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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의 맥스MLB] 부동산, 월드컵, MLB, 그리고 2023년의 불확실성

[전훈칠의 맥스MLB] 부동산, 월드컵, MLB, 그리고 2023년의 불확실성
입력 2023-01-06 10:50 | 수정 2023-01-06 14:01
오는 3월 개막을 앞둔 2023 WBC

오는 3월 개막을 앞둔 2023 WBC

부동산 전문가 A집단

"2022년에 서울 집값은 대체로 10퍼센트 정도 오를 것이다. 주택 매매량을 좌우할 부자들은 레버리지를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금리는 부동산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최근 5년간 아파트 가격 지수 그래프를 보면 거래량이 주춤할 때마다 하락설이 제기됐지만 결국 다시 상승하는 추세를 반복했다. 따라서 하락세는 일시적일 뿐이다. 여러 수치를 봐도 집값이 떨어질 요인이 안 보인다."

부동산 전문가 B집단

"시장의 흐름을 보려면 대중 심리를 알아야 한다. 상승기에는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은 물론, 오피스텔과 생활형 숙박 시설에까지 수요가 몰리지만 바람이 불고 지나간 뒤에는 거짓말처럼 매수세가 사라진다. 집값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이자 부담까지 더해져 개별 주체들의 심리적 압박도 커진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무리한 매수로 인한 갈등이 가정을 붕괴시키는 장면도 과거 여럿 봤다. 따라서 실거주용 주택이라도 팔 수 있으면 팔아야 한다."

1년 전, 주요 부동산 유튜버들이 전망한 2022년 부동산 시장의 흐름은 대체로 둘 중 하나였다. 흔히 상승론과 하락론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어떤 의견이 더 현실에 부합했는지는 명확하다. 물론 누가 더 옳은지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나름의 논리만 갖춘다면 누구나 전망할 수 있고, 어떤 의견에 귀를 기울일지도 각자의 자유다.

개인적으로 흥미롭다고 생각한 지점은 따로 있었다. A측 전문가들은 대체로 각종 수치와 지표를 그래프로 보여주며 형식적 논리를 갖추는 것에 높은 비중을 뒀다. 반면 B측으로 분류되는 전문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부동산 시장의 사이클이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하려 했다.
대구 수성구의 아파트 전경

대구 수성구의 아파트 전경

상승 분위기가 우세하던 당시에는 외형적으로 통계적 구성까지 갖춘 A측 전문가들의 시각이 더욱 설득력 높은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B측 전문가의 의견은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비판받곤 했는데, 특히 통계나 수치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게 치명적인 약점으로 지적받곤 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실제 주장하는 논리의 타당성보다 데이터를 얼마나 보기 좋게 활용하는지가 설득력을 좌우하는 수준이었다.

이 과정에서 무엇이든 단정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어렵다는 당연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리 부동산 시장이 경제 분야의 주요 분석 대상이 되었다 해도 결국 누군가가 내세운 공식이나 지표에 따라 흘러갈 리는 없다. 과거의 통계는 지나간 시장의 흐름을 분석할 때 제한적으로 유의미한 정도였다. 통계는 미래를 전망하는 도구라기보다 과거를 제대로 반추하도록 돕는, 그래서 향후 실패 확률을 줄이는 수단으로 의미가 컸다. 본질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은 사람과 사람이 작용과 반작용을 거친 결과로 형성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애초에 명확한 숫자로 입증될 성격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불확실성을 지닌 채 흘러가는 게 당연했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 포레온 현장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 포레온 현장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대표적인 분야가 스포츠다. 예측대로 흐르지 않으면서 매번 명확하게 승부의 결론까지 나온다는 점 때문에 전 세계 수많은 종목의 결과를 놓고 온갖 베팅이 이루어진다. 스포츠는 이변을 먹고 산다고 해도 될 정도다. 지난 카타르 월드컵 역시 스포츠의 불확실성이 새삼 확인된 대회였다. 스페인전에서 역대 최소인 18%의 점유율로 승리를 거둔 일본 대표팀. 압도적인 공격 지표의 우위를 점하고도 가나에 패했던 대한민국 대표팀. 그렇게 만들어진 기반 위에서 실낱같던 16강행을 결정한 포르투갈전 승리까지. 모두 수치로 정의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얽히고설켜 이야기가 완성됐다.

