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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프랑스의 타국가에 대한 지역 감정 극복 방법[김승한, 엄기영]

일본, 프랑스의 타국가에 대한 지역 감정 극복 방법[김승한, 엄기영]
입력 1987-11-22 | 수정 1987-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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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프랑스의 타국가에 대한 지역 감정 극복 방법]

    ● 앵커: 다른 고장사람을 배타시 하는 지역감정은 다른 나라에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각 나라에 지역감정을 같은 차원에서 비교할 수는 없겠습니다마는 이것은 대부분 인종이나 습관, 그리고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웃 일본이나 프랑스의 경우에는 선의의 경쟁이나 혹은 행정적인 노력을 통해서 이런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엄기영, 김승한 두 특파원이 차례로 전해드리겠습니다.

    ● 기자: 지난여름 도쿄에서 벌어졌던 광경입니다.

    요미우리 와 준이치 두 팀이 경기를 벌이 던 중 사소한 충돌이 집단 난투극으로 번졌습니다.

    도쿄홈팀을 응원하던 관중들은 나고야에서 온 준이치 팀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급기야는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까지 이르렀습니다.

    고향에 대한 정은 외부 충동을 이기지 못할 때 가끔 격렬한 반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과거 일본은 지방영주를 중심으로 수백으로 토막 난 채 세력 확장을 위한 쟁탈전을 벌여왔었고, 40년 전 만해도 가고시마, 야마구치, 고오찌, 구마모토 등 4현은 서로 험악한 적대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고오찌 출신 사람은 절대 채용하지 않겠다.

    또는 야마구치 갱 사람과는 사돈을 맺을 수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습니다.

    또 오키나와와 근처 섬사람들은 일찍부터 배타적인 감정으로 서로 헐뜯어 왔고, 조그만 오키나와 섬 남부, 북부, 중부, 에서조차 강한 대립으로 분쟁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현재 일본이 단합 잘하는 민족에 증표처럼 부각된 것은 지역대립은 곧 시대착오라는 인식을 대부분의 국민이 갖게 됐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설명합니다.

    국제화라는 뜻은 사람, 물자, 돈이 나라를 넘나드는 현상으로도 풀이되는 데 한 나라 안에서 스스로 혈맥을 조여 매는 일이야 말로 전체를 망치는 시대착오적 행위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일본의 정치인들은 적은 집단, 그리고 특정지역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민족의 성쇠를 내다보는 훌륭한 정치철학을 갖고 있었다는 지적입니다.

    ● 다꾸보 교수: 예전에 이께다 수상이 있었습니다.

    그는 히로시마 출신이었지요.

    수상이 미국 레몬을 수입 하러들자 히로시마의 레몬생산업자들이 수상관저로 진정하러 갔었지요.
    그때 이께다 수상은 자신은 히로시마 정치가가 아니라 일본정치가라고 말했습니다.

    ● 기자: 그리고 또 한편 지기 싫으면 그 분야 최고가 되라는 천하제일사상도 지역싸움을 승화시키는 데 큰 몫을 했습니다.

    심지어 기왓장 올리는 데는 어느 곳에 누구라는 말은 지역을 초월한 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지난 달 노벨의학생리학상을 받은 도네가와교수는 교토대학출신이었습니다.

    교토대학 졸업생들이 세계 제일의 권위라는 노벨상부분에서는 도쿄대학을 단연 압도하고 있는 데 비록 지방대학이지만, 학문적으로는 도쿄에 질 수 없다는 분발심 때문 이였다고 교토의 감투정신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는 도쿄대학이 만회할 것이라고 부추겼습니다.

    검도, 다도, 마쓰리같은 유품은 고스란히 간직해 가면서 지역 간의 파쟁 따위는 구시대 퇴물로 치부해 버리는 일본, 그래서 일본열도가 영원히 가라앉지 않는 불침항로 라고 선언한 배경에는 1억2천만 명 에너지를 두루 융합한 민족의 응집이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도쿄에서 MBC뉴스 김승환입니다.

    ● 기자: 프랑스는 우리나라 남한의 5배 반 정도 큽니다.

    영토가 큰 만큼 따라서 지역감정도 더 커지게 됩니다마는 프랑스는 대 혁명 이후 근 200년 동안 지역감정을 타파하고 하나의 국가통합체를 이루기 위한 행정적인 노력을 계속해온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영주소유의 장원경제가 무너지고 나서 이미 19세기 말에 프랑스는 근대산업국가로의 이행을 위해서는 편협한 지방색을 극복해야 한다고 합의아래 프랑스영토 재 구역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1919년에 순전히 경제와 산업 행정면만을 중심으로 해서 17개 지역을 나누었고 그 후에 숱한 논란 끝에 불과 지난 6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야 현재의 22개회 지형 지방으로 국가를 재 구역 시켰습니다.

    역사와 전통 감정대신에 오히려 경제적 독립에 바탕을 둔 이와 같은 인위적인 구역화 작업과정에서 프랑스는 지방이 지방을 배타시 하지 않고 서로를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만들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아니크 팩슈롱: 프랑스의 경우 각 지방 고유 권한을 갖고 있다.

    행정, 경제 조직의 재편성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방색, 지역감정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북서부 브루땅의 지방과, 스페인 국경 부근의 바스크, 또 지중해의 부르스카는 역사와 인종 언어까지 달라서 아직도 독립운동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 소수 지방색 극복을 위해서 프랑스정부는 한편으로 때재베를 놓고 고속도로를 우선적으로 건설하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적극적으로 그 지방의 전통문화를 보존 유지 중앙 진출을 격려시킴으로서 변두리 지방의 소외감을 줄여 나가고 있습니다.

    이 첨해한 경쟁의 후기산업사회에 전체 국가영토를 전체 국민을 하나로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하는 인식에 전체 국민들이 또 동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파리 교외에 베르사유에서 MBC뉴스 엄기영입니다.

    (김승한,엄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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