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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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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트] 한화① 베트남의 빈 사무실과 태평로의 조그만 사무실

[뉴스인사이트] 한화① 베트남의 빈 사무실과 태평로의 조그만 사무실
입력 2019-10-01 11:24 | 수정 2019-12-2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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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인사이트] 한화① 베트남의 빈 사무실과 태평로의 조그만 사무실
    "한화시스템이 한화그룹의 해외 물류를 싹쓸이하려 하고 있다…"
    "아들 3형제의 회사인데 결국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

    한화 그룹 내에 이런 말이 돈다는 제보가 얼마 전 탐사기획팀에 들어왔습니다. 신빙성이 있는 말일까. 먼저 전자공시를 살펴봤습니다. 공교롭게도 최근 한화시스템에 두 곳의 해외 법인이 생겼음을 알게 됐습니다. 한화시스템의 주 사업 분야는 한화 계열사의 시스템 통합과 소프트웨어 개발. 이 사업 분야와 얼른 연결이 되는 법인은 아니었습니다. 좀 더 자료를 찾아보니 지난 연말과 연초에 한화시스템이 베트남 현지에서 '물류'를 담당할 직원을 채용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뉴스인사이트] 한화① 베트남의 빈 사무실과 태평로의 조그만 사무실
    그래서 일단 직접 찾아가 몸으로 부딪혀보기로 했습니다. 한화시스템 베트남 사무실의 주소는 하노이 인근 '박닌'. 최근 한화그룹의 새로운 해외 생산기지로 떠오른 지역이었습니다. 찾아간 사무실에는 '한화 시스템 베트남'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실 안은 거의 텅 비어있었습니다.

    이웃 사무실에 물어봤습니다. 근처 다른 공장 안에 들어가 있다고 하더군요. 멀쩡한 사무실을 놔두고 왜 다른 곳에 가 있는 걸까. 수소문 끝에 직원들의 흔적을 찾은 곳은 같은 '박닌' 지역에 있는 한화테크윈 베트남 공장이었습니다. 한화시스템 직원들이 자기 사무실 대신 몇 개월째 이 공장으로 출근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한화테크윈의 물류는 가져왔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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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한화테크윈이 베트남 현지에서 공장을 돌리기 시작한 시점은 2017년이었습니다. 한화시스템이 베트남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것은 올해, 즉 2019년 4월부터였고요. 중간에 1년 이상의 시간이 빕니다. 그 사이 테크윈은 어떻게 수출입 물류를 처리하고 있었던 걸까요.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테크윈은 시스템과 상관없이, 2017년 베트남 현지 생산을 시작했을 때부터 한 한국계 중견업체에 물류를 맡겨왔습니다. 계약기간은 2020년까지 3년이었고요. 다시 말해 계약기간이 엄연히 1년 이상 남아있었는데 한화시스템이 테크윈과 협력업체 사이에 끼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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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한화시스템의 대주주들은 누구일까요? 3곳입니다. 한화그룹의 방위산업 지주회사 격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재무적 투자자인 헬리오스에스앤씨, 그리고 앞으로 이름이 자주 등장할 H솔루션입니다. H솔루션은 바로 김승연 회장의 아들 김동관, 동원, 동선 3형제의 회사입니다. 물류사업으로 한화시스템의 이익이 늘어나면 곧 3형제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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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몸이었던 한화시스템과 H솔루션

    그래서 한화시스템의 물류 끼어들기를 이해하려면 이 H솔루션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한화 계열사들이 모여있는 서울 태평로 한화금융플라자 건물. 11층 한쪽에는 H솔루션이 쓰던 조그만 사무실이 있습니다.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자산 3조 8천억 원에 순자산 1조 6천억 원, 계열사 120여 곳에 달하는 규모의 회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조그만 공간입니다. 특히 한화그룹의 차기 먹거리로 꼽히는 에너지와 유화 사업 분야의 주요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이 회사의 주인이 바로 동관, 동원, 동선 3형제입니다. 50%, 25%, 25% 이렇게 3형제가 지분을 전부 나눠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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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솔루션의 시작은 2001년, '한화S&C'라는 회사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한화는 시스템 통합, 소프트웨어 개발, 네트워크 구축 사업을 위해 한화SC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주식회사 한화와 김승연 회장의 소유였죠. 그런데 4년 뒤인 2005년 이 지분 전부가 3형제에게 넘어갑니다. 1주당 약 5천 원씩 쳐서 인수 금액은 약 30억원. 3형제가 23살, 21살, 17살에 불과할 때였습니다.

