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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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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트] 쿠팡맨의 진실

[뉴스인사이트] 쿠팡맨의 진실
입력 2019-07-02 11:20 | 수정 2019-12-2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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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쿠팡맨의 진실
    여러분들은 쿠팡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로켓 배송'과 '초저가'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맞습니다. 쿠팡은 이 두 가지 마케팅 기법을 내세워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는데요.

    매출액만 살펴봐도 지난 2014년 3천484억원에서 지난해 4조 4천227억원으로 12배나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이커머스 세상에선 가히 '쿠팡 전성시대'라 할 만합니다.
    [뉴스인사이트] 쿠팡맨의 진실
    로켓 배송과 쿠팡맨

    지금부턴 쿠팡의 급성장 비결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차별화 전략, '로켓 배송'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당연히 주문한 상품을 빨리 받아볼수록 좋겠죠.

    하지만 경쟁업체보다 한 발 빠른 배송을 위해선 그만큼 배송 기사들의 더 큰 노고가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쿠팡은 배송기사들을 '쿠팡맨'이라고 부르는데요.

    이들은 다른 업체 배송기사들과 달리 쿠팡 본사에 직접 고용돼 있습니다.

    직접고용이라고는 하지만 70% 정도가 계약직, 그러니까 비정규직입니다.

    폭증한 주문량만큼 일은 일대로 많아지는데, 임금은 몇 년째 그대로입니다.


    쿠팡맨과 함께 한 배송 현장

    그래서 실제로 쿠팡맨들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일이 얼마나 고된 지 배송 현장을 따라가며 취재해봤는데요.

    제가 동행 취재했던 쿠팡맨의 하루 배송 물량은 무려 180가구가 넘었습니다.

    이게 얼마나 많은 물량인지 감을 잡기가 쉽지 않으실 텐데요.

    먼저 오전 9시에 출근해서 배송 물량과 주소지를 확인한 뒤 곧바로 트럭을 몰고 배송지를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주문 24시간 이내 총알배송 원칙을 지키려면, 끼니조차 거르기 일쑤입니다.

    굶을 때도 많고 그나마 시간이 나면 김밥이나 빵 같은 걸로 때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렇게 쉬는 시간,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녀도 정규 근로시간인 오후 6시까지 배송을 마치기가 힘든데요.

    제가 만난 쿠팡맨은 오후 9시가 넘어서야 겨우 일을 마쳤습니다.

    쿠팡맨은 "저의 저녁 삶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하루를 요약했습니다.

    이렇게 서두르다 보면 다치거나 사고도 자주 날 수밖에 없겠죠.

    실제로 이 쿠팡맨은 배송 물량과 주소지 현황이 적힌 PDA를 보다가 배송할 곳을 지나쳐서 후진을 하다가 뒤에 있던 오토바이와 부딪히는 사고를 겪었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오토바이 운전자가 다치지는 않았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다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빠른 배송을 위해 트럭에서 급하게 뛰어내리다 보니 쿠팡맨 대부분은 무릎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또 다른 쿠팡맨은 과속 방지턱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었다면서 깁스를 한 발목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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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팡맨의 처우

    쿠팡맨은 모두 4천600명 정도입니다.

    1명당 하루 평균 150가구에 배송을 하는데, 5년 전 80~90가구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는 게 쿠팡맨들의 증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로켓 배송 정책 때문에 늘 부상과 사고 위험을 떠안고 살고 있는데, 갑자기 물량이 폭증하니 노동 강도가 더 이상 감내하기 힘든 수준이 됐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기본급과 수당은 4년째 그대로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쿠팡맨들은 "전세 대출금 갚기도 버겁다", "어린 자녀 분윳값 대기도 힘겹다", "맞벌이가 아니면 생활비 대기도 어렵다"와 같은 고충들을 토로했습니다.


    '며느리도 모르는' 등급 심사

    쿠팡의 '남다른' 임금체계도 쿠팡맨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쿠팡은 쿠팡맨들을 등급별로 나눠 임금을 차등 지급합니다.

    6개월마다 실시하는 평가에서 등급이 올라야 임금이 오르는데, 문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등급이 오르지 않는 경우도 많고, 이유도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쿠팡맨 노조 장진영 조직부장은 "등급 평가에 대한 설명이 명확하지 않아서 내가 왜 이 점수를 받았는지, 즉 '너는 왜 이 점수를 받은 거야'라는 설명을 따로 해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측 입장에선 쿠팡맨들의 로켓배송을 채찍질하면서도, 임금이 안올라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닥치고 일이나 하라고 할 수 있는 임금 체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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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답 없는 메아리"…쿠팡맨들의 처우 개선 요구

    쿠팡맨 노조는 회사 측에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지난해부터 단체 교섭을 벌이고 있습니다.

    1인당 배송 물량을 120가구 수준을 낮출 것과 평균 임금을 18% 인상해달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아직까지 단 한 조항도 합의해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쿠팡 측에 확인 요청을 했더니, "노조와의 단체 교섭은 계속 진행 중"이라면서도 노조 요구에 대한 회사 입장에 대해선 "확인해줄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습니다.


    쿠팡의 해명에도 수그러들지 않는 논란

    쿠팡맨들의 현실은 물론 사측의 입장까지 반영한 뉴스 리포트가 지난주 방송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쿠팡이 뒤늦게 해명 자료를 냈습니다.

    "쿠팡맨은 급여가 연평균 4천100만원에 이르고, 주52시간 근무, 콘도 등 다양한 복지 혜택을 얻고 있다", "음주 운전, 안전 미준수 사고, 무단결근, 자발적 퇴사를 제외하면 정규직 전환 비율이 90%다", "교섭 과정에서 노조 측이 사측에 욕설과 반말 등 폭력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회사는 단체교섭을 통해 문제 해결을 계속 시도하겠다"가 요지입니다.

    그래서 노조 측에 다시 물었습니다.

    연평균 임금 4천100만원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등급제를 9등급으로 나눠 실시하고 있는데, 4천만원이 넘는 연봉은 6, 7, 8등급에서나 가능하고, 쿠팡맨들은 1~5등급 사이를 왔다갔다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정규직 전환 비율이 90%라는 사측 주장도 노조는 반박했는데요.

    정확한 통계는 사측이 노조에 공개를 하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지난주 심사에서 정규직 전환 대상자 3명 중 2명이 심사에서 탈락을 했다고 합니다. 음주 운전이나 안전 미준수 사고, 무단결근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교섭 과정에 대해서도 들어봤는데요.

    교섭장에서 노조의 요구 사항을 전달했더니 사측은 아무런 의견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정회를 선언했다고 했습니다.

    사측이 먼저 출입문을 구둣발로 차고 나가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쿠팡맨 노조는 지난주 본사 앞에서 집회까지 열면서 사측의 성실한 교섭을 요구했는데, 아직까지도 만나자는 연락이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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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자 이탈 막는 지름길은 성실한 교섭

    이렇게 양측의 입장은 엇갈리고 있는데도, 회사 측은 자신들의 입장을 뒷받침할 근거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뒤늦게 언론을 상대로 해명을 하는 것보다, 앞서 해야 할 것은 교섭에 성실히 임하는 것입니다.

    로켓 배송과 초저가만으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소비자들은 갈수록 기업의 가치나 소비의 공익성, 대의명분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윤리적 소비'입니다.

    회사 측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쿠팡맨은 쿠팡의 얼굴입니다.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쿠팡맨들을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 그들을 진짜 교섭 상대로 인정하는 것만이 '윤리적 소비자'들의 이탈을 막는 지름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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