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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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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M본부] '고발 사주'와 2020년 4월 3일

[서초동M본부] '고발 사주'와 2020년 4월 3일
입력 2021-11-13 09:01 | 수정 2021-11-1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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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동M본부] '고발 사주'와 2020년 4월 3일
    2020년 4월 3일. 평범한 사람들은 짐작하기 어려운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단 하루 만에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단지 우연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운 일들이 연달아 벌어졌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2020년 4월 3일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4월 3일 오전 03:02

    한 주의 고된 일상을 마무리 하고 많은 이들이 잠들었을 법한 야심한 시각. '친여 브로커 "윤석열 부숴봅시다"… 9일뒤 MBC '檢·言 유착' 보도'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기사가 올라옵니다. 기사 입력 시각은 '2020.04.03. 03:02'.
    [서초동M본부] '고발 사주'와 2020년 4월 3일
    기사 내용의 핵심은 'MBC'가 2020년 3월 31일에 첫 보도를 시작했던 이른바 '채널A 사건' 보도의 제보자가 '현 정권 골수 지지자' 지 모씨라는 겁니다. 골수 지지자라는 표현은 해당 보도를 그대로 인용한 건데요. 이 기사는 '횡령과 사기 등으로 복역했다'며 지 씨의 과거 범죄정보도 보도했고요. 지 씨가 스스로를 '제보자 X'로 칭해오면서, '뉴스타파'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관련 제보를 했다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해당 기사는 같은 제목으로 4월 3일자 '조선일보' 1면과 12면에 실렸었죠. 1면 기사인 걸 보면, '조선일보' 자체적으로는 꽤 엄중한 사안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마치 앞서 연일 이어지던 'MBC'의 '채널A 사건' 보도가 사기 범죄로 옥살이를 한 사기꾼과 'MBC'의 정치 공작인 것처럼 말이죠.

    해당 '조선일보' 기사는 좀 꼼꼼히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협박성 취재' 의혹을 'MBC'에 제보한 건 '조선일보' 보도에 나온 것처럼 '제보자X'로 불렸던 지 씨가 맞습니다. 하지만 이 전 기자는 지 씨와 마지막으로 연락했던, 지난해 3월 23일까지도 지 씨의 정체는 물론, 이름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이 전 기자와 지씨의 통화 내용을 들어보면, 이 전 기자가 "아니 이름을 말씀을 좀 해주세요. 이름을, 제가 회사에 면목이 없잖아요. 지금 저 이거 때문에 저 회사에서 무지하게 혼났어요"라며 지 씨에게 호소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서초동M본부] '고발 사주'와 2020년 4월 3일
    하지만 지씨는 끝내 이동재 전 기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동재 전 기자 뿐 아니라 '채널A' 측에서는 그보다 열흘 가까이 지난 2020년 4월 1일까지도 제보자 지 씨의 정체를 알지 못한 걸로 보입니다. 당시 채널A 사회부장이었던 홍 모 기자는 지난해 11월 열린 이 전 기자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2020년) 4월 1일도 MBC의 (채널A 사건)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 모 씨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동재가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고 증언합니다.
    [서초동M본부] '고발 사주'와 2020년 4월 3일
    이동재 전 기자도 '채널A'측도 그저 지 씨를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의 대리인' 정도로만 파악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틀 뒤인 2020년 4월 3일 새벽 '채널A'도 몰랐던 지 씨의 정체를 '조선일보'가 파악해 보도합니다. 3일 새벽에 보도가 나왔으니, 못해도 하루 전인 2일에는 취재가 됐고 기사가 작성이 됐을 겁니다. 상황이 영 어색합니다. 사안을 직접 취재했고, 한 달 이상을 지 씨와 연락했던 이동재 전 기자도 모른 지 씨의 정체를 '조선일보'가 알다니요. '조선일보'는 그의 정체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4월 3일 오전 10:03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월, 20년간의 검사직에서 물러납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3일 당시에는 제21대 총선에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서울 송파 갑’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자 신분이었습니다. 열흘 여 앞으로 다가온 선거 준비로 몹시 바쁠 시점이었는데요. 김 의원은 당시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던 '제보자' 조성은 씨에게 전화를 겁니다. 조성은 씨가 전화를 받은 시각은 오전 10시 3분. 두 사람은 정확히 7분 58초 동안 통화를 이어갑니다.