    인수자금은 어디서 났을까요? 출처는 아버지 김승연 회장의 '묻지마 채권'에서 시작합니다. '묻지마 채권'은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시장에 돈이 돌게 하려고 일시적으로 자금 출처를 묻지 않겠다며 발행한 비실명 채권입니다. 이 묻지마 채권을 이용해 아들들은 한화의 주식을 취득했고, 나중에 이 한화 주식 일부를 판 돈으로 한화S&C 인수 자금을 마련하게 되죠.

    2007년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당시 예일대에 다니던 차남 동원 씨가 서울 청담동의 한 가라오케에서 북창동 주점 직원들과 싸움에 휘말렸습니다. 아들이 이들에게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승연 회장은 직접 경호원들을 대동해 청계산과 북창동에서 주점 직원들에게 보복 폭행을 가한 사건입니다. 폭행 과정에서 전기 충격기까지 동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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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복폭행 사건 당시 경찰 소환 조사를 받았던 김승연 회장과 차남 김동원 씨

    이 2007년, 한화S&C의 지분 구조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인수 당시 3형제의 지분 비율은 4:1:1 로 장남 동관 씨의 지분율이 높았는데요, 3형제가 유상증자에 참여하며 2:1:1로 정리됩니다. 2005년과 2007년 유상증자에 3형제는 약 1천 3백억 원을 투입했습니다. 이 돈 역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돈이었습니다.

    한화S&C는 이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합니다. 그룹의 전산 업무를 독식하며 이익을 쌓아갔고, 현재의 한화 에너지 등을 인수하며 계열사도 급증합니다.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2005년부터 2016년까지 매출은 1천2백억 원에서 8천 5백억 원으로 약 7배 이상, 영업이익은 33억 원에서 1464억 원으로 44배 뛰었습니다. 매출은 한때 1조를 넘기도 했습니다.

    시민사회의 문제 제기,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압박

    당연히 문제 제기도 있었습니다. 먼저 3형제에게 회사가 넘어간 과정, 헐값매각 의혹 부분입니다.

    현재 청와대 정책실장이죠, 김상조 교수가 대표였던 경제개혁연대는 2007년경부터 3형제에게 S&C를 30억 원에 넘긴 것은 헐값 매각이라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는 검찰 수사와 민사 소송으로도 이어졌죠.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여기서 확인됩니다.

    [형사 1심 판결문]
    "한화가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에게 한화S&C 주식을 전부 매각한 것은 그룹에 대한 김동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민사 1심 판결문]
    "김승연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한화 S&C 주식 20만주를 차남과 삼남에게 주당 5,100원으로 산정하여 증여하였고, 그 후 장남인 김동관이 이 사건 주식을 매수함에 따라 한화S&C 지배구조는 피고 김승연의 세 아들이 소유하는 구조로 된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사건 주식 매각은 한화그룹에 대한 김동관의 경영권승계를 위한 목적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법원은 최종적으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합니다. 이사회 등의 내부 통제 절차를 거쳤고, 한화S&C 주식 매각 가격도 외부 회계법인이 산정했다는 점이 근거가 됐습니다.

    다음은 3형제 회사의 급성장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입니다.

    2015년 국정감사에서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졌는데요,한화S&C는 한화그룹 지주사인 주식회사 한화, 한화생명, 한화투자증권, 한화건설 등 주요 계열사들과 내부거래를 하며 급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내부거래 단가가 정상적인 경우보다 높아 계열사들이 3형제의 회사인 한화S&C로 이익을 몰아주고 있다는 것이 당시 정무위원회 의원들의 지적이었습니다. 한화증권이 전산업무 업체를 한화S&C에서 다른 곳으로 바꿨더니 수십억 원의 비용이 줄었고, 그동안 S&C가 그만큼의 이익을 봐왔다는 증거가 된다고 봤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이때부터 한화그룹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조사에 착수합니다. 이 조사는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데요, 지난해에는 한화그룹뿐 아니라 외부 협력업체로도 현장 조사를 나가는 등 조사를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조사를 받은 협력업체를 수소문해 찾아갔더니, 당시 공정위 조사관들이 한화S&C와 협력업체 사이의 계약, 담당자들끼리 주고받은 메일 등의 자료를 확보해 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즉 공정거래법은 제23조의2,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등 금지' 조항에서 총수 일가 사익 편취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규제 대상은 상장사의 경우 총수 일가 지분이 30% 이상, 비상장사의 경우 20% 이상인 기업입니다. 이 기업들에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를 하는 경우'가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가 됩니다.

