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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정국 전개 과정 중 주요 일지[전용학]

개헌 정국 전개 과정 중 주요 일지[전용학]
입력 1987-04-13 | 수정 1987-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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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헌 정국 전개 과정 중 주요 일지]

    ● 앵커: 네, 지난 1년 동안 개헌 정국 전개 과정에서 있었던 주요 일지를 전용학 기자가 총 정리했습니다.

    ● 기자: 야당의 개헌 요구 장외 투쟁으로 여야의 대결 상태를 지속해온 정국은 지난해 4월 30일 청와대 회동에서 여야가 국회에서 합의해 오면 임기 내 개헌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입장 표명에 따라 대타협의 가능성이 기대됐습니다.

    청와대 회동의 합의 내용을 토대로 여야는 제130회 임시국회 회기 마지막 날인 6월 24일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킴으로써 연내 합의 개헌 가능성이 기대됐습니다.

    국회 개헌특위는 7월 30일 첫 번째 전체회의를 열어 위원장과 간사를 선임하고 실질적인 가동에 들어갔으나 신민당 측이 개헌공청회의 생중계라는 새로운 요구를 들고 나옴으로써 개헌에 관한 실진 논의에 들어가지 못한 채 공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야가 합의한 국회 개헌특위의 1차 활동 시한인 9월 말을 하루 앞둔 9월 29일 신민당의 이민우 총재와 두 김 씨는 사면 복권과 실세 대화 보장 등을 내세워 일방적인 개헌 특위 불참을 선언함으로써 개헌 정국의 파행을 예보했습니다.

    개헌 특위의 필요가 3개월째 계속된 12월 말, 3당 대표는 개헌 특위 활동 시한 연장에 합의했으며 신민당의 이민우 총재는 7개 항의 민주화 선언 조건을 내세운 의원내각제 협상용이라는 이민우 구상을 표명함으로써 합의 개헌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그러나 이민우 구상에 대해 두 김 씨는 직선제 관철의지를 희석시킨다는 이유로 즉각 이의 철회를 주장하고 나섰고 이에 반발해 이민우 총재는 금년 1월 6일 예정된 3자 회동을 취소한 채 온양에 내려가는 등 개헌 협상에 관한 신민당의 내분이 표면화됐습니다.

    그러나 신민당의 김영삼 고문은 1월 15일 이 총재와의 외교구락부 회동을 통해 이민우 구상을 백지화시켰으며 이후 몇 차례의 회동을 통해 두 김 씨는 김영삼 씨 총재 추대와 내각제지지 의사를 표명한 이철승 의원 등을 징계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당권 경쟁과 노선 대립으로 비롯된 신민당 내분은 징계문제를 둘러싸고 더욱 격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총재 설득에 실패한 두 김 씨는 3월 10일 두 김 씨의 지구당 개편대회 불참 선언에 이어 12일에는 신민당 주류 측이 직선제 당론 고수와 두 김 씨의 노선 지지를 약속하는 서명 작업을 강행했습니다.

    두 김 씨는 이어 6인 소위원회를 구성해 이민우 총재를 비롯한 당 공식기구를 무력화시켰으며 먼저 이철승, 이택희 두 의원의 징계를 강행한 뒤 지구당 개편대회를 착수한다는 선징계 후개편대회 방침을 결정함으로써 신민당을 일대 혼란의 와중에 빠트리고 말았습니다.

    두 김 씨는 당기위원회 소집을 실력으로 저지하려는 이택희 의원 지구당 당원들의 중앙 당사 점거로 유혈사태까지 야기되기에 이르자 이틀 후인 4월 6일 신민당 분당의 원칙에 합의하고 8일에는 신민당 탈당과 신당 창당을 선언함으로써 일관된 타협거부와 당권 경쟁이라는 두 김 씨의 정치 행태는 개헌 정국과 합의 개헌 가능성을 끝내 좌초시켰습니다.

    MBC뉴스 전용학입니다.

    (전용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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