 새로 익힌 개념의 응용 문제를 접하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이 건 바로 직전 취재했던 '수행평가 대필 비리' 제보자가 했던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수행평가 대필을 신고하기 위해 학교 측에 증거를 요구했지만 받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나중에 교육지원청이 해당 학교에 조사를 나갔지만, 대필 확인이 안됐다"는 것.

    만약 학교가 최상위권 학생 성적 관리를 위해 묵인을 해준거라면 사실상 확인 불가란 판단이 들었습니다.

    교육청 장학사와 함께 학교를 방문하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보안 유지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저 역시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된 겁니다.
    [뉴스인사이트] 전교 1,2,3등 기말고사 고의 결시? 확인해봤더니…
    남은 방법은 하나, '정면돌파'였습니다.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 학생들이 하교할 때, 전교 1,2,3등이 기말고사를 보지 않았다는 소문이 확인되면 학교로 들어가기로.

    그리고 그날이 됐습니다.

    취재팀은 정문 양쪽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소문은 들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시험을 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부러 그럴 애들은 아니다"라는 말도 했습니다.

    1학년 때부터 워낙 공부를 잘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편법을 쓸 만큼 나쁜 애들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쨌든 일부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학교로 들어가야 하는 당위성이 확보됐습니다.

    30분 가까이 학교 앞에서 학생들을 붙잡고 물어보다 보니, 교사들에게도 소식이 전해졌나 봅니다.

    교무부장이 나왔고, 취재팀은 설득 끝에 교감, 교무부장, 해당 학급의 담임교사를 만나 얘기를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일부 사실은 맞았지만 과장된 면이 있었습니다.

    전교 1등은 시험 사흘 전 응급실에 갔었고, 독감 진단을 받았습니다.

    규정 상 독감에 걸리면 전파를 막기 위해 5일 간 등교 정지가 됩니다.

    그래서 그 학생은 첫 이틀의 시험을 보지 못했고, 이후 3일의 시험은 정상적으로 치렀습니다.

    마침 이 학생이 마침 취재진이 있던 회의실 밖 복도를 지나가고 있어서, 교감이 직접 '독감 가검물 채취 여부'까지 확인해 줬습니다.

    전교 2등도 독감에 걸려 기말고사 전날부터 등교 정지였습니다.

    등교 정지 5일은 주말을 포함하기 때문에, 이 학생도 기말고사 후반 3일은 시험을 치렀습니다.

    두 학생의 진단서는 각각 다른 병원에서 발급됐고, 부모가 의사라는 소문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취재진은 학교 측에 "소문이 과장된 '해프닝' 같다"고 밝히고, 사전 동의 없이 학생들을 인터뷰 한 것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학교 측이 오히려 '해프닝'이 아닌 씁쓸하지만 '학교의 현실'이라고 얘기했습니다.

    학교 측이 빠르게 해당 건을 확인해 줄 수 있었던 건 이미 학부모들의 민원이 빗발쳤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독감에 걸린 학생도 강제로 시험보게 하라"는 얘기부터, "독감 진단서를 믿을 수 없으니 수사를 의뢰하라"는 얘기까지.

    어떤 학부모는 "우리 애가 독감에 걸렸는데, 00 과목은 중간고사 성적이 안 좋으니, 그 과목만 시험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도 합니다.

    교사들은 독감이 유행하는 2학기 기말고사 기간이 되면, 이같은 소문이 종종 돈다고 털어놨습니다.

    어느 해에는 이 학교, 어느 해에는 저 학교.

    그래서인지 "다른 학교 얘기로 알았다"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어쩌면 이런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소문이 도는 이유는 0.1등급으로도 입시의 당락이 결정되는 내신의 정교한 기준과 독감 같은 법정 전염병에 걸리면 중간고사 성적을 기말에 100% 반영해준다는 교육 당국의 널찍한 기준의 간극 때문은 아닐까 생각됐습니다.

    그 간극의 틈새에서 공정하라고 만든 기준을 공정하지 않게 이용하는 '편법'이 자라나는 것이겠죠.

    그리고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편법 혹은 불법이 간간히 사실로 확인되면서 학교에는 지금 '불신'이란 거대한 뿌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체 이 뿌리를 어떻게해야 뽑아 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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