    당시 한화S&C는 비상장사이기는 하지만 아들 3형제가 100% 소유한 곳이었기 때문에 규제 대상이 됩니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일감 몰아주기'인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한화S&C에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계열사들이 일감을 주었는가를 입증해야 하고, 그래서 계약 가격이 적정한지를 판단하는 일이 선행됩니다.

    그래서 탐사기획팀은 한화증권에서 일했던 직원도 접촉해 봤습니다. 이 직원은 IT 비용 절감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경쟁입찰, 다년 계약 등으로 계약 구조를 바꿨더니 한화S&C에 일을 맡겼을 때보다 100억 원 이상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는 도중 한화그룹으로부터 감사도 여러 차례 받는 등 힘들었다고 털어놨습니다.

    한화증권 대표였던 주진형 씨의 기억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서버 효율화 및 통합 관리를 한화S&C 대신 외부 업체에 맡기려 했는데, 이 외부 업체가 대형 고객인 다른 한화 계열사의 압박을 받아 결국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는 일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한화 측은 이 '일감 몰아주기 의혹'은 공정위의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입장을 내기는 곤란하다고 밝혀왔습니다.

    한화S&C의 변신, 한화S&C → 한화시스템

    국정 농단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문재인 대통령으로 정권이 바뀐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첫 공정거래위원장으로 김상조 교수가 임명됩니다. 앞서 보셨듯, 한화 그룹의 경영권 편법 승계 의혹을 꾸준히 지적해온 경제개혁연대 출신입니다.

    그리고 2017년 하반기부터 한화S&C의 환골탈태가 시작됩니다. 1단계는 분할이었습니다. 한화S&C를 H솔루션과 한화S&C, 이렇게 위아래로 분할합니다. H솔루션이 주인이 되고 한화S&C는 자회사로 가는 구조였습니다. 당연히 동관, 동원, 동선 3형제는 H솔루션의 100% 주인으로 남습니다. 즉 3형제는 형식적으로는 그룹 내 일감을 소화하는 한화S&C의 지분을 갖지 않게 됐습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기준인 ‘총수일가 지분율 20%’에서 자유로워진 겁니다.

    이듬해인 2018년, 이번에는 2단계로 한화S&C를 한화시스템과 합병시킵니다. 한화시스템은 항공전자장비 및 감시, 정찰 장비, 각종 통신 시스템 등을 만드는 방위산업체입니다. 사명을 한화시스템으로 정하면서 한화S&C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H솔루션과 한화시스템이 남습니다.

    분할과 합병 과정에서 3형제 회사인 H솔루션은 한화S&C 지분의 일부를 매각했습니다. 매각으로 약 3천 4백억 원의 현금이 들어온 것으로 공시가 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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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H솔루션은 직접 사업을 하지는 않고 한화 그룹 주요 계열사의 지분만 갖고 있는 형태의 회사입니다. 그래서 큰 사무실도 필요 없죠. 법적인 지주회사는 아니지만 일종의 지주회사와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드렸듯 차기 성장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에너지와 유화 계열사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자산 3조 8천억원, 순자산 1조 6천억원에 이르고 국내외 계열사는 120곳 정도 됩니다. 그룹 내 전산 일감을 독식하며 급성장한 덕분에 이런 사업 확장이 가능했습니다. (사진출처: 공정거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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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가 좀 길었죠.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아들 3형제가 인수자금과 유상증자 자금 약 1천 3백억 원으로 한화S&C를 가지고 왔습니다. 모두 아버지 김승연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이었죠. 이 회사는 그룹 내 일감 독식으로 급성장하며 그룹의 차기 먹거리 분야로 덩치를 키워왔습니다. 공정위의 압박이 높아지자 이미 충분히 과실을 가져다준 시스템 통합, 전산 사업을 하는 부분만 떼어내며 일부를 매각해 현금을 챙깁니다. 3형제는 이미 ‘본전’은 회수했습니다. 그리고도 3형제의 손에는 가치가 훨씬 큰 순자산 1조 6천억 원의 회사가 남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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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맏아들 김동관 씨를 제외한 형제들은 경영 성과보다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더 알려진 면이 있습니다. 둘째 김동원 씨는 대마초를 피웠다가 유죄를 받은 그 해, 한화에 입사해 2년 뒤 임원 자리에 올랐고요, 막내 김동선 씨는 잇단 술집 난동으로 호된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3형제는 아버지의 돈과 그룹의 일감으로 14년 만에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1조 6천억짜리 회사의 주인이 된 동시에 공정위의 규제에서도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마법을 가능하게 했던 한화S&C, 즉 현재의 한화시스템은 이제 그룹의 물류를 가져오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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