축구는 통계로 규정하기 어려운 종목 가운데 하나다. 실시간으로 물리적인 충돌이 반복되는 속성 탓에 더 그렇다. 그래서 숫자로 축구의 현상을 규정하는 일은 드물다. 통계적 접근이 한층 왕성해진 현대 축구에서도 기대 득점 값을 통한 다양한 분석이 등장하곤 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통계로 미래를 단정하거나 명제를 만들어내는 일은 흔치 않다. 손흥민이 포르투갈 수비수의 다리 사이로 패스한 공이 황희찬의 발등에 얹혀 반대쪽 골망을 흔들 확률 따위는 굳이 분석하지 않는다. 통계를 활용하더라도 그저 지나온 흔적을 다채롭게 분석해 풍성한 의미를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추가 시간에 손흥민 근처까지 질주해 득점할 확률을 구할 필요는 없다.

추가 시간에 손흥민 근처까지 질주해 득점할 확률을 구할 필요는 없다.

야구도 '공은 둥글다'라는 말로 대변되는 불확실성의 스포츠다. 심지어 배트도 둥글다. 일반적인 우승팀의 승률을 보면 축구보다 더 이변이 잦은 종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유독 야구에서는 '불확실성의 일반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통계나 수치로 미래를 규정하려는 의견을 종종 볼 수 있다. 야구의 특성상 통계로 접근할 수 있는 면이 넓고, 다양한 가설이 수식으로 구성될 여지도 많기 때문이다. 어떤 접근이든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는 것이라면 환영할 일이다. 다만 이런 시도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공감을 얻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2000년대 이후 세이버메트릭스가 패러다임을 주도하면서부터 일부에서 이를 오남용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타자가 타구의 발사 각도를 조절하면 홈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상식인 것처럼 말하지만, 의도적으로 발사 각도를 고려해 배트를 휘두르는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탐구는 많지 않다. 발사 각도를 조절해 성과를 거둔 사례는 조명되지만, 비슷한 과정을 시도하다 망친 선수는 잘 언급되지 않는다.
'발사 각도 혁명'은 현대 야구를 차별화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발사 각도 혁명'은 현대 야구를 차별화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새로운 통계 지표가 등장할 때 이런 현상은 더 두드러진다. 경기 중 인플레이 된 타구의 타율을 뜻하는 '바빕(BABIP)'이론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그랬다. 간단히 말하면 투수는 홈런, 볼넷, 삼진 이외의 인플레이 타구는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특정 선수의 능력을 평가하거나 미래를 전망하는 이론이다. 이전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야구의 단면을 짚어낸 것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음에도, 일부에서는 이것을 기존 사고 체계를 뒤흔들 혁명으로 여겨 과도하게 해석한 나머지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대중적인 평가 기준으로 자리 잡은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WAR)'도 마찬가지다. 투수와 타자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는 획기적인 지표임은 분명하지만, 역시 이를 과대 해석해 ‘줄 세우기’의 절대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선정하는데 WAR만으로 순위를 매기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어떤 두 선수를 비교할 때 WAR의 차이가 크다면 굳이 WAR 수치를 이용하지 않고도 누가 더 나은지 가려낼 수 있다. 대신 WAR 수치의 차이가 크지 않다면 통계로 판단할 수 없는 지점에서 사람마다 의견 차이가 발생한다. 그러한 관점의 차이가 건강한 논쟁으로 이어질 때 야구가 더 풍성해진다. WAR로 줄 세우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면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결정할 때 단 한 경기도 직접 볼 이유가 없다. 선수들이 박스 스코어의 빈칸을 채우고 WAR 수치를 쌓기 위해 방망이를 든 채 노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앨런 크레이그는 클러치 히터로 기억될 만한 선수다.

