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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임명현

[청와대M부스] '영어 키워드'에서 드러난 청와대의 중재 전략과 고민

[청와대M부스] '영어 키워드'에서 드러난 청와대의 중재 전략과 고민
입력 2019-03-18 13:35 | 수정 2019-12-2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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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M부스] '영어 키워드'에서 드러난 청와대의 중재 전략과 고민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어제 오후 춘추관을 찾았습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냉각 기류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의 정세 분석과 향후 중재 전략을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분량이 약 원고지 60매에 이를 정도로 내용이 많았습니다. 이 관계자는 긴 브리핑을 하면서 몇 차례 영어 어휘를 사용했는데, 그 어휘들에 청와대의 분석과 전략, 고민들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가 사용한 주요 '영어 키워드'를 중심으로 어제의 브리핑을 재구성해보고자 합니다.

    Diplomacy is very much alive

    '외교는 매우 살아있다'는 뜻으로,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최근 사용한 표현입니다. 이 관계자는 북미가 과거로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진전해왔다고 평가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강경파인 볼턴 보좌관까지도 협상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상황을 말한 겁니다. 북한 최선희 부상이 '협상 중단을 고려하고 있다'며 강도높은 발언을 내놓긴 했지만, 그조차도 협상 중단을 단언한 것은 아니라는 평가입니다.

    Nothing is agreed until everything is agreed

    '모든 것이 합의되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합의되지 않은 것이다'라는 언급입니다. 하노이 회담의 결렬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있습니다. 이 관계자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북한에 대한 밝은 미래 보장 등이 사실상 합의됐지만, 바로 이 원칙 때문에 채택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안들은 과거 70년 동안 북미 간에 거론조차 되지 않았었다는 점에서, 합의 직전까지 이르렀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습니다.

    Undermine · Underestimate

    각각 '약화시키다', '평가절하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브리핑에 대한 평가 과정에서 언급됐습니다. 최 부상은 "문재인 대통령이 조미 대화를 위해 애를 많이 쓰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남측은 미국과 동맹관계이기 때문에 그들은 중재자가 아니라 행위자(player)"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정확한 내용은 더 파악해봐야겠지만, (최 부상)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런 이야기도 있다'라는 인용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한국 정부의 역할을 약화시키거나, 평가절하하려는 내용은 아니었다고 본다고 평가했습니다.
    [청와대M부스] '영어 키워드'에서 드러난 청와대의 중재 전략과 고민
    Moratorium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북한의 '핵·미사일 모라토리움 유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핵미사일 실험을 계속 유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조는 부드러웠지만 “만약 실험이 재개된다면 상황이 매우 심각해질 것이다, 미국과 함께 주의 깊게 지켜보겠다"는 경고성 언급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모라토리움 파기는, 대화 궤도에서의 이탈을 의미한다고 인식하는 것 같았습니다.

    No deal is better than a bad deal

    '아무 거래도 하지 않는 것이 나쁜 거래보다 낫다'라는 뜻이죠.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국 조야 일각과 국내 일부 언론 등에서 사용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 관계자는 (다소 뜻밖에도) "이 표현에 동의한다"고 했습니다. "한미 간에 비핵화의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로드맵을 확실히 공유하고 있으며, 그 점에 있어 의견차이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All or nothing

    그러나 이 관계자는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전략에 대해서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 비핵화 협상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관성적인 대북협상 프레임에서 좀 탈피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일시에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은 사실 현실적으로 어려움에 있지 않느냐"는 언급도 곁들였습니다. 한미 간 이견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협상전략에 있어서는 미국이 좀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는 인식은 감추지 않은 것입니다.

    Early harvest · Good enough deal

    그렇다면 비핵화의 최종 목표를 달성해나가야 하는데, '일시에' 하기가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까요? 2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조기 수확'과 '충분히 좋은 거래'입니다. "북으로 하여금 포괄적 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에 합의하도록 견인해내고, 그 바탕 위에서 small deal을 good enough deal로 만들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스몰 딜도 빅 딜도 아닌 '충분히 좋은 딜'이 비핵화의 여정에서 꾸준한 동력을 제공해주지 않겠냐는 것이죠. 조기 수확⇒신뢰 구축⇒목표 달성의 프로세스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이라는 원칙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포괄적 목표'에 합의하자는 것입니다. 북한을 향한 주문입니다. 그리고 그 포괄적 목표를 이행해가는 과정은 '단계적'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미국을 향한 주문입니다. 다만 여기서 good enough deal이 미국이 말하는 big deal과 같은 건지, 다르면 얼마나 다른 건지는 다소 불명확합니다.
    [청와대M부스] '영어 키워드'에서 드러난 청와대의 중재 전략과 고민
    End state · Operational definition

    어제 브리핑이 남긴 의문은 이 단어들에 담겨 있습니다. 즉 비핵화의 '종점'이 어디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노이에서 북한과 미국은 '종점'에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북한이 말하는 '완전한 비핵화'와 미국이 말하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는 다르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여기에 미국은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 폐기까지 언급했습니다. 북한은 이런 미국의 요구를 '날강도 같다'고 합니다.

    사실 북한이 어디까지 조치했을 때 그것을 '비핵화'라고 할 수 있느냐라는 문제, 개념에 대한 문제는 계속 지적돼 왔던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북한이 말하는 '완전한 비핵화'와 국제사회가 말하는 'FFVD·CVID'에 개념적 차이가 없다"고 설명해왔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점이 하노이에서 드러났습니다. 결국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종점(end state)이 어디인지가 합의돼야 청와대가 강조하는 포괄적 합의라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남북이 함께 사용하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용어도 개념적 차이가 없는지 살펴봐야 할 부분입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비핵화의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에 대해 한 번 고민을 해봐야 될 때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고, 지난 30년간 비핵화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한 번도 시도가 된 적이 없다.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문제"라고 토로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만시지탄의 감이 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향후 북미협상이 재개된다 한들 같은 난항이 계속될 것으로 봅니다.

    Baton

    마지막입니다. "우리에게 바톤이 넘겨졌다"는 언급입니다. 이 관계자는 "작년에 우리가 북미대화를 견인했고,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대화를 견인했는데 이번엔 남북 대화의 차례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9.19 군사합의의 이행 같은 부분이 강조됐는데, 그 다음 스텝을 청와대는 고민할 겁니다. 대북특사 파견이 될 수도 있고, 작년 5.26 정상회담과 같은 '깜짝' 원포인트 정상회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바톤을 활용해 북한과 '비핵화의 종점'에 대해 분명히 합의하고, 이를 통해 '포괄적 합의'로 북을 견인해가는 작업이 이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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