    김 의원은 조 씨와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이동재 기자가 이철에게 협박했다 뭐 이렇게 나오는 거 있잖아요. 이동재가 한동훈(검사장)인 것처럼 가장해서 녹음을 한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곧 이어서 문제의 그 발언. "그래서 고발장 초안을 아마 ‘저희’가 만들어서 보내드릴게요"라고도 덧붙입니다. 그러면서 "안양 동안 지역구에 출마하는 민병덕(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이랑 황희석(당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이 (채널A 사건의) 배후"라고 지목하며, "이런 자료들이랑 이런 것들을 좀 모아서 드릴 테니까 그거하고 고발장을 남부지검에 내랍니다"고 조 씨에게 얘기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남부 아니면 조금 위험하대요"라는 깨알 당부와 더불어.
    [서초동M본부] '고발 사주'와 2020년 4월 3일
    4월 3일 오전 10:12

    김 의원과 조 씨의 통화가 끝난 직후인, 오전 10시 12분. 김 의원은 조 씨에게 '손 준성 보냄'이라고 찍힌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냅니다. 텔레그램 메시지는 누군가에게 받은 메시지를 그대로 제3자에게 전달할 경우, 최초에 보낸 사람의 이름이 찍히는데요. '손 준성 보냄'이라고 찍혔다는 건 결국, 최초 손준성 검사가 보낸 메시지를 김웅 의원이 직접 받아 조성은 씨에게 전달했든지, 혹은 손 검사가 보낸 메시지를 누군가를 통해 김 의원이 받아 조 씨에게 전달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당시 김 의원이 조 씨에게 보낸 ‘손 준성 보냄’ 메시지들은 88장의 페이스북 글 캡처사진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사기꾼과 MBC의 콜라보’라는 제목으로 쓴 페이스북 글입니다.
    [서초동M본부] '고발 사주'와 2020년 4월 3일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요. 김 의원은 앞서 언급했던 '조선일보' 기사 링크도 함께 조성은 씨에게 보냈습니다. '채널A 사건' 보도의 제보자 정체를 폭로한 바로 그 기사 말이죠. 그것도 어떤 자료보다도 가장 먼저 전송했습니다. 다시 말해, 첫 번째 '손 준성 보냄' 메시지는 '조선일보'의 '친여 브로커 "윤석열 부숴봅시다"… 9일뒤 MBC '檢·言 유착' 보도' 기사 링크였습니다. 그만큼 해당 기사는 고발을 위한 중요 자료였던 걸로 보입니다. 마치 보도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고발을 위한 첫 번째 자료로 해당 기사가 조 씨에게 전송됐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손 준성 보냄' 자료가 언제부터 준비됐는지. 이 자료가 수집된 시점 말이죠. 'MBC' 취재 결과, 이 자료가 늦어도 4월 2일부터 준비됐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아래 기사는 '"윤석열 최측근 검사장 오리발"…황희석, 녹취록 공개'라는 제목의 '이데일리' 기사입니다.
    [서초동M본부] '고발 사주'와 2020년 4월 3일
    보시는 바와 같이, 2020년 4월 2일 오후 6시 12분에 등록됐습니다. 황희석 변호사(당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가 ‘채널A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기사화한 건데요. 해당 기사에는 황희석 변호사의 페이스북 글 캡처 사진도 올라와 있습니다.
    [서초동M본부] '고발 사주'와 2020년 4월 3일
    캡처 사진에 '3시간'이라고 적힌 것 보이시죠. 황 변호사가 글을 작성한 3시간 뒤에 해당 기사를 쓴 기자가 캡처를 한 걸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아까 기사가 등록된 시간이 오후 6시 12분이었으니, 기자가 기사가 노출되기 직전에 사진을 캡처했다고 가정하더라도, 황 변호사의 글은 2일 오후 3시쯤에는 작성됐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자가 더 일찍 캡처했던 거라면 그보다 훨씬 이전에 글이 올라왔던 것이 되겠죠.