앨런 크레이그는 클러치 히터로 기억될 만한 선수다.

'클러치 히터는 없다'는 말에도 비슷한 지점이 있다. 득점권 타율이 일시적으로 높을 수는 있지만 결국 통산 타율에 수렴한다는 상식적인 주장이다. 다만 단일 시즌의 '플루크'로 팀 성적에 영향을 끼친 선수라면 충분히 '클러치 히터'로 대우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2012년 세인트루이스에서 뛴 앨런 크레이그는 시즌 타율 0.307에 득점권 타율은 0.400에 달했다. 2013년 크레이그의 시즌 타율은 0.315, 득점권 타율은 무려 0.454였다. (통산 득점권 타율도 0.341로 통산 타율 0.276보다 높았다.) 세인트루이스는 2012년 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했고, 2013년에는 내셔널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세인트루이스의 경기에서는 크레이그가 등장할 때마다 팀 득점이 이어지는 생산적인 상황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세인트루이스 팬들이 크레이그를 클러치 히터로 추억할 때, “클러치 히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입니다.”라고 정색할 이유는 없다.

'세이버메트릭스의 대부' 빌 제임스는 "모든 게 놀랄 만한 정보로 가득 차 있는 통계 지표라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전혀 놀랄 만한 정보가 없는 통계 지표라면 쓸모없는 것이다. 그런데 80퍼센트 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정보이고, 20퍼센트 정도만 놀랄 만한 정보를 지닌 통계 지표라면 뭔가 괜찮은 것이다"라고 했다. 파격적인 실험도 공감을 얻는 지점이 있어야 의미를 확장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제임스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아무리 야구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해도 어떤 선수가 다음 시즌에 얼마나 좋은 성적을 거둘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고도 썼다.

홈스쿨링을 하던 아들과 클럽하우스에 매일 동행하던 것이 금지되자 150억 원의 연봉을 과감히 포기하고 은퇴한 애덤 라로시. 올드 유니폼 행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라커룸에 걸린 유니폼을 가위질해 선발 등판이 취소된 크리스 세일. 이런 해프닝은 팀 분위기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사건이고 사회적으로도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어떤 수치로도 계량할 수 없다.
아들 문제로 돌발 은퇴한 '라로시 사건'은 사회적 이슈로 다뤄졌다.

아들 문제로 돌발 은퇴한 '라로시 사건'은 사회적 이슈로 다뤄졌다.

영화 '헤어질 결심'을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박찬욱 감독과 협업한 정서경 작가는 최근 TV 프로그램에서 한 편집 감독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컷의 순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성해 독특한 세련미를 드러내는 편집 감독의 노하우를 소개하면서, 이런 노하우가 책이 아닌 사람에게만 들어있고 인격을 통해서만 나온다는 것이 흥미롭다고 했다. 사람이 만들어가는 일의 특수성에 주목한 의견으로 부동산 시장은 물론 축구와 야구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최근 집값이 하락세를 그리자 그동안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던 몇몇 부동산 전문가들이 관련 수치와 통계를 적극적으로 보여주곤 한다. 하지만 그런 그래프에 참고 사항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 명제를 만들거나 미래를 단정하려 한다면 역시 왜곡된 결과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에드먼이 녹아든 대표팀의 승리 확률은 어떻게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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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적인 전망에 비중을 둔다면 오는 3월 벌어질 WBC에서도 우리나라 대표팀에 긍정적인 기대만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통계가 지배하기 전에 결판이 나는 단기전 승부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저 현상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월드컵과 같은 의미를 남겨주면 좋겠다는 기대뿐이다. 다양한 통계의 역할은 우리 선수들이 뛰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분석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반드시 수치로 예측하는 지식인이 되거나 해외 통계 지표를 먼저 번역해 소개하는 '통계의 문익점'으로 나설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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