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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남재현

[뉴스인사이트] 10년 만에 복직…반토막 난 첫 월급 명세서

[뉴스인사이트] 10년 만에 복직…반토막 난 첫 월급 명세서
입력 2019-02-01 16:16 | 수정 2019-12-2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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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10년 만에 복직…반토막 난 첫 월급 명세서
    10년 만에 받아 든 월급명세서 '반 토막'

    지난해 마지막 날, 해고된 지 10년 만에 일자리로 되돌아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입니다.

    그런데 복직 첫 달, 몇몇 사람들은 반 토막 난 월급명세서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유는 경찰 가압류 때문이었습니다.

    "그저 막막…" 한 달도 채 못 간 설렘과 기쁨

    "그래도 살아야 했으니 10년 동안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최영호 씨는 올해 23년차 현장직 노동자입니다.

    꼭 한 달 전 평택 공장으로 복귀했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 71명 중에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복직 첫 월급은 117만 원.

    법정채무금 공제로 123만 원이 빠져나간 뒤였습니다.

    법정채무금은 바로 경찰이 가압류를 걸어놓은 돈입니다.

    2009년 파업 당시 노조 조직부장이었는데 그게 발목을 잡은 겁니다.

    파업 이후 형사 처벌을 받았고 10년 실직에, 경찰 폭력 진압의 트라우마까지 시달렸는데 복직 첫 달부터 가압류란 고난이 또 시작된 겁니다.

    "예상은 했지만 이정도 일 줄은 몰랐다"

    지금도 노조 사무국장을 하고 있는 김정욱 씨. 역시 반토막 난 월급명세서 대상자입니다.

    실수령액은 85만 원, 경찰이 91만 원을 떼 갔습니다.

    "그래도 최저생계비는 보장해 주겠지" 생각했는데 기대는 어김없이 빗나갔습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 아빠 노릇을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저 처참했다고 김정욱 씨는 말합니다.
    [뉴스인사이트] 10년 만에 복직…반토막 난 첫 월급 명세서
    파업은 끝났고 복직은 했지만…아직도 벗어나지 못할 굴레

    경찰 가압류는 지난 2009년 파업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경찰이 파업 참가자들에게 형사 처벌에 이어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주로 노조 간부나 적극 가담자로 분류된 67명이 대상이었습니다.

    최루액을 뿌려대던 헬기 수리비라고 했고, 경찰특공대가 숨어있던 컨테이너를 지탱해주던 기중기 수리비라고도 했습니다.

    부상을 당한 경찰 치료비도 있었고 일부 위자료도 있었습니다.

    "그때 동료들은 부러지고 찢어지고, 지금까지 조합원과 그 가족 30명이 생을 달리했는데 그 보상은 어디에 가서 받아야 하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루 이자만 60만 원,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손해배상

    경찰이 처음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16억 8천만 원이었습니다.

    하지만 1심에서 14억 1천만 원, 2심에서 11억 7천만 원으로 줄기는 했습니다.

    인정이 안 된 부분도 많았던 겁니다.

    그런데 2016년부터는 20%의 지연이자가 붙게 됐고 하루 60만 원씩, 벌써 이자만 8억 원 가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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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경찰 진압은 과연 정당했을까

    경찰 인권침해 진상조사위는 이미 쌍용차 파업 진압이 위법하고 과도했다면서 손해배상을 취하하고 사과도 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2급 발암물질인 디클로로메탄이 포함된 최루액을 저공비행하며 무려 20만 리터나 뿌린 '바람작전'.

    경찰 진상조사위는 경찰관직무집행법과 경찰장비사용기준에 어긋나는 위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때 헬기 일부가 손상됐다며 6억 8천만 원을 물어내라고 소송을 냈던 겁니다.

    대테러 임무를 담당하는 경찰특공대의 진압작전도 합법적일 리가 없었습니다.

    당시 경찰청장이 사용 금지명령을 내렸던 대테러장비인 다목적발사기를 사용하고 사측 경비용역과 합심해 노조원들을 폭행했던 것도 위법했다는 게 경찰청 진상위의 판단이었습니다.

    경찰력이라는 공권력을 행사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최소침해의 원칙과 법익균형성’을 해쳤다는 겁니다.

    그런데 경찰은 이 과정에서도 손해를 입었다며 7억 4천만 원을 청구했습니다.

    당시 특공대를 컨테이너에 실어 올려 보냈는데, 이때 사용된 기중기가 일부 훼손됐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헬기가 파손됐다면 쌍용차 조합원들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취재를 하면서 반문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명확히 따져보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하지만 명확치 않았습니다.

    경찰은 헬기를 파손한 사람을 찾아야 하고 기중기를 훼손한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경찰에게 폭력을 가한 사람이 있다면, 찾아서 손해 배상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경찰은 '누가 했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노조 지도부가 모두 책임지라'는 식입니다.

    법원도 그렇습니다.

    당시 경찰의 진압 방식이 위법한 폭력 진압이었는데도, 그 피해를 입은 조합원들에게 형사 처벌은 물론, 금전적 배상까지 공동으로 책임지라는 건, 해고 10년을 버텨온 노동자들에게 해도 너무 한 처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뉴스인사이트] 10년 만에 복직…반토막 난 첫 월급 명세서
    정말 노조 괴롭히기 소송인가?

    취재를 하는 동안 현장에서 '노조 괴롭히기 소송'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노조 집행부에 수십억 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해 놓고 길게는 10년, 짧게는 수년씩 걸리는 소송을 하다 보면 견딜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결국 대규모 손해배상소송에 한번 휘말리면 와해되는 노조도 상당합니다.

    '파업하면 패가망신?'…노동 3권 헌법 가치 위축

    헌법 33조에는 이른바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입니다.

    사업주보다 약자 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에게 이 세 가지 권리를 보장해 줌으로써 권익과 근로조건 향상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반드시 보장돼야 할 기본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국가가 대량 해고 위기에 직면했던 파업 노동자들을 상대로 형사 처벌은 물론, 금전적 손해까지 물리게 하는 건 헌법적 가치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돼왔습니다.

    '파업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회사나 국가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 '입 닫고 눈 감아라'는 식의 협박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파업 노동자에게, 또 집회 시위를 하는 시민들에게, 회사나 국가가 청구하는 손해배상을 '괴롭히기 소송'이라고 보는 겁니다.

    쌍용차 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취하는 물론, 괴롭히기 소송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대안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이유입니다.

    쌍용차 파업을 둘러싼 소송 중 지금 남아있는 것은 경찰의 손해배상 민사 소송이 유일합니다.

    왜 경찰만 소송을 고집하고 있는지 답을 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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