    아래 그림은 김웅 의원이 조성은 씨에게 오전 10시 12분 보낸 '손 준성 보냄' 파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서초동M본부] '고발 사주'와 2020년 4월 3일
    이오하는 ‘채널A 사건’ 제보자 지 씨입니다. 지 씨가 '이데일리' 기사에서 언급됐던 황 변호사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한 건데, 두 글 모두 6시간 전쯤에 작성됐습니다. 앞서 제가 황 변호사의 글이 아무리 늦어도 2일 오후 3시를 전후해 작성됐다고 추정했었죠. 그런데 글이 작성된 지 6시간 뒤에 캡처가 됐으니, 해당 글에 대한 캡처는 아무리 늦어도 2일 밤 9시쯤 이뤄졌다고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근데 잊지 마셔야 할 게 있습니다. 앞서 ‘채널A 사건’ 제보자 지씨의 정체가 세상에 드러난 건 3일 새벽 3시 2분에 노출된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서입니다. 그런데 '손 준성 보냄' 메시지에 첨부된 파일에는 이미 지씨의 정체를 알고 준비했다는 듯, 이오하(지씨)의 페이스북 글 캡처 사진이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당사자인 이동재 전 채널A 기자도 몰랐던 지씨의 정체를 '조선일보'는 알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보도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부터 이미 지씨의 페이스북 글을 누군가 캡처했던 겁니다. 이런 일은 과연 누가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 더. 지씨는 3일 아침 '조선일보' 보도로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 것을 확인한 뒤, 곧장 본인의 페이스북을 폐쇄했습니다. 해당 '조선일보' 기사를 확인한 뒤에야 지씨의 페이스북 글들을 캡처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겁니다.

    지씨와 지난 6일 직접 통화했습니다. 이동재 전 기자에게 철저히 신분을 감추긴 했지만, 노출한 정보는 없었는지 물었습니다. 지씨는 유일하게 "본인 명의의 휴대폰 번호를 이 전 기자에게 알려줬다"고 말했습니다. 지씨와 이 전 기자는 실제 여러 차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뿐입니다. 휴대전화 번호만으로는 이 전 기자가 지씨의 정보를 알아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수사기관은 다릅니다. 누군가의 전화번호만으로 신원을 특정할 수 있습니다.
    [서초동M본부] '고발 사주'와 2020년 4월 3일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을 보면, 전기통신사업자, 다시 말해 이동통신사들은 법원,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등 사정기관이 재판이나 수사 등을 위해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하면 응할 수 있습니다. 법 조항이야 요청에 따를 수 있다고 나와 있지만, 통신사들이 검찰 등 사정기관의 요청을 거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사정기관들이 받는 통신자료에는 해당 휴대전화 번호 가입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 등이 포함되는데요. 게다가 통신자료는 법원의 영장 없이도 사정기관이 요청해 받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지 씨의 휴대전화 번호만으로 신원, 나아가서 범죄 이력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는 건 사정기관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 가운데서도 채널A 사건 보도가 기본적으로 '검-언유착' 의혹을 다뤘던 만큼, 검찰이 가장 의심되는 상황이고요.

    4월 3일 오전 중

    시간을 특정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고발사주 관련한 수상한 정황을 'MBC' 취재로 밝혀낸 게 있습니다. 적어도 4월 3일 오전 중에 '채널A 사건' 제보자 지 씨의 과거 범죄에 대한 판결문을 현직 검사 2명이 검색했다는 사실입니다. 검색자는 성상욱 부산지검 서부지청 인권보호관과 임홍석 대검 검찰연구관입니다. 지 씨의 판결문을 검색할 당시에 두 사람은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으로 꼽히는 손준성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밑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성상욱 검사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수사정보2담당관이었고, 임홍석 검사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 검찰연구관이었습니다. 이들은 왜 하필 그날 지 씨의 판결문을 검색해봤을까요. 3일 아침 '조선일보' 보도를 보고 지 씨의 정체가 갑자기 궁금해졌을까요. 하지만 문제의 '조선일보' 보도에는 지 씨의 실명이 나와 있지 않아, 보도만 보고서는 지 씨의 판결문을 검색할 수 없었을 겁니다.

