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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이한열 군 장례식 거행[유기철]

이한열 군 장례식 거행[유기철]
입력 1987-07-09 | 수정 1987-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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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열 군 장례식 거행]

    ● 앵커: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다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져서 끝내 숨진 이한열 군의 영결식이 오늘 연세대학교에서 치러졌습니다.

    이군의 운구행렬은 시청 앞까지 행진을 한 다음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오후 5시 40분 장지인 광주에 도착했습니다.

    ● 기자: 이한열 군의 영결식은 오늘아침 7시 유가족과 학생 각계 인사 등 수 만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연세대학교 본관 앞 광장에서 거행됐습니다.

    연세대 총학생회 주관아래 임명상 교목실장에 집례로 시작된 영결식은 묵념과 지산 스님의 식사 각계 대표의 조씨와 조사낭독 그리고 참석자들의 헌화 축도의 순으로 이어졌으며 기독교식으로 2시간이 넘게 진행됐습니다.

    영결식에는 이군의 유가족과 안세희 총장 등 연대교수와 학생, 김영삼 민주당 총재와 김대중 민추협 공동의장 등이 참석했고 재야인사와 시민을 포함한 수 만 명이 이를 지켜보았습니다.

    200개의 각종 만장이 연세대 식장부근에는 이른 아침부터 조문객들이 붐볐으나 영결식은 질서 있고 차분하게 진행됐습니다.

    영결식을 마친 이군의 유해는 꽃으로 덮힌 영구차에 실려 아홉 시 반쯤 대형태극기와 이군의 영정을 앞세우고 재단을 출발해 교문을 빠져 나갔습니다.

    오전10시20분쯤 신촌로터리에 도착한 장의행렬은 10분 동안 간단한 노제를 지내고 10시40분쯤 시청으로 향했으며 이때 수만 명의 학생과 시민들은 질서를 유지하면서 영구차를 따랐습니다.

    오전 11시 반쯤 시청 앞에 도착한 운구행렬은 광장을 메운 인파로 혼잡해지자 간단한 묵념화를 올린 다음 시청 앞을 떠났으며 오후1시쯤 양재동 톨게이트를 통과해서 광주로 떠났습니다.

    이군의 운구행렬은 10대의 선도 차량을 맨 앞으로 해서 영구차가 그 뒤를 따랐으며 유가족과 장례위원이 탄 승용차 그리고 관광버스와 취재차량들이 뒤를 이었습니다.

    예정보다 1시간 이상 늦어진 운구행렬은 오후 2시 반쯤 옥산 휴게소에서 휴식시간을 갖고 경찰순찰자의 선도로 오후 5시 40분 광주에 도착했습니다.

    MBC뉴스 유기철입니다.

    (유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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