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정치
기자이미지 이정은

[뉴스인사이트] 구겨진 태극기, 구겨진 국격

[뉴스인사이트] 구겨진 태극기, 구겨진 국격
입력 2019-04-04 18:51 | 수정 2019-04-04 18:53
뉴스인사이트 구겨진 태극기 구겨진 국격
재생목록
    초등학교 시절 태극기 사용법에 대해 다들 배우셨을 겁니다. 게양을 할 때에는 대문의 중앙이나 왼쪽에 게양해야 하고 때가 묻거나 구겨지지 않게 청결히 보관해야 하죠. 손상된 태극기는 함부로 버리지 말고 소각하거나 주민 센터를 통해 폐기하라는 걸 도덕시간 쯤에 배웠던 것 같습니다.

    오늘(4일) 외교부 청사에선 한국과 스페인의 외교부 차관이 만나 양자관계를 논의하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종종 있는 양자관계 행사입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게 있네요. 꾸깃꾸깃 구겨진 태극기가 행사장에 버젓이 걸렸습니다. 좁은 상자 같은 곳에 차곡차곡 접혀 보관됐는지 주름이 참 자잘하게도 나있었습니다.
    [뉴스인사이트] 구겨진 태극기, 구겨진 국격
    아니, 행사와 의전을 그렇게 중요시하는 외교부에서 구겨진 태극기를 걸다니! 그것도 사진기자, 영상기자들까지 다 불러놓고 두 나라 국기 가운데에서 포토세션을 진행하는 행사에서 말이죠. 8개월, 짧은 외교부 기자 생활 가운데 목격한 황당한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여기서 외교부 관계자의 변을 소개합니다.

    외교부 관계자 A "태극기가 더러워져서 행사를 앞두고 집에 가져가 세탁을 했다고 해요. 잘 하겠다고 착착 접어놨다가 가져왔는데 행사 시간 임박해서 꺼내보니 너무 구겨져 있었던 거죠."

    외교부 관계자 B "아침에라도 세탁소에 맡겨서 다림질을 했어야 하는데 왜 안 했는지 모르겠어요. 정 급하면 다른 부서에서 안 구겨진 태극기를 빌릴 수 있었을 텐데. 제가 담당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에요. 너무 창피해요."

    한 번의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런 식의 실수들이 최근 외교부에서 너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달 19일 외교부 홈페이지에 오른 영문 보도자료에는 '발틱 국가'인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가 '발칸 국가'라 기재됐습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엄연히 다른 나라들입니다. 발틱국은 발트해 연안의 나라들을 뜻하고 발칸국은 발칸 반도의 국가들을 의미하죠.

    문재인 대통령이 말레이시아를 방문했을 때 마하티르 총리와 국빈 만찬을 하면서 오후엔 밤 인사말을 하고 저녁시간에는 오후 인사말을 했습니다. 또 정상회담 때 말레이시아어가 아닌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를 건넸죠. 인사말 실수만 4번이 반복돼 의전 참사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아, 작년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체코를 방문했을 때 외교부 영문 트위터 계정에는 '체코'를 26년 전에 사용했던 국가명인 '체코슬로바키아'라 표기한 일도 있었습니다.
    [뉴스인사이트] 구겨진 태극기, 구겨진 국격
    외교부는 '의전'을 중시합니다. 행사의 반이 의전이란 말도 있죠. 의전(Protocol)이란 말 자체가 국제 외교관계에서 나온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인 간의 규범을 에티켓(Etiquette)나 예의범절(Good Manners)라 한다면 외교관계에선 상대국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의전(Protocol)'이라 표현합니다. 의전을 통해 상대국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표할 수 있습니다. 과잉 의전 논란이 일지언정 외교부가 그토록 의전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상대국과의 외교관계에서 의전 때문에 점수를 깎여선 안 되기 때문이죠.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4대 강국 위주인 외교에 갇히지 않고 외교를 다변화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런 실수들이 4대 강국이 아닌 나라들과의 관계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신남방정책'을 주창하면서 외교 현장에선 인사말조차 나라별로 분류를 하지 못하고 있는거죠. 발틱과 발칸을 직접 지적한 주한 라트비아 대사가 굉장히 불쾌해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오늘의 행사에서 스페인 국기가 안 구겨진 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요?

    외교다변화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함께 문재인 정부가 외교 분야에서 내 건 가장 큰 과제입니다. 4강 외교에서 벗어나겠다는 구호에서 나아가 다양한 지역의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장기적인 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합니다. 실수의 당사자 몇 명만 문책하고 넘어가면 이런 일은 또 언제 어느 나라와의 의전에서 일어날지 모릅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