    4월 3일 오후 1:47

    김웅 의원은 조성은 씨에게 지 모씨의 과거 범죄에 대한 실명 판결문 3건을 텔레그램으로 보냅니다. 역시나 파일에는 ‘손 준성 보냄’이 적혀있고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명판결문이라는 겁니다. 실명판결문은 해당 사건 피고인과 판사, 그리고 검사만이 검색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손준성 검사 휘하 성상욱 검사와 임홍석 검사는 3일 오전 지씨 판결문을 검색했습니다. 판결문이 김웅 의원으로부터 조성은 씨에게 넘어간 2020년 4월 3일 오후 1시47분 이전에 말이죠. ‘손 준성 보냄’ 파일에 포함된 지씨의 실명판결문이 전송되기 직전에, 하필 손준성 검사 아래서 일하는 검사 2명이 해당 판결문을 검색했다니, 참 묘하기만 합니다.
    [서초동M본부] '고발 사주'와 2020년 4월 3일
    4월 3일 오후 4:19

    이날 오전 김웅 의원이 조성은 씨에게 전화를 걸어 언급했던 '저희가 만들어 보낸다는 고발장'이 드디어 조 씨에게 도착합니다.
    [서초동M본부] '고발 사주'와 2020년 4월 3일
    3일 오후 4시 19분에 말이죠. 총 20장짜리 고발장에는 피고발인으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유시민 작가, 황희석 변호사 등 범여권 인사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고발장에 적시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윤석열 총장 당시 '검찰에 대해 적대감정을 가진 상태에서 검찰을 흠집 내려는 보도를 한' 언론인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고발장을 찬찬히 읽어보면, 3일 오전 10시 12분에 김웅 의원이 조성은 씨에게 보낸 '손 준성 보냄' 파일들의 전송 순서대로 서술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일 오전에 자료가 먼저 오고, 오후가 돼서야 고발장이 도착하긴 했지만, 이미 고발장 초고가 완성된 상태에서 자료가 오고, 고발장 내용이 보완·수정된 다음에 조 씨에게 고발장이 전송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특히 고발장 내용 중에 눈길이 가는 내용이 있었는데요. 피고발인으로 함께 올랐던 ‘채널A 사건’ 제보자 지씨에 대한 내용입니다.

    '지○○은 사기죄 등으로 수회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되었던 전력이 있고, 구속됐을 당시, 자신이 알고 있는 타인의 범죄정보를 검찰에 제공하는 등 수사 협조를 하겠다는 것을 빌미로 검사실을 드나든 사실이 있었다.'
    [서초동M본부] '고발 사주'와 2020년 4월 3일
    휴대전화 번호를 통해 특정인의 범죄 정보를 확인했고, 이 사람의 검사실 출입 사실까지 샅샅이 알고 있는 사정기관은 대체 어디였을까요.

    4월 3일 오후 4:25

    3일 오후 4시 25분. 고발장을 보낸 김웅 의원은 조성은 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9분 39초간의 통화가 이어졌습니다. 이 당시 통화 내용을 들어보면, 김웅 의원이 직접 검찰에 가서 고발장을 제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 의원은 "(대검찰청에 직접) 찾아가야 되는데, 제가 가면 '윤석열이 시켜서 고발한 것이다'가 나오게 된다"고 우려합니다.
    [서초동M본부] '고발 사주'와 2020년 4월 3일
    그러면서 "언론장악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동원해서 가는 게 낫겠다"며 "검찰색을 안 띄어야 한다"고 조 씨에게 조언합니다. 김 의원은 본인이 친정이었던 대검 쪽에 이야기를 해 놓겠다고도 합니다. "일단 월요일날(2020년 4월 6일) 고발장, 만약 (내러) 가신다고 그러면 그쪽에다가 이야기를 해 놓을게요. 그래서 적당한 수순이 나가고. 너무 막 편하게 하면 안 되니까”라고 말이죠. 김 의원은 “검찰이 받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받는 것처럼 하고"라며 조씨에게 세심한 지도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의원은 아무래도 불안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통화 말미에 조씨에게 "고발장 요 건 관련해가지고 저는 쏙 빠져야 된다"고 하거든요. 김 의원은 대체 뭐가 그렇게 마음에 걸렸을까요.

    집단적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검사님들

    '손 준성 보냄' 파일들을 보낸 손준성 검사 측은 '파일을 보낸 경위가 기억이 안 난다'는 입장인 걸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게 받은 자료를 반송했을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검찰 관계자에게 자료들을 보낸 뒤 '검찰에 접수시켰다'고 간주하는 경우가 있어서, 자료를 접수한 것이 아니라는 뜻에서 그렇게 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서초동M본부] '고발 사주'와 2020년 4월 3일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최초 전송자의 이름이 남는다는 텔레그램의 매커니즘을 고려하면요.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받은 파일들을 손 검사가 반송했다면, '손 준성 보냄'이 아니라 손 검사에게 파일을 보낸 사람의 이름이 나와야 한다는 거죠. 가령, 제가 손 검사님께 고발장을 전달한 것을 손 검사님이 '거부한다'는 뜻으로 다시 제게 보내줬다면 '손 준성 보냄'이 아니라 '이 재욱 보냄'이 떠야 되는 겁니다.

    '손 준성 보냄'이 메시지에 표시되게 반송하는 방법, 물론 있습니다. 제가 보낸 파일들을 손 검사님이 일일이 다 다운로드 받은 뒤에 저에게 다시 보내면, 그 파일에 '손 준성 보냄'이 뜨게 됩니다. 그런데 검찰 외부의 신뢰할 수 없는 관계자로부터 확인되지 않은 고발장과 자료들이 들어왔는데, 그걸 반송한다는 의미로 수백 장의 파일들을 일일이 정성스럽게 다운받아 다시 보낸다? 상식적이지는 않아 보입니다. 더구나 '손 준성 보냄' 메시지에는 손 검사가 직접 '제보자 X가 지00임'이라고 지씨의 실명을 입력한 메시지도 포함돼 있습니다. 단순히 누군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반송했다기 보다, 적극적으로 어떤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파일을 보낸 것이 아닌가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대목입니다.

    김웅 의원은 조성은 씨와의 통화 내용에 대해 시종 일관 "기억이 안 난다"는 입장입니다. 지난 3일 피의자 신분으로 공수처에 조사를 받을 때는, 김 의원이 "공수처가 윤석열 수사처가 되고 있다", "(고발 사주 의혹 수사는) 공수처를 이용한 선거 개입 사건"이라고 작심발언을 하기도 했는데요. 그런데 조성은 씨와의 통화내용이나 고발장은 누구에게 받았느냐 등 사건의 사실 관계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는 시종일관 "기억이 안난다"고만 했습니다.
    [서초동M본부] '고발 사주'와 2020년 4월 3일
    걱정입니다. 검사님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기억 상실증에 빠지신 것 같습니다. 물론,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저도 처음에는 2020년 4월 3일에 제가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을 못 했습니다. 여간해서 1년 반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런데 제 휴대전화 달력을 보니, 2020년 4월 3일 저녁에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라고 적혀있더라고요. 그제야 생각이 났습니다. 교대역 곱창집에서 친구들과 소주 한 잔 했던 그 날의 기억이.

    처음에는 기억이 안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고발사주 의혹에 검찰이 연루됐을 거라고 의심되는 정황들이 계속 드러나는 데도 여전히 검사님들이 기억이 안 나신다고 하니 의아한 것도 사실입니다. 고발 사주를 의논하시려 직접 통화하시던 목소리가 공개됐고, 사주 고발장을 보냈던 메시지가 버젓이 누가 보냈는지 기록돼 남아 있는데도 말이죠. 우연의 우연의 우연이 계속 겹친 일일 뿐인데 제가 발칙한 상상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고발 사주 의혹을 취재하면 할수록 우연이라고만 하기엔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저 기억이 안 난다고 되풀이하시는 검사님들의 운명에 이 기가 막히게 연속되는 한 날의 우연들이 결국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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